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를 읽고(미야시타 나츠/마음산책)
p25.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집은 괜찮아, 모두 살아 있으니까.” 친구의 입에서 나온 괜찮다는 말에 완만하고 드넓은 들판이 떠올랐다. 친구의 아들은 지진 이후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 정신적인 충격 탓인 것 같다. 그럼에도 확실히 살아 있다. ‘괜찮아’라는 이름의 들판에서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회복의 때를 기다리는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일단 설에는 이쪽으로 돌아와. 맛있는 스튜를 만들어서 기다릴 테니까."
p44.분홍색 꽃이 활짝 필 때의 매화나무 숲을 본 적이 있다.근사했다. 어렸던 아이들도 탄성을 질렀다. 둘째 아이는 특히 손바닥을 짝짝 마주치며 좋아했다. 꽃은 꽃만으로 아름다워서 열매가 되기 위해 피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랑스러운 꽃의 꽃술이 이윽고 부풀어 올라 열매가 된다면 꿈처럼 맛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매실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슴속에 확실히 생겨난 순간이었다.
p70.다른 무엇보다 최고의 것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얻었다는 점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힘을 빼도 된다. 가장 좋았던 시절의 눈이나 귀나 코나 혀를 써서 알아낸 것을 똑같이 재현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 잃은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해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것은 멋지다. 그러나 성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다다를까. 소중히 여기는 것을 풍성하게 길러나갈 수 있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 퇴화하는 부분도 필요할 것이다.
p288.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그림을, 힘에 벅차도, 잘되지 않아도, 과묵한 여자 요리사처럼.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요리사처럼, 내가 믿는 길을 가자. (...) 잃을 뻔했던 ‘그린다’는 행위가 내 안으로 휙 되돌아왔다. 또 언제 나가버린다 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만 여동생의 웃는 얼굴과 담요, 오래된 영화와 기억, 누군가의 마음, 그런 여기저기 아로새겨진 조각들이 지탱해준다. 괜찮아, 라고 생각한다. 일단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옮긴이: ”아마 나뿐만 아니라 누구의 마음속에도 80회분 정도는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숨어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저자의말을 나도 믿게 되었다. 이책에 등장하는 음식 하나하나에 얽힌 에피소드는 인생의 압축판 같아서 마침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현재의 내 삶을 그 위로 가만히 겹쳐보곤 했다.(...)그런 생각은 육아에 지칠 때마다 조촐하지만 그 하루를 견디기에는 충분한 희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