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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Dec 08. 2019

왜 그대의 이름은 해인 정인가요?

오늘의 수다


TV를 즐겨 보지 않지만, 일단 보게 되면 넋을 놓고 앉아있게 되는 미남 배우들이 몇 있다.

그중 한 명이 배우 정해인 씨다.

우연히 버스에서 정해인 씨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뉴욕 여행에 오른 토막 영상을 봤다.

"My name is 해인 정."

여행 전 인터뷰였는지 현지 어딘가에서 자신을 소개하던 중이었는지 알기도 전에 나는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걸으며 생각했다.

왜 해인 정이지?

정해인이라는 배우는 정해인이라는 그 자체가 브랜드인 사람이잖아.

출처. 한국방송공사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맛보기 영상


Nice to meet you. my name is 민트 박.


우리는 성이 이름 앞에 온다.

서구에서는 이름이 성 앞에 온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로 자신을 소개할 때면 서양식으로 성의 위치를 뒤로 보내야 한다고 배웠다.

그냥 저렇게 외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외국인들이 우리식으로 자신의 성을 앞으로 빼는 경우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화에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소개할 뿐이었다.

배려의 문제였을까.

동방 예의지국의 후손인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그들의 방식으로 맞춘 것이고, 상대는 예의라는 게 없는 족속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럼 기혼자인 나는 상대의 문화를 배려해 민트 박이 아닌 민트 황'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까지 이르렀다.

나는 박민트인가 민트박인가 민트황인가.


문득 책장에 있던 강정인 교수의 저서,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가 눈에 들어왔다.

서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고 그들이 중심이며, 우리 동양은 상대적으로 열등하고 신비한 지역이라는 통상적인 관념, 즉 서구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라 하셨던가.

언젠가 대학원 수업에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팀의 쾌거를 일컬어 변두리 한국 축구의 세계화(정확한 기억은 아님)와 같은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우리 안에 뿌리 박힌 서구 중심주의의 일면이라 하셨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 안에 박힌 서구 중심주의는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다. 우리는 사대주의를 거쳤고, 이를 왜곡당했고, 서구를 모방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 시절을 지냈다. 과거와 역사, 사관과 세계관에 관한 제대로 된 반성도 평가도 할 겨를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과 천지가 개벽한 산업화를 겪었고 신자유주의의 쓰나미를 맞아 여기까지 왔다. 


퀴어 반대 집회를 하며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나라.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인 이민자가 미국에서 총기 사고를 냈는데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 사람들이 몰려가 죄송하다며 골백번 대신 사죄를 하는 나라.


서구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사실 내가 박민트인지 민트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family name 혹은 surname으로 성을 구별만 해줘도 될 문제였다.


안녕! 나는 박민트야.

surname이 박이고 given name은 민트.

결혼은 했는데, 우리는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아.

그러니 박민트나 민트라고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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