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중산층 사회를 읽고(조귀동/생각의 힘)
p8. 20대가 취업과 함께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어떤 일자리를 얻느냐는 그의 미래 소득, 자산, 결혼 여부, 사회적 문화적 경험등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 고임금의 안정된 일자리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 간의 격차가 큰 데다, 이직이나 전직등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로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한 번 ㅈ ㅅ (중소기업)면 영원한 ㅈ ㅅ ’라는 말이 나타내듯 첫 일자리가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갈린다. 첫 일자리가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p145. 가령 부모세대에서 경제력만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즉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이 경제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자녀 세대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가능성은 지금보다 높을 것이다. 인적자본이나 사회자본이 많은 부모는 자녀의 비인지적 능력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고, 또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교육 정보를 취득하고, 입시전략을 설계하며, 동아리 인턴 봉사활동 같은 다양한 비교과 활동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20대가 맞닥뜨린 불평등이 이전과는 다른 주된 이유는 이들의 부모세대(50-60년대생)에서 이전 세대(60-50년대생)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경제자본,인적자본,사회자본의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90년대생의 부모인 60년대생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대졸 화이트칼라 또는 대졸 중산층이 만들어 진 세대다.
p147. 결국 한국에서 90년대생들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일자리를 가진 부모가 확보한 경제력과 사회적 네트워크,문화자본을 바탕으로 명문대 졸업장과 괜찮은 일자리를 독식하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 세대’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이 이전 세대가 경험한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p271. 80년대 학번-60년대의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단순하게 자녀를 서울대, 연고대에 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기회를 이용하고 막대한 경제적 투자를 해 자녀를 해외 명문대를 나온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것도 세습 중산층 지위를 재생산하는 주요 경로 가운데 하나다.이 같은 방식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국내에서 ‘명문대 졸업장’을 겨냥한 투자가 수익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리스크는 여전히 상당하기 때문이다.
p276. 한국 경제가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성장률이 낮아지면,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성장률이 낮고,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들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이 이전보다 더 등장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경제 전체의 성장률 하락이 역설적으로 인적자본 투자의 상대적인 수익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인적자본 투자의 수익성이 높아지는 만큼 더 대규모 투자에 나서게 된다.
p279. 세습 중산층의 성벽이 높아지는 세 번째 경로는 주택시장이다. 주택은 다른 물적자본과 다르게 ‘토지’의 가치가 중요하다.
p292. 무엇보다 지금의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하다.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