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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05. 2019

결혼이라는 이름의 외줄타기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결혼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여자의 허영을 지적하고 일생에 한 번 씩이라는 생각이 살림 차릴 돈을 결혼식에 탕진한다고 하였다. 또 신식 결혼식에 연미복을 입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논하며 직업부인 구락부에서 신구식을 절충하여 만든 혼례복을 소개하였고, 친구 결혼식에 들러리 서는 것이 고역이라고도 하였다. 피로연에 대하여는 차만 먹는 것은 너무 소홀하여 안된다고 지적하고 과자만 줘서 보내는 것은 더욱 안된다고 한다. 과자를 주는 것은 치사하고 섭섭하기조차 하다는 의견인데 그것은 즐거운 날 얘기하며 함께 놀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풍습대로 결혼식엔 국수가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 여성. 1936년 6월


서옥제에서 연원한 서류부가혼(이후 구식 혼례)은 여자 집안의 경제력과 남자 집안의 노동력 상황 등의 사정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변형되며 조선 말기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렇게 여러 모양으로 유지되던 구식 혼례가 일제강점기에 들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서명부 #후록코트 #다과회 #순백의드레스 #피로연 그리고 #종교예식


개화와 일제 강점이라는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결혼 문화가 등장 한 것이다. 


예식장 같은 예식을 위한 공간에서 드레스로 대표되는 연미복을 입고 예식을 치르며, 하객에게 식사와 답례를 하였다. 식을 마치면 전통에 따라 시 어른들께 폐백을 올렸으며, 남자측에서 준비한 집에 신혼집을 차려 평생을 살았다. 종교예식은 이보다 조금더 서구화된 형식을 띄었으나 알맹이는 더욱 가부장제에 부합했다. 

종합하자면 서구와 일본의 예식 그리고 조선 중반 이후의 가부장제가 결합된 형태의 것으로 재탄생 한 것이다.




결혼하려는 여성에게 있어 예단과 혼수 준비는 필수적인 과제다. 오늘날 혼수 시비의 소지는 예단에서 비롯되며 예단의 준비는 혼인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되었다. 예단이란 아직도 혼인이 동등한 자격의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집단과 집단 간의 결합, 한 집안의 여성이 한 남성의 집안으로 입적된다는 의식의 부산물이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 집 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단은 한 식구로서 통합될 가족집단에 대한 보상과 교환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보상 의식은 기존 세력인 신랑 가족에게는 하나의 권리로 인식되어 예단 품목을 결정하고 요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된다. 혼수에 대한 요구와 함께 혼수를 생략하는 결정도 신부의 선택이 아닌 남편 집안의 선택이며 결정권 안에 놓여있게 된다.

 (중략)

신랑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능력이 안정되고 보장된 직업일수록 혼수의 양이 상대적으로 커지거나 그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항간의 '사'자 붙은 신랑감에 '열쇠 몇 개'등의 속설은 오늘날 '사'자가 가진 직업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교환관계가 성립될 수 없거나 그 성립도가 약한 경우, 예를 들면 남성의 학벌이 여성보다 낮거나 무직이거나 경제력이 약하거나 집안에 결함이 있는 경우 여성 측의 예단 및 혼수는 생략되거나 그 양이 축소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경우 반드시 혼수의 양이 조절되는 것은 아니다. 시집을 무시한다는 항의 때문에 오히려 더 성의를 표시하여야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의례의 힘을 빌려 시가에 보다 높은 경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현대 결혼의 의미 (안정남. 1991)



이는 비단 1991년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2019년 현재에도 유효한 현재 진행형의 사실이다.

2019년 현재의 결혼은 어떠한가.

집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예전처럼 남자가 집을 해오고 여자가 채우는 결혼의 방식은 양쪽 집안의 경제적 부담에서부터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다. 예물과 예단 같은 것은 '허례허식'이라며, 실질적 의미 없는 겉치장을 버리고 두 부부가 주체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풍조도 자리 잡았다. 물론 더 화려하고 고급화된 예단과 예물, 예식 또한 새롭게 만들어지고 보편화되고 있다. 물론 "예단 안 해 온 며느리"꼬리표도 여전하다. 안정남의 표현의 빌어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낭만적 부부 중심주의'사이에서 우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결혼생활은 1990년대의 그것보다 단순한 듯 더욱 복잡하다. 일단, 결혼하여 한 가문과 그 마을에서 평생을 살며 일생이 지나가던 시절이 아니다. 양가 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둘이 나가 벌어도 내 집 하나 온전히 마련하기 빠듯하며, 양가 부모의 도움이라는 것도, 정말 여유 있는 가정이 아니고서는 기실 그 부모의 노후이자 기둥뿌리이다. 열심히 벌어 납부한 세금으로 부모 세대의 국민연금을 충당하지만 정작 우리 세대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며, 당장 우리 식구 먹고살기도 벅차서 부모 세대 봉양은 국가의 몫이라지 않나. 오연호는 "육아서에 사회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결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혼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정작 중요한 결혼생활에 관한 담론에는 사회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페미니즘과 전통적 가부장제의 대립구도만 존재할 뿐이다. 양가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나와 내 남편은 적대적 관계가 아닌 동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식은 현재를 살고 결혼생활은 과거로 타임워프 하는 우리네 삶은,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지 않은 채 전통이라는 이름에 매몰된 우리의 무지함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2015년 2월에 폐지된 간통죄는 사실 식민지 시대에는 여자에게만 적용되었다. 

분단 이후에 들어서야 부부 쌍방에게 적용되었고,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및 인용

가족의 민주화와 혼인 (이희재. 1991)

현대 결혼 의례의 의미 (안정남. 1991)

전통혼례의 연속과 단절 (박혜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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