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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08. 2019

시월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신혼살림에 장롱은 필수라고 들었다.

우리 엄마만 해도 장롱과 화장대, 침대 세트를 오래오래 고이 잘 쓰셨으니까. 나도 당연히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우리 집에는 장롱이 없다. 장롱은 없고 드레스룸이 있다. 이사 몇 번 하고 애 낳아 키우다 보면 비싼 장롱이 걸레짝이 된다는 언니들의 조언을 듣고, 나는 신혼집에 장롱 대신 시스템 옷장을 들였다.

신혼가구를 들이며 엄마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남자가 집을 해오던 시절, 그러니까 남자네 집에서 영원히 오래도록 시부모님 모시고 살던 시절에는 장롱이 정말 필수였을 것이다. 그 장롱처럼 물도 말도 문화도 낯선 집안에서 살아남자니 며느리는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장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참으로 당연했을 것이다.

여자가 못 배웠던 그 시절에는 더더욱 당연했을 것이다.


시월드

그 당연했던 시집살이가 새로운 시대에 얻은 이름이다.

좋게 보면 신식이고, 까놓고 보면 시집살이의 부당함을 느끼는 배울 만큼 배운 며느리들의 언어유희이다.

21세기를 살다가 종종, 생각보다 자주 개화기 이전으로 타임워프를 하는 어느 집 귀한 딸들.

그 괴리를 풍자하는 그녀들의 언어유희, 시월드.

여느 아들 못지않게 배우고 자란 어느 집 귀한 딸내미들은 안타깝게도 백치가 아니라서, 시공간을 오가며 부당함을 인식하고 불만을 표출하며 괴로워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곱고 예뻤던 새댁의 마음은 다 망가진 장롱 같아진다지.


당연하다 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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