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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Nov 27. 2019

생일상엔 육전

찌개도 못끓이던 여자

우리 아이는 발로르프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협동조합 어린이집은 여러모로 부모의 품이 많이 드는 곳이다. 여러 품을 기꺼이 내며 내 새끼 아닌 우리 새끼들을 키우는 곳, 그런 곳이 협동조합 어린이집이다.


그 품 중에 하나가 생일상이다.

친구들에게 생일 맞은 아이가 한 끼를 대접하는 의미로 식사를 준비한다.

사실 아이의 생일잔치가 있는 날 항암이 잡혀있어 부담스럽긴 하지만, 내년부터는 병설유치원으로 진학을 하게 되어 이렇게 생일을 치르는 일도 마지막이라 기꺼이 온 마음을 내기로 했다.


미역국 전 샐러드 식혜 간식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 나눠먹을 수수팥떡 재료들

그리고 부모가 쓴 생일편지

생일상을 꾸밀 꽃

꽃은 오늘 사서 다발을 만들어 보내면 되고,

편지도 써서 보내고,

수수팥떡 재료는 동네 떡집과 생협에서 조달했다.

이제 남은 건 장 봐서 음식 해 보내는 일뿐.

엄마가 만든 왕관이 생일 선물

이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다.

아이의 어린이집에 보낼 생일음식을 두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샐러드는 뭘로 할까?”
•스테이크 들어간 거.

“전은.. 세 종류는 많아서 남는다고 두 종류만 보내래. 아이들이 소떡소떡 좋아한다던데 그거랑 뭐가 좋을까?”
•육전

이러다 미역국은 미역을 곁들인 소고깃국을 하자 할 기세다.
역시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건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투영하는 행위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남편은 어릴 적 고기를 양껏 먹고 자라지 못한 게 늘 슬프다고 했다.

아이 돌 무렵이었나 시어머니께서 아이가 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생일상에 수수팥떡을 올려야 한다고 남편 통해 말을 넣으셨는데, 정작 내게 수수팥떡을 꼭 해주라고 하신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아들들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하셨다고 한다. 이 또한 당신의 아쉬움을 대신하려는 마음일 테지.


어쨌든!
육전이랑 소떡소떡 안 하기만 해 봐라.
난 전에는 손도 안 댈 거다.

아, 생일 꽃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고기 꽃 하자고 할까 봐.



+, 더하는 글

어린이집에 생일꽃이 들어와 신난 우리집 언니

“엄마. 꽃은 해라바기로 해주세요.”

어린이집 생일 꽃장식은 뭐가 좋을지 고민하는 내게 아이가 말했다.

우리 집 언니는 아직 글자를 몰라서 해바라기 그림이 이름표다. 해바라기 어린이의 생일이니 해바라기가 와야한다는게 우리집 언니의 논리.

보통은 작은 화분을 보낸다던데, 생일상을 꾸밀 해바라기 꽃다발 만들어 보내겠다고 아침부터 꽃시장에 갔다. 겨울 꽃값이 만만치 않았다. 해바라기는 제법 저렴해서 넉넉하게 산다고 샀는데도 어린이집 화병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걸 또 채워보겠다고 동네 꽃집으로 달려갔다.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어 무난한 안개꽃으로 볼륨을 키워 놓으니 제법 봐줄 만하다.

바삐 뛰는 엄마 따라 같이 뛰다 넘어진 딸은 한쪽 무릎에 구멍이 난 것을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꽃 꾸밈에 정신이 팔린 엄마가 그것도 모른 채 꽃 정리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애 생일상에 육전을 올리자 하는 남편과, 당신이 하지 못한 정성을 며느리가 하기를 바라는 시어머니만 얘기할게 아니었다.

나는 왜 이리 극성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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