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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23. 2020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인생의 진리가 있네

찌개도 못 끓이던 여자

사실 나는 티비를 잘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인터넷으로 보고, 나머지는 유튜브 토막 영상으로 보는 게 전부다. 넷플릭스도 끊어버린 지 오래고, 무엇보다 집에 티비가 없다. 티비가 없고 클래식 fm만 틀어놔서, 시동생은 우리 집을 절간 같다고 했었다.


해미읍성에서 아이와 연을 날렸다.


작년 이 계절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바로 직전에 골목식당 해미읍성 편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거기에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백종원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식당이 있다며, 육식을 애정 하는 남편이 주말마다 해미읍성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백종원 골목식당 돼지찌개집이 그렇게 가보고 싶다고.
아무리 맛이 좋아도 식당에 줄 서가며 기다려 먹는 걸 싫어하는 인간인지라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너무너무 원해서 어느 주말 아이와 서둘러 서산으로 달려갔었다.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해미읍성 돼지찌개집에 갔다.
줄은 당연히 길었다.
번호표를 받으려고 했는데,
일 도와주시는 분이 저녁 장사 번호표 배부 없이 줄 서는 순서대로 들어간다고 하셔서 세돌 된 아이를 데리고 해미읍성에서 연 날리고 놀다가 간 게 문제였다.
그 사이에 번호표를 나눠줬던 것.
사실은 못 먹을 상황이었지만,
그걸 다 기다리고 있지 못하겠다며 번호표를 받으신 분이 그걸 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쥐어주고 가셔서 음식을 먹고 올라올 수 있었다.

맛있었다.
해미읍성이라는 곳이 아이랑 와서 놀기 너무 좋게 생긴 곳이어서 충청도 방향으로 오게 되면 여긴 꼭 들러서 밥 먹고 놀다가 가면 되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집으로 올라왔다.



최강의 빌런이 나타났다며 우리가 갔던 식당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그 후로 그 식당에 가보지 못했지만, 사람이 정말 너무 많이 밀려 들어서 저러다 사장님한테 번아웃이 오겠다던 우리의 걱정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번아웃이라 믿고 싶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속이 상했다.

저 토막 영상을 보게 된 걸 계기로 그간 나왔던 수많은 골목식당 가게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회자되는 곳들에 관한 영상들을 봤다.
날이 너무 더워 잠을 못 자던 이 초여름의 어느 밤에, 뜬눈으로 골목식당을 봤다.
이걸 보다 보니 인생이 보였다.


출처. youtube. sbs entertainment 캡쳐


그 많은 영상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썸네일이 있었다.
조리방식과 도구와 가격과, 모든 것을 두고 백 대표에게 지적을 받았던 식당이었다. 백종원 대표와 주거니 받거니 설전 아닌 설전이 오가던 중에 나온 식당 주인의 한 마디가 내 눈길을 잡은 것이다.
뭘 줄 거냐니..
이미 그 자체로 큰 기회를 잡은 건데..
솔직히, 이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분과 같이 백종원 대표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가게는 이곳 말고도 많았다.

백종원은 자영업계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인 건가.


출처. youtube. sbs entertainment 캡쳐



백 대표는 포방터 돈가스집을 제주로 이주시켜줬고,
원주 시장 칼국수 할머니 식당을 꾸며줬다.
우주 어디에서도 없을 견적으로.

다들
이런 걸 기대했거나,
정말 백 주부가 유튜브에서 뚝딱뚝딱 만들어 엄청난 맛을 만드는 것 같은 우주 최강의 신박한 비법을 바랐던 것 같았다.
근데 키다리 아저씨도 자기가 좋아야 하는 일이지.
와.. 어떻게 사람들이 저러나 탄식이 나왔는데,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에는 평생 가난하게 살 팔자여서 그렇다는 악담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착잡하기 그지없던 영상의 끝무렵.
한 번도 보지 않았던 포방터 돈가스집 영상이 주르륵 떴다.
그전까지는 포방터 돈가스집 (제주 연돈) 얘기를 들으면,
맛있나 보다
사람이 뚝심이 있나 보네
그런데 너무 고생한다
... 이 정도의 생각 말고는 없었다.
사실 영상도 보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항암 중이었고 돈가스를 먹으면 먹는 족족 속에서 탈이 났던지라 아무리 맛있다 해도 그 가기 힘든 곳까지 찾아가 줄을 서 가며 먹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컸을 것이다.

근데, 이 사장님의 말과 행동을 보니,
와... 사람의 품격이 다르네!


출처. youtube. sbs entertainment 캡쳐

원주 미로 시장에는 할머니 칼국수집 말고 돈가스 집도 있었나 보다.
그 돈가스집 사장님들이 포방터에 와서 돈가스를 배워갔고, 후에 포방터 돈가스 (현, 제주도 연돈)에 방문하는 장면이었다.
점검의 의미였지 싶다.
테스트를 하고 시범을 보일 건데, 사장님이 사용할 재료에 축을 내지 않으려고 내 재료를 준비해 왔다는 장면에 할 말을 잃었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걸 진정 아는 사람이다!!’

출처. youtube. sbs entertainment 캡쳐


하지만 연돈 돈가스 사장님에게 감탄한 건 이것뿐이 아니었다.
상대가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말을 놓지 않는 예의.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습관.
설령 상대에게 듣기 안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알려주는 마인드.
이게 내 눈에 들어왔다.



​최근 들어 힘든 일이 겹치며 많이 침체되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운동이라도 마음껏 하면 좋을 텐데, 발목이 아파서 그마저도 못하니 더 쉽게 쳐지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사람도 적게 만나고 최대한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끄적이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포방터 돈가스 사장님 내외의 모습이 최근 읽어댄 책들의 어느 부분을 관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큰 욕심에 눈이 멀어 디테일을 놓치면 안 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해라.
말을 경박하게 하지 말아라.
예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라.
실수를 인정하고 변명으로 모면하려 하지 말아라.


통상 자기개발서라면 당장 운이 트일 신박한 방법 같은 것을 알려줄 것 같지만, 참 재미있게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마다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고 한결같이 중요하다 강조한다.
그리고 골목식당 또한 수많은 실패와 성공사례들 속에서 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운이 풀리는 시기에는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실력을 입증해 위로 점프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바람이 불 때 연 날리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일까.
운이 풀리고 좋아질 때가 올 거라는 말은 누구나 한다.
그때를 기다리며 버티기는 누구라도 한다.
하지만, 관건은 그때를 준비하는 것에 있다.

​바람이 불 때에야 연을 만들면 늦는다.
하다못해 바람이 불어 가르침을 주었을 때,
설령 그게 흔하디 흔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알아듣고 깨달을 수 있는 귀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평택 모퉁이집 떡볶이 사장님처럼 말이다.


출처. youtube. sbs entertainment 캡쳐




위에 화면 캡처 사진을 사용한 곳 중 두 군데는 상호명과 사장님 얼굴에 모자이크를 했다.
부디 극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 했다.
비록 지금은 욕을 너무 많이 먹지만, 이런 기회를 만나고 이런 관심을 받는다는 것도 어찌 보면 기회라는 걸 부디 깨달으시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원주 미로시장 칼국수집 할머니의 쾌유를 기원한다.
항암 마친 암환자가 아이랑 가서 할머니 칼국수랑 팥죽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어떻게 전할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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