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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Feb 14. 2021

보통날의 기쁨과 슬픔


내가 무슨 배짱으로 독서 모임을 모집하고 계획 했는지 후회했다. 혼자 읽기 힘든 책을 같이 읽으며 공부공동체를 만들고 모임이 갈급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선한 마음이었지..아마도?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지고 급기야 독서 토론 같은 거 해봤자 뭐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zoom으로 모임을 했을 땐 참 신기했다. 영상통화가 자연스러운 만큼 영상회의도 특별한 기술은 아닐텐데 그걸 내가 이렇게 자주 사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왠지 앞서나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는데 한두 달 지나니 갑자기 모든게 심드렁해졌다.



처음엔 이동시간도 없이 방안에서 클릭 몇 번으로 컴퓨터 속 자료를 공유하며 이야기하니 편하고 좋았다.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모임을 하고 지역에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게 좋았는데 헤어짐도 효율적으로 지역 상관없이 클릭 한 번으로 이뤄지니 신기루처럼 느껴져 허무했다. 1초만에 방금 전까지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누군가 나를 놀리는 것 같고, 갑자기 더욱 외로워졌다.



zoom 모임의 특성상 상의는 신경 써 입고 하의는 수면 바지나 잠옷을 입었는데 그 모습이 회의가 끝난 후 내 상황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주었다. 웃는 얼굴은 회의 종료 버튼과 함께 무표정으로 변하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듯 했다. 나는 1초 만에 사라지는 그들과 기술의 발전이 허무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나의 욕심과 현실의 차이에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독서모임은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만든 모임은 내심 특별하기를 바랬는데 그런 욕심과 기대가 오히려 나를 무력하게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은 나를 젖은 빨래처럼 축 가라앉게 만들었다.




사람 감정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유가 어디 한가지겠는가?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자잘한 이유들이 나의 심드렁한 태도에 일조했는데 무얼해도 기분이 전환되지 않아 꾸역꾸역 책을 읽고 약속대로 모임을 열었다.



저마다의 상황과 기분이 있음에도 마음과 시간을 내어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마음에 둥그렇고 환한 달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며 수줍게 웃기만 한 것 같은데 고요하고 충만한 기쁨이 차올랐다. 모임이 끝나자 곧 화면 밖으로 사라질 사람들의 헛헛함을 이해라도 한다는 듯 모두 양 손을 세차게 흔들며 오래도록 인사를 나눴다.



' 이렇게라도 얼굴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온라인 독서모임은 외로움과 따뜻함을 번갈아 안겨주었다.



내가 했던 모든 프리뷰에는 결정적 1분이 있었다. 겨우 20일의 일상, 그 기록 속에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일상이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프리뷰 노트 같은 일상, 사랑스러운 1분은 그런 6,000분 안에 있다. 밋밋하고 사소해 보이는 그저 그런 일상에서 만나는 결정적 1분. 그건 아마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선물 같은 순간이 아닐까.[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p/74 고수리]

*프리뷰란 PD가 찍어온 영상을 글로 풀어서 문서화하는 일로,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이며 작가가 참여한 ‘인간극장’은 촬영 기간이 20여일에 달한다고 한다.*



다시 찾아온 일상, 습관처럼 펼쳐든 책에서는 프리뷰 노트의 결정적 1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저 그런 일상에도 기쁨과 감동의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고. 내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괴로운 시간이 많았지만 지난밤의 독서 모임처럼 ‘반짝’이는 순간도 있다. 나는 그런 결정적 1분이 계속되길 바랐다. 6,000분 안에 자랑할만한 1분만을 찾기 위해 나머지 5,999분은 지루하다 여기면서 말이다.


아무리 결정적 1분이 있다지만 밋밋한 24시간을 다시 시작하려니 기운이 나지 않는다. 일상의 초라함이 느껴질 땐 답이 정해져 있는 뻔한 질문을 신랑에게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기는 내가 왜 좋아?”


이건 싫다는 답변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 자기니깐 좋지ㅎㅎ 자기 덕분에 나는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잖아. 자기 만나기 전과 후가 얼마나 다른지 자기도 잘 알면서."


합격!

신랑은 마치 정답지를 들고 있는 사람처럼 단번에 답을 보내왔다. 뻔하지만 좋았고 나의 하루는 신랑의 한 문장에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오늘치의 기쁨을 획득했다.


타인의 SNS에서 보이는 한 컷은 오늘 내가 얻어낸 기쁨의 순간처럼 그들의 결정적 1분일 것이다. 알면서도 부러워하곤 했는데 그들의 6,000분의 시간을 떠올리니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결정적 1분만으로 삶을 채울 수 없다고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봐주는 마음, 어색함을 깨는 웃음, 상대가 힘들때마다 마음의 위로를 전하는 사람들이 나의 5,999분안에 숨어 있는데 어쩌면 이 시간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 인생은 수많은 그저 그런 날들로 이뤄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날들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소리치며 자랑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을 보통날이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시시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느 한순간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밤도, 내일 아침도 어제와 비슷하고 내가 읽는 책도 내가 쓰는 글도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소한 시간들이 모여 미래의 결정적 1분을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지난한 날도, 격정적인 날도 그럭저럭 잘 살아온 내가 꽤 기특할 것 같다. 문득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조용히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해본다.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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