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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pr 22. 2019

불경하고도 새롭고 어색한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시댁을 시가라 부르고, 도련님을 시동생이라 의지를 들여가며 부를 때마다 왠지 모를 어색함과 불경한듯한 느낌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경한 호칭을 계속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 불쾌함이 더 싫어서였을 것이다.


2018년 말, 불평등한 결혼문화에 대한 담론이 수면 위로 거세에 올라왔다. 며느라기들의 철마다 돌아오는 명절증후군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고 폭발적이었다. 그 담론 안에서도 시댁 가족을 부르는 호칭에 대한 문제 제기는 빠지지 않는 핫이슈였다.


국립국어원에서 시행한 호칭어 사용실태조사에서,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동생을 높여 부르고 결혼한 남성이 아내의 동생을 높이지 않고 부르는 관습은 고쳐져야 한다는 의견이 65.8%가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2018년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글은 시댁 가족에 대한 호칭의 대부분에는 ‘님’ 자가 들어가나 남성의 처가 가족에 대한 호칭에는 ‘님’ 자가 없는 것, 남편의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까지 아가씨 도련님으로 높여 불러야 하지만, 남성은 장모ㆍ장인ㆍ처제ㆍ처형이라고 부르는 등, 성평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호칭의 개선에 나라가 나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나이가 깡패이고 계급인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큰 이벤트와 동시에 성별에 따라 서열이 뒤바뀌는 것에 대한 정서적 반발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며느리들만의 불편함 만이 아니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의 글을 옮겨보자.

“배우자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것은 아내라는 말의 쑥스러움, 처라는 말의 답답함, 내자라는 말의 고리타분함, 마누라라는 말의 무도함, 우리 집사람이라는 말의 시대착오성 등을 우회하고 기피하려는 하나의 대화전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곧 호칭 문제만큼은 외래어보다 더 불편한 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한국어 사용자들의 슬픈, 그러면서도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는 어쩌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불쾌한 호칭과 관습들을 불변한 것이라 여기며 부대껴가며 살게 되었었을까.


2011년 8월, 손자와 손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손주”가 인정되었다. 

손주.

내가 자라던 시절에만 해도 귀하디 귀한 손자를 이르는 다른 표현이었다. 

손자도 손녀도 모두 귀하다는 의식의 변화와 사회 인식의 변화에 따라 호칭이 변화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시대를 며느라기로 살아가며 느끼는 이 불쾌함과 불경함, 새로운 호칭이라며 정부나 사회단체에 의해 제시되는 호칭들의 어색함은 명절마다 철마다 찾아오는 특정 집단의 히스테리가 아니라 뒤떨어진 관습이 달라진 사회문화를 뒤쫓아 오느라 겪는 성장통은 아닐까 의문이 든다.




참고 및 인용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김하수 외. 한겨레 출판)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인데, 내 동생은 처남 처제?” (동아일보. 2018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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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동생은 도련님ㆍ아가씨인데, 내 동생은 처남ㆍ처제?”

[중앙일보] 입력 2018.09.23 이에스더 기자


결혼 2년차인 회사원 박모(32ㆍ여)씨는 “명절마다 가족들이 모이면 호칭 때문에 어색하다”라고 말했다. 박씨의 남편은 2남1녀 중 장남이다. 박씨는 남편의 두 동생보다 나이가 5살, 6살 많지만, 두 사람에게 아가씨, 도련님이라 부른다. 박씨는 “한참 어린 시동생들에게 아가씨, 도련님이란 호칭은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아랫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며 “남편은 내 여동생에게 처제라 부르는데 나는 남편 동생들에게 존칭을 써야하니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남편의 동생은 한참 어려도 존칭써온 관습 
 "가족 간 호칭에 남은 성차별 개선" 문제 제기


2012년 국립국어원이 낸 ‘표준 언어 예절’ 에 따르면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로, 아내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른다.  한 쪽은 존칭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 관습에 따라 별 생각 없이 써왔지만, 최근 이러한 가족 간의 호칭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 제기는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시작됐다.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을 청원합니다’는 제목의 청원글은 “여성이 시댁 가족 호칭은 대부분 ‘님’자가 들어간다”며 “하지만 남성의 처가 가족 호칭엔 ‘님’자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청원자는 “심지어 남편의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과 남동생은 ‘아가씨’와 ‘도련님’이다”며 “반면 남성은 장모ㆍ장인ㆍ처제ㆍ처형이라고 부르는데, 2017년을 살고 있는 지금 성평등에도 어긋나며 여성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호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바로 고쳐져야 하며 수 많은 며느리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보호 받아야 할 권리며, 나라가 나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국어원이 2016년 설문조사했더니 ‘도련님, 아가씨’, ‘처남, 처제’로 부르는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65%였다.  

이미 ‘표준 언어 예절’과 달리 부르기 쉬운 호칭을 쓰는 가정도 많다. 회사원 이성민(36)씨 부부는 상대방의 동생들에게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른다. 이씨는 “아내 동생도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처남보다 ‘OO아’하고 부르는게 편하다”라고 말했다. 주부 민지영(33)씨는 손 윗 시누이에겐 ‘언니’, 손 아래 시누이에겐 이름을 부른다. 민씨는 ”결혼 초부터 자연스레 그렇게 부르고 있다. 어색하지 않아서 좋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가족 간 성차별적 호칭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1일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된 제 3차건강가족기본계획(2016~2020) 보완 방안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됐다.


