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밍블 Feb 23. 2021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오랜만에 책을 구매했어요. 저는 연초에 책을 많이 구입하는 편입니다. 복지포인트가 충전되어서;;ㅎㅎㅎ 어쨌든 이 책은 유튜브에서 이민진 작가의 강연 영상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대출이 꽉 차있어서 부랴부랴 구매했어요. 사실 이런 책은 구매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우선 제가 요 몇 주 코로나 블루로 아주 다운되어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몰입의 시간을 가졌어요. 제 기분을 완전히 바꿔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쪽으로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흠뻑 빠질만한 이야기였거든요!



우선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말로 시작할게요.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민진의 소설적 뿌리는 이민이라는 소재를 자양분으로 뻗어나갑니다. 막연한 호기심만 품고 있던 재일교포에 대해 직접 알게 된 계기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난 것이었고 그녀의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소설 <파친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작가 이민진의 <파친코>는 1910년부터 1989년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재일교포들의 4대에 걸친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낸 기념비적 대 서사시입니다.(작품 해설, p389)



그럼, 제가 읽은 파친코를 소개할게요.

언청이 훈이와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양진이 부산에서 결혼을 하고 선자를 낳아요. 선자는 고한수를 만나 노아를 임신하지만 결혼할 수 없어 괴로워하다 백이삭을 만나 결혼하죠. 백이삭에게는 백요셉이라는 형이 있고 형은 오사카로 이들 부부를 부르죠. 경희는 요셉의 헌신적이자 아름다운 아내이고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선자와 고한수 사이에서 낳은 아이 노아, 선자와 백이삭의 사이에서 낳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4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파친코 1권의 첫 시작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입니다.

4대에 걸친 이야기가 순탄치 않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선자가 가방을 집어 들고 경희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는 장면입니다.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는 장면이 아닐지. 역사는 그들에게 가혹했지만 그들은 살아냈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재일교포의 어려운 삶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비단 재일교포의 삶을 비추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민진 작가의 강연 영상을 보면 미국에서 경계의 삶을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가능성을 말하고 '네 이야기는 중요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감춰진 삶과 이야기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주장하는 것, 나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만이 작가가 바꾸고 싶은 유일한 것이라 말한 것처럼요.



작가의 위트와 유머, 그러면서도 진중함에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찰떡같이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고요.



p129. 요셉은 노아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노아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노아에게 사람은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용서 없이 사는 삶이란 숨을 쉬고 살아도 죽은 것과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혈육과 닮은 사랑하는 조카를 찾으러 가기는커녕 요에서 일어날 힘도 없었다.(파친코 2)



사실 책에서 나오는 삶은 부당한 것 투성이입니다. 피비와 하루키가 대신 분노해주는 아래의 이야기처럼 불합리의 연속이지만 요셉은 용서를 말합니다. 요셉이라는 인물은 사실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가족을 부양해야겠다는 책임감에 억눌려 과도한 화를 내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용서하는 법을 이야기하니 조금 난데없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저는 가슴에 남았어요.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말이 이 책의 메시지는 아닙니다만 용서 없이 사는 삶이란 숨을 쉬고 살아도 죽은 것과 같다는 말이 너무 와 닿아서 굳이 넣어봅니다.



p220.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모자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툭툭 두드렸다. "인간은 원래 끔찍한 존재야. 맥주나 마셔."



p314. "미국에서는 강꼬꾸징이니 조센징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피비가 그날 하루 동안 편협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 가운데 하나를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 아니라고!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돈을 벌고 살고 있지만 3년마다 외국인 등록증을 갱신해야 하고 컬럼비아대학을 나와 누구보다 똑똑한 솔로몬조차 부당해고를 당하는 삶. 이런 일이 지금은 다 지난 일일까요?  '인간은 원래 끔찍한 존재'이기에 또 다른 곳에서 다른 국민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용서'를 알고 '사랑'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도와주었던 좋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요.



이들이 일본에서 돈을 벌어먹고살 수 있는 직업은 이런 것뿐이었습니다. 파친코. 일본인들이 하기 싫어하고 천대하는 직업이나 일이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을 세우고 누구보다 엄격하게 그 기준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장소에서나 우리는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만의 소신을 가지고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그처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요.



이민진 작가의 강연영상 첨부합니다.^^





https://youtu.be/i7dgtOdNoBI


작가의 이전글 보통날의 기쁨과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