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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Mar 06. 2021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두려운 당신에게

저는 두려웠어요.



‘너는 더이상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까 봐, ‘네가 이룬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까 봐.



2년 전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몰입하다 돌연 내쳐지는 기분이 들어 휴직을 결정했습니다. 감정적으로 휴직을 하게 됐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애쓰며 휴직 기간을 보냈죠. 다시 회사로 돌아가며 ‘예전의 내가 아니야’ 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사실 제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봐요.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요. 복직이 다가오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요한 작가의 <<관계를 읽는 시간>>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부제는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이었는데 나는 적정한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나 궁금해졌어요. 책에서 사용한 ‘바운더리’의 의미는 경계, 영역을 넘어서 ‘보호’와 ‘교류’의 양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요.



바운더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5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해요. 관계조절능력, 상호존중감, 상대의 마음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갈등회복력, 마지막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능력이요. 당신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계신지요?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몰입하지도, 지나치게 높은 벽을 세우지도 말고 한마디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맺는 것, 자기를 존중하는 것뿐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갈등이 생기면 지혜롭게 풀어냄으로써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거친 솔직함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한 부드러운 솔직함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적당히 잘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적당히’가 어려워 휴직을 했고요. (웃음)



그런데 이미 많은 것이 부족한 제게 그 5가지 능력이 없다고 해서 남들보다 더 모자란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기비하는 아니고요, 부족한 것을 찾으며 그것을 양껏 채우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때로는 저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경험한 거죠. 저는 제 스스로 두려운 마음을 인정하고 나니 괜찮아졌어요. 도대체 왜? 왜 갑자기 휴직을 해야 해? 복직에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뭐가 문제야? 라고 스스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질 땐 마땅한 대답을 얻지 못했는데 ‘두려워서 그랬어’라고 체념하듯 던진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지 몰랐네요. 아무 힘이 없는 말이 안도감을 주다니요.



그래도 꼭 키우고 싶은 능력은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나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것이니 애써볼 만하잖아요. 제가 나름 깨달은 것이 있는데요, 한 번에 많은 것을 하긴 어렵더라고요. 그럴 깜냥도 안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지쳐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래서 늘 ‘차근차근’, ‘하나씩’ 해 보자. 라고 다짐합니다. 모르는 업무를 맡게 될 때도,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어려운 상황에 압도되지 않으려 애쓰며 ‘자,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자’ 라고요.



더불어 ‘상호존중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것뿐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에 대해서요. 지금까지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존중하는 건 당연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죠.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그런데 ‘나’는 내가 책임진다며 오히려 뒷전으로 할 때가 많았어요. ‘내가 책임질게! 너는 다른 거나 신경 써!’ 나 말고 누가 나를 책임진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수없이 이런 말을 반복했어요. 아니 사실은 책임질 나의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죠.



내 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는 것도 어려워요.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 바로 내 마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아이러니하죠? ”나때는 말이야, 휴가는 제일 마지막에 남은 날로 정해졌지, 내가 정해본 적이 없어!” 나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은 경험이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식으로요.



잘하고 계시겠지만 혹시라도 저처럼 시작이 두렵다면, 또는 지금 하는 일과 다른 결정 앞에서 걱정하고 있다면 함께 해봐요. 우선 지금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세요. 저처럼 두려움일 수 있고 후회일 수도 아쉬움일 수도 설레는 마음일 수도 있겠죠. 그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감정 그대로 인정해주는 거예요. 오랫동안 무시되었을 내 마음을요.



두려웠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을 몰랐어. 미안해. 앞으론 네 마음을 무시하지 않을게.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도 생각하며 우리는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길이 바로 해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함께 가면서 또 다른 길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지나온 길을 떠올려보니 제가 잘나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함께 의지했기에 이만큼 온 것 같아요. 여전히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부족한 그대로, 두려운 그대로 나아가는 거예요.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상대의 떨리는 마음을 나 역시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의지가 되지 않겠어요?



당신도 처음이군요.

당신도 두렵군요.



그럼 우리 함께 가볼까요? 하면서 다정하게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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