김숙자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장은 “남편의 동생은 나이가 한창 어려도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로 존칭을 쓰고, 아내의 동생은 존칭을 쓰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의 집을 시댁이라 하고, 남편은 아내의 집을 처가라고 하는데 이런 것도 차별이다”라며 “용어가 잘못됐다기 보다는 차별이기 때문에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 써온 호칭인 만큼 대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10여년 전부터 여성계에서 문제 제기 해왔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바뀌지 않았다. 김 과장은 “현재 국립국어원이 가족 간 호칭 개선에 대한 용역연구를 진행 중이다. 개인적으로 양가 모두 똑같은 가족인 만큼 손아래는 이름을 부르면 어떨까 싶다”라며 “정부가 호칭을 강제로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좋은 대안을 제시하고 ‘이런 것도 써보시라’고 제안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나이 든 사람은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데, 젊은 층은 다르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공청회ㆍ방송토론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개선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부르거나 같이 존칭을 쓰는 등의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권고안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면 국립국어원과 협의해 표준어를 변경하게 된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남편 동생은 도련님ㆍ아가씨인데, 내 동생은 처남ㆍ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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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호칭 개선’ 반기지만…“ 명절에 시댁 먼저 가나요

동아 뉴스1 2019-02-02 09:02수정 2019-02-02 09:03    


“호칭만 바꾼다고 대우 달라지지 않을 ” 회의적 시각

전문가 “제례문화·성별임금격차 해소 위한 정책 노력 필요” 


#.결혼 후 첫 시가 방문을 앞두고 있는 김민정씨(31·여·가명)는 시가에 먼저 들러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김씨는 “큰 불만은 없지만 아무래도 남자 쪽 차례에 먼저 오는 걸 원하시긴 한다”며 “만약 친정에서도 먼저 오길 원했다면 갈등이 생겼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유미씨(30·여·가명)는 최근 결혼 수 년만에야 ‘시친가에 가지 않을 권리’를 쟁취해냈다. 또 이번 설에는 시가 대신 친정에 먼저 가기로 했다. 설 당일을 시가에서 보내는 절충안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설거지 기계’ 정도로 여기는 시친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절반의 승리’였다.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28일부터 성별 비대칭적 호칭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정부가 가족 내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바닥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은 위와 같은 가족 내 차별적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호칭만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씨의 경우, 결혼 직후 처음 맞은 명절에 제사를 모시지 않는 시가 대신 시친가에 갔을 때 ‘설거지를 하라’며 고무장갑부터 받아들어야만 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정씨는 거의 체감하지 못했던 가족 안에서의 성차별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됐다.

정씨는 “바쁘게 식사 준비를 하고 나서 내 차례가 됐을 때는 이미 거의 식사가 끝이 났고 음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며 “도저히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수저를 대충 놀리다 보니 이미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식사와 간식 시중을 들고 뒷정리를 하는 것은 온전히 집안 여성들의 몫이었고, 제대로 끼니를 챙길 짬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예상 못했던 게 아닌데도 막상 일이 닥쳐 보니 모멸감을 크게 느꼈다”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자고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하자마자 고무장갑부터 받아드니 무척 서러웠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경우 마음씨 좋은 시부모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 내 성차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쪽이다. 시가에 가서 혼자 일할 것인지, 남편과 함께 일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하는 쪽이 자신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김씨는 “이런 것을 남자 쪽에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지만 여자 쪽에서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것 자체가 아직 (가족 내) 문화가 완전히 평등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이제 막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여성들이 결혼 제도와 가족 문화의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최근의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중국의 인구정책 변화와 한중 미혼여성의 결혼·출산 가치관 비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혼 제도가 남편 집안 중심이기 때문에’라는 응답한 비율이 18.3%로 나타났다.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37.3%)와 ‘아직 결혼하기는 이른 나이라서’(21.1%)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치다.


‘남편 집안 중심의 결혼 제도’의 단면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호칭이다. 남편 가족의 경우 아버님, 어머님, 도련님, 아가씨 등의 존칭을 사용하는 반면, 아내의 가족은 장인, 장모, 처남, 처제 등으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와 일반 시민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여성가족부는 다음달 22일까지 문제 인식 여부와 대안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청회를 거쳐 가족 호칭 개선 권고안을 올 상반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당사자들은 정부 방침을 대체로 반기는 모양새다. 김씨는 “왜 남편의 남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데 내 남동생은 ‘처남’인지, 왜 남편의 여동생은 ‘아가씨’라고 부르고 내 동생은 ‘처제’라고 부르는지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정씨 역시 “생각은 말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호칭부터 개선해 나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가에서 며느리가 받는 대접과 처가에서 사위가 받는 대접이 과연 같아질 수 있냐는 의문은 든다”며 회의적인 입장도 함께 드러냈다.


전문가 역시 정부가 호칭의 성차별 문제를 공적 사안으로 받아들여 인식 전환에 나섰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대표적인 가족 내 성차별 문화인 제례문화, 남성만이 가장의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도록 하는 등 각종 정책적 노력을 병행할 것을 조언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비대칭적 가족 호칭은) 여성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커리어를 쌓아도 부계혈통 중심의 친족 문화에서는 하부 계통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씨’로 높여 부르는 것이 좀 더 평등한 문화라는 제안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례문화라는 것은 (여성에게)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부엌이다’라고 알려 주는 문화이다. 제례의식을 관장하는 이는 남자이고 여성은 노동을 하지만 중심에 서지 못한다”며 “지금의 제례 문화는 유구한 문화가 아니라 박정희 정권 당시 급조된 것이기에 충분히 변화가 가능한 만큼 정부가 나서서 간소화하도록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녀 소득 격차가 37%에 이르는 이상 가족 내에서 여성의 위상이 낮고 남성은 가장이라는 권위적 의사 결정권을 갖는다”며 “임금격차 해소가 병행돼야만 가정 내 성차별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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