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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Feb 04. 2021

오늘도 태연하게 내 삶의 요리를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를 읽고(미야시타 나츠/마음산책)

제목 재밌는 책이죠? 바다거북 수프가 뭐야? 윽 취향도 독특하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뭔가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목요일그녀 님의 블로그에서 보고 알았죠. (목요일그녀님의 바다거북 수프 리뷰) 궁금한 책은 바로 읽어봅니다. ^^


*바다거북 수프는 영화<바베트의 만찬>에 등장하는 정성스러운 메뉴인데 일본의 추리게임도 나오고 괴담도 나오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네요. 어쨌든 이 책의 의도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정성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것 같습니다.*



p25.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집은 괜찮아, 모두 살아 있으니까.” 친구의 입에서 나온 괜찮다는 말에 완만하고 드넓은 들판이 떠올랐다. 친구의 아들은 지진 이후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 정신적인 충격 탓인 것 같다. 그럼에도 확실히 살아 있다. ‘괜찮아’라는 이름의 들판에서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회복의 때를 기다리는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일단 설에는 이쪽으로 돌아와. 맛있는 스튜를 만들어서 기다릴 테니까."


초반부터 강력했어요. 괜찮아. 라는 말에 완만하고 드넓은 들판이 떠올라서 참 다행이라고...내 마음도 활짝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떤 위로를 해야할지 머리만 복잡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로가 무엇일지 생각해봤어요. 잘 모르겠더라구요. 물론 비슷했던 나의 상황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주변의 이야기를 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 저는 딱히 음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못되지만 "일단, 우리집에 와." 이 정도의 말은 잘 해요. ^^ 저만의 소울 푸드를 만들까봐요. 작가님처럼 맛있는 스튜를 만들어서 기다릴게요. 이런 말 위로가 될까요?


이 책은 작가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입니다. 일본에서 대중소설로 유명한 작가인듯 한데 저도 다른 작품은 몰라요. 하지만 읽는 내내 자주 미소짓고 가라앉은 기분을 조금은 뽀송하게 해준 책이라 다른 작품도 찾아볼까 해요.^^그리고 내게는 어떤 음식이 어떤 인생으로 얽혀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어요. 글쓰고 싶은 날 한두개 써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네요. ㅎㅎ



p44.분홍색 꽃이 활짝 필 때의 매화나무 숲을 본 적이 있다.근사했다. 어렸던 아이들도 탄성을 질렀다. 둘째 아이는 특히 손바닥을 짝짝 마주치며 좋아했다. 꽃은 꽃만으로 아름다워서 열매가 되기 위해 피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랑스러운 꽃의 꽃술이 이윽고 부풀어 올라 열매가 된다면 꿈처럼 맛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매실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슴속에 확실히 생겨난 순간이었다.


매실 좋아하시나요? 저는 매실장아찌나 매실쥬스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면서도 가-끔 매실장아찌를 삽니다. 동그랗고 빛나는 알맹이가 어떻게 그런 다양한 맛을 품고 있는지 예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상큼하면서도 전통적인 맛을 내는 그 재료가 매력적이더라구요. 그렇다 해도 막상 사면 잘 먹지도 않으면서 나는 가끔 왜 매실장아찌를 비싸게 구입하는지 저 조차 이해가 안됐는데 앗. 작가의 표현을 보며 나도 이때문인가? 했어요.ㅋㅋㅋㅋ 그 사랑스러운 꽃의 꽃술이 이윽고 부풀어 올라 열매가 된다면 꿈처럼 맛있는 것이 당연하다고요!!!!!!!!!


제 마음과 같은 건지, 얼마전 우리 미식가 첫째가 매실 장아찌를 찾아요. 마찬가지로 한 두번 먹고 그리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이더니 먹고 싶다는 거예요. 달콤하면서 짭짤하고 상큼한 맛, 아삭한 식감이 생각난다나요? 저 올 초여름엔 매실사서 꼭지 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저도 막연히 매실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확실히 추가될 것 같아요. 아이와의 추억도요.


p70.다른 무엇보다 최고의 것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얻었다는 점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힘을 빼도 된다. 가장 좋았던 시절의 눈이나 귀나 코나 혀를 써서 알아낸 것을 똑같이 재현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 잃은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해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것은 멋지다. 그러나 성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다다를까. 소중히 여기는 것을 풍성하게 길러나갈 수 있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 퇴화하는 부분도 필요할 것이다.


오늘 저에게 힘이 된 문장입니다. 성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다다를까. 소중히 여기는 것을 풍성하게 길러나갈 수 있으면 되고 이를 위해서는 분명 퇴화하는 부분도 필요할 것이라구요. 코로나 블루로 이래저래 지치신 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당연했던 것들이 힘들어지고 작은 회복으로 감사한 요즘, 마찬가지로 작은 일로도 기운이 빠지고 힘들어져요. 이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풍성하게 길러나가는 연습을 하자...다짐합니다. 나의 퇴화하는 부분은 꼭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거라고. 어떤 이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고 어떤이를 이해하는 데 거울로 비출 수도 있지 않나 싶고요.



p288.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그림을, 힘에 벅차도, 잘되지 않아도, 과묵한 여자 요리사처럼.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요리사처럼, 내가 믿는 길을 가자. (...) 잃을 뻔했던 ‘그린다’는 행위가 내 안으로 휙 되돌아왔다. 또 언제 나가버린다 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만 여동생의 웃는 얼굴과 담요, 오래된 영화와 기억, 누군가의 마음, 그런 여기저기 아로새겨진 조각들이 지탱해준다. 괜찮아, 라고 생각한다. 일단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옮긴이: ”아마 나뿐만 아니라 누구의 마음속에도 80회분 정도는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숨어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저자의말을 나도 믿게 되었다. 이책에 등장하는 음식 하나하나에 얽힌 에피소드는 인생의 압축판 같아서 마침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현재의 내 삶을 그 위로 가만히 겹쳐보곤 했다.(...)그런 생각은 육아에 지칠 때마다 조촐하지만 그 하루를 견디기에는 충분한 희망이 되었다.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깊은 곳에서 조각 조각 꺼내며 소중한 기억을 떠올렸을 작가님과 번역해 주신 분 , 더불어 저까지 오늘을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한테는 별것 없지만 아이들의 환한 웃음, 속상하다고 아무 때나 빵빵 터지는 눈물까지 오늘의 따끈한 마음으로 저장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정말로 혼자 살 수 없다 여겨지는 나날입니다. 지칠 때마다 누군가 이야기 건네주지 않으면, 말 걸어주지 않으면 한없이 우울해질 것 같아요. 책은 그런 저에게 아무때나 어디서나 말을 걸어주죠. 제 대답은 글로써 합니다. 그래서 리뷰를 안 할 수 없어요. 화답해야죠..^^



나의 소울푸드를

당장 정해야 해야 할 것만 같은 밤.

편안한 위로가 필요하신 분들에게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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