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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Mar 21. 2021

봄의 시작

우호의 감정, 꽃으로 피어나다

경주 보문단지 벚꽃여행, 오사카 벚꽃여행, 진해 벚꽃 나들이, 하동 쌍계사 십리 벚꽃 길...

나는 매년 봄이 오면 설레는 마음 반, 초조한 마음 반으로 벚꽃이 예쁜 곳을 검색한다. 따뜻한 계절이 오는 것은 가장 먼저 작고 귀여운 노란 꽃, 산수유가 알려 주는데 그때부터 나의 벚꽃 기다림이 시작된다. 행여나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예쁜 꽃망울이 제대로 피어나지 못할까 괜한 걱정을 하고 만개하는 벚꽃 일정이 개인적인 나의 다른 일정과 겹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하면서. 눈부시게 하얀 꽃이 가득한 곳에 서 있노라면 현실이 아닌 환상의 공간에 있는 느낌까지 들어 매년 벚꽃의 개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 난데없이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사람 많은 곳은 더욱 피해야 했다. 가까운 석촌호수마저도 사람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진입을 막았고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는 줄줄이 취소되었다. 어차피 꽃놀이를 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으나 현실의 메마름을 촉촉하게 해 줄 환상의 공간이 원천 봉쇄되자 답답해졌다.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모르는 척할 수 없어 아이들과 집 앞 공원에 나갔다.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화사한 옷을 꺼내 입었다. 집 앞 공원이라 사람은 없고 꽃은 더욱 자유롭게 피어있었다. 늘 벚꽃 명소를 찾아다녔는데 가까운 곳에 이렇게 예쁜 꽃이 있는지 몰랐다. 아니 꽃은 늘 피어 있었으나 내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이 맞겠지. 작년 벚꽃 나들이는 그렇게 집 앞에서 이루어졌다. 교통정체나 인파 걱정 없이 아무 때고 나가서 아무 시간에나 찍을 수 있으니 꽃도 우리 얼굴도 해사했다.     


봄은 그렇게 내 주변에서 피어났다. 멀리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던 2020년 봄.

2021년이면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올해도 여전히 그렇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지만 우린 모두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나도 복직을 했다.     


겁쟁이에 세상 걱정은 모두 짊어지는 나는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매일이 고단했다. 퇴근해 씻고 나면 잠은 무섭게 몰려왔고 나는 무력하게 누웠지만 불안한 마음에 새벽 두 세시부터 눈이 떠지곤 했다. 무엇이 불안했을까? 밤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와 출근하는 반복이 싫었고 불안해하는 부정적인 내 마음이 또 싫어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나의 밤은 그렇게 불안했지만 내 출근길을 지지해주는 고마운 마음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복직을 축하한다며 보내주는 커피 기프티콘, 조금 엉뚱하지만 선물하는 사람을 꼭 닮은 특별한 선물들, (예를 들어 아보카도 김밥 도시락으로 나의 점심시간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직장동료의 캄포 나무 도마라든지, 아이들 미술 선생님의 마음 정화를 위한 색연필 세트라든지。 이런 것을 복직 선물로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담은 메시지들.     


선물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들의 마음이 고마워 순간순간 울컥했다. 만약 내가 소심한 겁쟁이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지 않았을까. 지인들은 별것 아닌 일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나를 알았기에 그들의 방식으로 내게 힘을 주었고 출근길에 온기를 더해 주었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진실로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이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은행나무]




아직 벚꽃은 꽃망울도 보이지 않지만 소로우가 표현한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이 내 주변에 꽃처럼 피어났다.

그동안 1년에 한 번 유명한 벚꽃 명소에서 많은 인파들과 벚꽃을 보았다. 벚꽃의 짧은 개화기간을 아쉬워하며 내년을 기약했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매번 더 화려하고 특별한 장소를 찾기 위해 애썼다.     


올해도 벚꽃은 집 앞 근린공원에서 식구들과 볼 것이다. 그것이 아쉽지 않은 것은 집 앞 근린공원의 벚꽃이 다른 명소들보다 빠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 벚꽃보다 생생한 꽃이 피어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해 주는 주변인들의 우호적인 감정이 진해 로망스다리의 벚꽃보다, 하동 쌍계사 벚꽃 길보다 더 흐드러지게 퍼져가고 있다. 게다가 서로를 위하고 기억하려는 마음은 벚꽃 개화시기처럼 맞추기 어렵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내가 기억하려고만 한다면 언제까지고 활짝 피어있을 것이다.     


공기처럼 너무 흔하고 자연스러워서 발견하지 못했을 소중한 감정을 두려움 속에서 발견하니 내 소심한 성격이 어쩌면 축복이 아닌가 싶은, 우호적인 감정이 충만한 따뜻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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