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밍블 Nov 28. 2020

너는 삐삐 쪽이야, 아니카 쪽이야?

이 책은 사실 읽은 지 매우 오래된 책인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 여겨서 리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리뷰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내가 그동안 차곡차곡 저장해둔 책의 목록+내용이 어쩐 일인지 다 사라졌는데 이것만 남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적어둔 내용이 시간이 지나도 새삼 맘에 들기 때문이다. ^^;; 당시에는 아마도 내가 페미니즘을 다룬 책을 기대감을 갖고 막 읽어댔는데 이건 내 기대보다 못하단 생각에 좀 치워뒀다. (내 딸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합리적이고도 쉬운 이야기를 해줄 만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이건 딸의 입장이었던 것이 큰 차이였다ㅋㅋ)


이 책은 흔히 거부감을 갖고 보는 페미니즘에 대한 강렬한 색은 아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내가 저장해둔 인용구도 모두 그러하고.



p49. 뒤늦게 삐삐나 아니카 둘 중 한 명을 꼭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내 안에는 그 둘을 다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반항적이고 말대답을 잘하고 공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또 동시에 책임감 있고 예의 바르고 훌륭한 학생이었으니까. 삐삐의 가르침을 따르면 나는 고고학자든, 형사든, 세계 여행자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살면서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언제라도 정확히 표현하며 나에 대한 기대와 맞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삐삐의 진정한 힘은 거기에 있다.


나는 가끔 빨간 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를 혼동하는데 둘 다 머리가 빨간색이고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서 혼동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게다가 앤의 친구 다이애나와 삐삐의 친구 아니카도 너무 비슷한 느낌 아닌가? 어쨌든 나는 어렸을 땐 늘 다이애나가 좋았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딱 예의 바른 소녀였고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도 내 기준으로 더 예뻤기 때문. 여러 명의 여자 등장인물 중 누가 더 좋아?라는 고민은 늘 존재했다. 작은아씨들에서도 그렇다. 주인공은 조이지만 멕, 에이미, 베스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면 나는 조보다는 다른 인물에 더 몰입하곤 했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시대에서는 다이애나 이기를 요구받고 어느 시대에서는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앤 이 길 요구받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납작하게 한 가지의 캐릭터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 역시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때로는 고집스럽게 마이웨이를 가기도 하고 대개는 조용하고 예상 가능한 사람이지만 가끔은 꽤나 시끄럽기도 하다. 얼마 전 나를 닮은 꽃 테스트를 해보니 재밌는 특징이 있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는 것. 딱 나였다.ㅎㅎ

 

이 책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든 될 수 있으며 내가 나 자신이라고 느끼는 바를 따라 행동하고 표현하며 살며 사는 게 삐삐처럼 사는 거라고. 내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기. 그게 어떤 모습이든.


p93. 이번 생에서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말보다 외모로 나를 평가하는 것에서 신경 끌 수 있기를 바란다. 내게 잘 어울리는 노란색 드레스를 찾거나 안색이 안 좋아 보일 때 흰머리를 염색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기분을 위해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페미니즘적이다.


또한 맘에 드는 부분이었다. 페미니스트는 예쁜 옷을 입어서는 안 되는가? 예쁜 옷을 입는 이유는 다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가? 브라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자유이고 착용하는 것은 사회에 구속당하며 사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나의 기분을 위해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이 정말 현실적이고 와 닿았으며 속이 시원했다. 여성스럽다.라는 문장에 다양한 의미 부여하는 것을 안다. 그 말보다는 취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더 좋겠지만 가끔은 편하게 그 문장을 썼으면 할 때도 있다. SO What~~~ (그동안 '여성스럽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온 사람으로 제 발 저린 건가?ㅋㅋ)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저 문장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개인이 가진 특징을 남녀 구분 없이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한다. 근데 이게 신서유기에서 하는 훈민정음 게임처럼 좀 어렵긴 하다. 그만큼 우리의 고정관념이 크다는 거다.


p247. 나는 엄마와 할머니와 카르멘 이모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들이 각자 살아내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각성과 같았다. 나는 여성 롤 모델들 안에서 내 모습을 찾기를 갈망했었다. 내가 너무나도 닮고 싶었던 여자들과 무슨 일이 있어도 믿고 싶었던 여자들은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집 안에 있었던 것이다. 디킨슨, 보부아르, 조 마치, 플러스가 없었다면, 그리고 우리 집안의 여자들이 없었다면, 페미니즘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녀들은 모두 나의 내면에서 나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사슬을 형성했다.


요즘은 국내 작가들의 여성 서사가 많아졌다. 그래서 굳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나의 엄마와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생각보다 나의 이야기는 많은 곳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가짐과 동시에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다양한 상황에서 또 만날 수 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과거와 현재로 이어주는 연결지점이 되는데 그것은 종착역은 아닐지라도 참 반가운 휴게 지점이다. 이 SNS도 그렇지. 어느 것이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숨통이다. 페미니즘 그거 별거 아니지 않나? 그냥 내가 내길을 가는 거지. ^^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다정하길, 내일도 다정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