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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Nov 22. 2019

당신은 좋은 부모입니까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곧 폐원을 한다.

참 좋은 곳이고, 정말 좋은 선생님이 계신 곳이라고 추천에 추천을 받아 온 곳이었다.

항암을 시작하고 아이에게 분리불안이 찾아온 1년 전 이맘때, 나는 발도르프 교육을 선택했다. 현실적으로 내 상황에 최선인 국공립어린이집은 외벌이 외동 가정인 우리는 감히 문턱조차 넘을 수 없었고, 숲을 좋아하는 내 아이에게 잘 맞는 기관이기도 했고, 더 솔직히는 임신 전부터 내가 관심을 두었던 교육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

그곳의 울타리는 참으로 탄탄하고 포근했다. 불안과 눈치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아이의 표정은 어느 순간 눈 녹듯이 녹아 꽃처럼 밝아졌고, 엄마들 틈바구니 속에서 나 또한 그렇게 적응을 했다. 이렇게 3년을 보내고 초등학교 진학을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어린이집은 곧 우리를 떠난다.

작은 동네에서 재건축을 동시다발로 진행하는 바람에 어린이들이 많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달까. 몇몇 가정형 어린이집들이 문을 닫았는데, 우리도 그 유탄을 맞은 셈이다. 사실 한 두 해는 부모들의 품으로 어떻게든 버텨낸다한들, 하늘 아니 우주 끝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에 집값에 언제고 닥칠 일이었다며 아직도 아프고 쓰린 속을 보듬고 또 보듬는다.



"한 치 앞을 모르겠어"

우리는 어디로 결정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늘 한 치 앞도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고 말아 버린다.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내년 봄에 집 재계약이 도래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지역은 전세도 매매값도 폭등한 데다 아예 매물 자체가 없다. 지난봄에 홀로 되신 엄마와 살림을 합치네 마네 아직도 실랑이 중이고 말이다.

아니, 결정은 났지.

이 도시에서 못 버티면 친정으로 들어가는 거지.

어린이집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만약 우리가 친정으로 가게 되면 매일 라이드를 할 생각이었다.

까짓 러시아워 30분, 운전 좀 하지 뭐.

그러다 상황 봐서 다시 들어오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근데 꼭 발도르프 여야 해?"

계속 이어서 발도르프 교육을 시키자던 남편이 다른 원을 알아보던 중에 생각을 바꿔먹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매달 보육료에 러시아워 라이딩을 하는 기름값 등등을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했다.

그 비용과 에너지면 영어유치원이 아니라 영어유치원 할아비라도 해 줄 수 있겠다고.

돈 앞에 무너지는 거냐 비난을 하려다 말을 삼켜버렸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가능한 회계처리를 다른 곳에서는 해줄 수 없다고 했다. 협동조합들이다 보니 운영상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다른 방식으로 서류를 내줄 수 있다고는 하던데 안타깝게도 그 서류는 남편의 회사에서 인정해주는 양식이 아니다. 그러니 에누리 없이 원비를 다 부담해야 한다.

결국은 집이 화근이다.

우리가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그저 내가 회사 지원금만큼만 더 아끼고 살면 될 문제였던 것이다.

또다시 한바탕 가슴속에 태풍과 쓰나미가 몰려왔다.

내 팔자는 어쩌다 이모양이 되어서...

나는 어쩌다 저 흙수저를 만나서...

하지만 나는 남편을 비난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 선택한 결혼이고,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안돼! 넌 종일반이야. 그러니까 낮잠 자고 와."

별 이유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아이가 등원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엄마 따라다니며 군것질 얻어먹는 재미를 알게 된 아이가 온갖 이유를 대며 앞으로 반일반을 하고 싶다고 했던 날이었다. 낮잠 자기 싫다고 앞으로 낮잠 안 자고 오겠다는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났다.

반일반과 종일반 차액 10만 원.

그 10만 원이 뭐라고 나는 아이에게 그토록 단호하게 잘랐던가.



"그러게. 왜 꼭 발도르프여야만 하지?"

한참을 생각했다.

환절기 비염에 감기몸살이 겹쳐 한 달이 넘도록 감기약에 빌빌대면서도 생각하고 읽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닿은 그 끝에 내가 있었다.

내 만족과 자랑과 결핍에 의한 집착은 아니냐고 되묻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사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어떠한 삶과 교육법을 선택하건 유난함의 절정을 찍는 일이다. 특히 주변의 참견은 많고 책임은 없는 이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각자 자신의 아이와 자신과 가정을 위해 알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선택한 것일 뿐인데, 다른 누군가와 다른 선택을 한 내가 더 우월하다거나 옳다고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 가진 열등감과 콤플렉스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나는 교회 유치원을 다녔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이 몸에 익는 것만큼 중요한 교육은 없다 생각하신 부모님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병설유치원에 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배우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근데 엄마, 엄마는 왜 나를 병설에 안 보냈어?"

아이의 진학을 놓고 고민을 하다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기껏해야 ‘신앙으로 키우는 복’이나 ‘몸이 너무 약해서 경쟁에서 못 이길 것 같았다’ 같은 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어."

자수성가하신 아빠 엄마의 지난 삶을 알기에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치맛바람 거세기로 유명했던 동네에서 아이를 키운 엄마가 할 소리가 맞나 싶어 순간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 엄마의 2 연타.

"그래도 너 잘 컸잖아."


학원을 일주일에 열몇 개씩 다니는 애들보다 나는 공부를 더 잘했다. 그게 잘 큰 거라면 잘 자란 게 맞다. 하지만 나는 그게 늘 결핍이었고 상처였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

나는 힘에 부치는데 그래도 아빠엄마의 자랑이 되기위해 그냥 계속 가야만 했고, 딸이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외고 담임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이긴게 뿌듯한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변으로부터 아이에게 그만 좀 애를 쓰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좋은 말로 애쓴다 이고, 솔직한 말로는 유난스럽다에 가깝다. 내 안에 있는 내가, 내 엄마와는 다르게 내 딸을 키우고 싶어서 또 극성을 떨어댔나 보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게 발도르프였다.

모든 면에서 나와 잘 맞았다. 아이를 낳게 되면 꼭 이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상황도 이곳으로 풀렸다. 숲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자란 내 아이는 이곳에서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사실 투병 중인 내 상황에서는 아이를 좀 더 길게 보낼 수 있고 부모의 품과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곳이 가장 좋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래도 나는 좋다고.

이게 최선이라고.

이 정도 희생은 감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유아기를 보내면 되겠다 마음의 긴장을 놓기 무섭게 또 상황이 이렇게 꼬여버릴 줄은 참말로 몰랐다.



아이를 위한 선택에 내 만족과 결핍이 뒤섞여 있음을 직시한 순간, 예전에 동네 선배 엄마에게서 들은 그 한마디가 불쑥 올라와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아이의 유아기에 발도르프 교육만 한 축복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민트 씨, 아이를 정성껏 키우는 곳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야."


아이를 정성껏 키우는 것.

아이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교육법과 좋은 교육기관을 제공해주는 것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것일까.

나는 내 희생에 대한 보답을 아이에게 바라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이쯤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결론은 인샬라.

우리가 가장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것부터 대안에 올려보기로 했다.

병설유치원 추첨이 나오는 다음 주면 1차 결론이 나온다. 그래 이렇게 가는 거겠지. 이렇게 나도 자라는 거겠지. 내 상처와 만족에 집착하지 않는 양육, 엄마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그 운명 같은 유난함을, 오늘 나는 또 이렇게 마주한다.



때마침 읽고 있던 책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좋은 부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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