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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y 29. 2019

장가드셨어요?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다음 중 “장가들다”의 옳은 우리 뜻은?

1.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다.

2. 장인의 집에 들어가 살다.



정답은 2번. 

“장가들다(入丈家)”의 원 뜻은 신랑이 여자의 집에 와서 혼례식을 올리고 장인(丈人) 장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고구려의 서옥제에 연원을 둔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장가든다는 게 데릴사위를 뜻하는 것이냐며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서옥제를 처음 들었을 때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잠깐, 그럼 겉보리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않는다는 말은 처월드의 고대판에서 기원한 것일까? 그만큼 더럽고 치사해서? 

그러고 보니 “양반은 어려서는 외가덕, 장가 들어서는 처가덕, 늙어서는 사돈덕으로 산다"라는 옛말이 있기는 하다. 



『혼인하는 풍속이, 먼저 언약으로 혼인이 정해지면 여가에서는 본채 뒤에 작은 집을 짓는다. 이를 사위집(서옥)이라 한다. 날이 저물면 사위가 여자 집 문밖에 와서 제 이름을 말하고 무릎 꿇고 절하면서 그녀와 함께 유숙할 것을 여러 번 청한다. 그녀의 부모가 이것을 듣고 작은 집에서 동숙하도록 허락한다. 곁에 돈과 비단을 놓고 자녀를 놓아 장성한 후에, 부인을 더불어 남가로 돌아간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편)


고대 한반도의 결혼 의식에 관한 박혜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남녀가 서로 좋아하여 혼인하기로 합의를 보면 우선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정중한 태도로 청혼을 하고, 여자의 부모가 혼인을 허락하면 남자는 장가를 들어 여자 집에서 혼례를 치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서류부가혼의 풍속이 고구려에서 끝나지 않고 고려조 이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 깊게 보아야 한다. 


성리학이 들어오며 고려 말부터 결혼제도에 대한 정치권/제도권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조선에 들어 왕조가 앞장서 혼례 제도의 본을 보이며 새로운 결혼문화의 정착을 위한 시도를 하였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남자가 처가에 거하며 처 부모를 마치 자기 부모처럼 여기고, 처 부모 역시 사위를 자기 아들처럼 생각하는 가족생활이 지속되었다. (성종실록. 206권. 성종 18년 8월) 

영조 25년에 사대부의 혼인에는 반드시 서류부가혼의 관습을 따르지 말고 친영할 것을 명하는 전지가 내려졌고, 영조 40년에도 유교의 전통에 걸맞은 혼인이 실행되지 않는다고 통탄했다는 자료를 보면, 민간뿐만 아니라 사대부가에서도 오래도록 서옥의 전례를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명종대에 이르러 각 가정의 상황과 경제여건에 따라  절충되기 시작하였고, 반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17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가족 구성에 사위와 외손 혹은 장인과 장모가 포함되는 양변적 방계가족이 같은 성씨를 기준으로 하는 부계 직계가족으로 변하였고, 장남 우선의 상속 관행이 생겨났으며 양자 제도가 강화되어 부계 혈연의 계승이 중요시되었다. 적서의 차별이 심해졌고, 출가외인의 관념이 강해지며 그 결과로 가족 내 여성의 지위는 가장 열등한 지위로부터 시작하는 시가에서의 성취 지위의 형태로 바뀌게 됐다. 여성이 유교 사회의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의 이데올로기에 구속되기에 이른 것이다.(최재석, 1983)


유구한 역사를 타고 전해 내려온 가부장제의 전통의 그 유구함은 진정으로 유구하며, 불변의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문화적 전통’과 ‘전통사회의 문화’가 있다고 한다.  

전통사회의 문화란 현대사회에서는 적합성을 이미 상실한, 과거의 전통적인 사회구조에서만 적합했던 문화적 유산을 말한다. 문화적 전통은 현대에서도 적합성을 유지하고 있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문화적 유산으로서 현재의 사회환경 속에서도 생활양식이 되고 있는 문화를 뜻한다. (임희섭.1984)

근래 들어 우리의 혼인법과 가족법은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크게 개정되었다. 이는 혼인의 의미와 관행이 가부장제의 혼인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문화적 전통이라 여겨지는 전통사회의 문화인지, 정말 말 그대로 전통사회의 것인지 잘 모르겠는 순간들이 있다. 현재는 과거와 다르나 과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은 때 말이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는 데에 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시대에 따라 법과 제도가 변했고, 정치 사회 문화에 따라 변하고 변했다. 

쉽게 변하지는 않았어도, 그래도 변해왔다. 


그러니, 21세기에 장가드신 당신. 


장가드셨습니까?


참고 및 인용

한국 혼례의 연속과 단절 (박혜인. 1991)

한국의 전통혼례 연구 (박혜인.1991)

한국의 사회변동과 문화변동 (임희섭. 1984)

가족의 민주화와 혼인(이효재. 1991)

한국 가족제도사 연구(최재석.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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