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선 청소기, 로봇 청소기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데 무릎 수술을 하고 나서도 엎드려 물걸레질을 하는 엄마를, 출근하는 사람도 없는데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 진수성찬을 차리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중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엄마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거나 내가 도와주지 않을 때 난데없이 날아오는 짜증이었다.
누가 원했냐고, 매 끼니 진수성찬을!!!
"정말 이해가 안 돼. 그냥 간단하게 빵 먹으면 되잖아. 아침에 아무도 바쁜 사람이 없는데 왜 굳이 일찍 일어나 내게 눈치를 주는 거야. 안 도와주면 또 짜증을 낸다고.!!"
나의 짜증에 남편은 그저 "그러게." 할 뿐이었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남편은 매일 아침 꼬박꼬박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출근했고 주말에도 밥 먹으라고 부르면 넉살 좋게 잠옷 차림으로 나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부지런에 짜증을 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는데 합가 이전보다 상차림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살 때는 스크램블 에그나, 국 하나만 있어도 아침을 먹을 수 있었고 점심은 고구마, 주말은 외식으로 얼마든지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허나 지금 그런 ‘간단한 식사’를 차렸다가는 엄마의 혀 차는 소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더 기가 차는 것은 삼시 세끼 진수성찬을 반대하는 나만이 이 시스템에 추가 노동력으로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엄마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다 망쳐놨어. 우리 집은 남녀평등했는데 엄마 때문에 가부장적인 옛날 사회로 돌아갔다고!!’
나는 매일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아침밥을 차리러 나왔고 결혼 전 퉁퉁 부은 얼굴로 그랬듯이 식탁에 식구들 숟가락을 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식탁에 숟가락 놓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아빠가 먹을 숟가락, 젓가락을 왜 내가 올리고 차린 후에 모시러 가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을 때쯤부터는 무조건 자기 숟가락은 자기가 두게 했다. 신랑은 물론이고. 그런데 그 이해 안 되는 일을 결혼하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하고 있다니!
하루 세 번 돌아오는 상차림과 큰 집의 청소를 분명 이전보다 애쓰고 있는데 엄마와 싸울 일은 더 많아지는 기이한 현상에 나는 돌봄 노동에 대한 글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책을 찾아 읽을수록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와 싸우게 되는 이유는 갈수록 늘어났다. 불현듯, 엄마와 따뜻한 말 한마디 섞는 노력이 싫어 다른 곳에 책임을 넘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아냐, 나에게 문제는 없어. 모두 시스템의 문제야’ 나는 애써 도리질하며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도미니크는 거북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설사 거북처럼 껍데기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는 절대 그 안에 숨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도미니크의 인생철학은 문제가 생기면 즉각 달려 나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도미니크는 자기와 다르게 행동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도미니크는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습니다. [도미니크. 윌리엄 스타이그/비룡소]
윌리엄 스타이그 『도미니크』의 문장 중 ‘이해’라는 단어에서 멈칫했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수 백번 말하는 동안 정작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나와 다르게 살아온 사람의 존재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너는 왜 나와 다르냐고 화만 내고 있었으니까.
도미니크는 기운이 철철 넘쳐서 늘 무엇이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개였기에 거북처럼 위험이 생겼을 때 껍데기에 숨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그런 거북에게 너는 왜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냐고 화를 내는 대신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소개는 너와 내가 서로 다름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나와 엄마는 같은 여자였지만 살아온 시대와 배경이 달랐다. 어쩌면 엄마를 이해하는 일은 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세계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껏 나는 내가 이룬 세계가 가장 아름답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다른 이의 세계는 나와 상관이 없었고 엄마의 삶은 엄마가 만든 것이니까 엄마 역할을 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집안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룬 세계에서 집안일은 남녀평등하게 나눠. 엄마의 세계가 그렇지 않다면 아빠 몫을 엄마가 해." 나는 선을 그었고 엄마는 화를 냈다.
사실 난 엄마가 이룬 세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편리한 제품이 나왔는데 왜 미련하게.
아빠를 자기 숟가락도 놓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 건 엄마니까 엄마가 책임져.
나는 내가 만든 세계에 취해 엄마의 세계를 하찮게 여겼다. 엄마가 합리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의 희생을 바탕으로 내 세계를 마련했으면서 스스로 만든 것처럼 으스댔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어디 엄마뿐이었을까? 내가 만든 세계에 갇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날이 수두룩하다. 어쩌면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의 알을 깨는 시작이 될 것 같다.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