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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27. 2019

맘충이 아니라 팸충이겠죠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동네 좀 유명하다는 메밀국수집에서 목격한 일이다.
평일 조금 늦은 점심시간.
한 가족이 룸에 앉아 거나한 식사인지 술판인지를 즐기고 계셨다.
뭐 그런가 보다 했다.
낮술을 하시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니.

하도 사람들이 수군거리길래 고개를 돌려 보니 방바닥에 흩어져있는 종이컵들과 술 취한 아저씨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식당은 물컵 대신 종이컵을 사용한다.
앞자리 일행의 말을 듣자니, 방안에 어린이가 있고 그 종이컵들을 발로 차며 놀고 있으며 어른들은 뭐 “내 새끼 잘한다!”라며 방관하고 있다나 뭐라나.

‘뭐냐?’
...싶던 즈음, 직원분이 방에 들어가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항의인지 경고인지를 했다. 이제 좀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겠지 싶던 순간, 그 가족의 연장자로 보이는 술 취한 아저씨가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걸 보았다.
앞에 앉은 이의 말에 의하면... 팁이었다고 했다.

지갑을 꺼내 팁을 줬다고.
받으셨는지 안 받으셨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관심도 없다.
그래도 눈치는 보였는지 우리가 나올 때까지 그 어린이는 더 이상 종이컵을 발로 차며 놀지 않았다.
대신 탑 쌓기를 했다지.
날이 더워 메밀국수 한 사발 먹으러 갔다가 참 대에 단 한 가정교육을 봤네.

식사를 마치고 일행과 헤어져 오늘의 일을 보러 다니던 중이었다.
등기소에 가야 하는데 5부제에 걸려서 주차장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근 큰 상가에 주차를 하고 커피 한 잔을 사려 마땅한 카페를 찾다가 <영유아와 유모차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인 곳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노키즈존.

속된 말로 맘충과 그의 어린아이들을 거부하겠다는 거지.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노 키즈존을 선언했다고 지역 맘 카페에서 불매운동을 당했던 바로 그 카페였다.
밖에서만 봐도 참 쾌적해 보였다. 애 엄마인 나도 들어가 앉아있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문득 점심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 가족에서 아이와 엄마만 따로 외출을 한다면, 분명 그들은 맘충이 되고 유충이라 불릴 것이다.

유유상종에 부창부수라고,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텐데 왜 벌레 소리는 엄마와 아이만 듣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따지고 들자면, 맘충 유충이 아니라 팸충이 더 적당한 혐오의 표현이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엄마가 아이를 오래 돌보니 아이와 엄마가 한데 묶여 눈에 들어오는 것뿐이지.


근데 사람에게 꼭 벌레 충 자를 붙여야 할까?

다섯 살 어린이를 키우는 나도 어딘가에서는 맘충일 것이다.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게 양육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일단 아이와 함께하면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이고 힘이 든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맘충이 되어있겠지. 나는 사람이고, 내 새끼도 사람인데 말이지.

사람으로서 지킬 적정선의 예의와 배려가 없는 것을 벌레와 같다 비난하고 혐오하는 세태가 만연하다. 그 비난과 혐오의 이면에는 견디기 힘든 불쾌함이 깔려 있을 것이다. 불쾌하니까.

그럼 서로가 적정선의 예의를 지키며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서로 불쾌해하며 어차피 상대가 나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테니 더더욱 일단 내가 편한 것을 우선에 두는 게 작금의 사회 분위기라 좀 씁쓸하다.

어쩌다 우리는 분노와 몰상식이 상식이 되고, 상대적 약자를 더욱 비난하는 무뢰배가 되어버렸을까.


어쨌든.

맘충이 아니라 팸충이겠지.

맘충을 욕하는 아저씨 당신도, 아가씨 당신도 되돌아보면 어디선가 벌레 소리 들을 행동을 하고 있었을걸. 그럼 우리는 모두 벌레인가.


#혐오사회 #맘충 #유충 #노키즈존 #몰상식 #예의 #분노 #불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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