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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17. 2020

나같이 생긴, 내가 쓴 글

오늘의 수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인생 한 방”을 꿈꾸는 걸 보면.
백마 탄 왕자님은 내 남편은 왕자가 아니니 애저녁에 글렀고, 글쎄다, 나는 대체 무슨 꿈을 꾸며 살았던 것일까.

출처. https://youtu.be/W5THqNXtALo


내가 좋아하는 영화,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두 번째 마주친 장면이었다.

a serious musician!

세바스찬은 미아를 찾아가 어떻게 그런 우스운 곡을 신청할 수 있느냐 항의를 했고, 미아는 그런 그를 놀렸다.
세바스찬 스스로 진지한 음악가의 자존심을 드러낸 순간이, 왠지 모르게 웃펐다.
이 글을 쓰려고 펜을 든 순간, 나는 왜 그 장면이 떠올랐을까.


나는 독자들과 소통이 잘 되는 작가를 부러워했다.
글을 좀 더 친절하게 쓰면 될까.
이슈에 맞는 글을 쓰면 될까.
브런치와 블로그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면 좀 많이 봐줄까.
매일매일 생각하고 고민했다.
이게 무슨 인기투표도 아니고.
학창 시절 인기투표에도 별생각 없이 살았으면서, 이게 뭐라고 그리 연연했을까.
하지만 내 글은 항상 저기 어디 구석에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사람들이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어떤 이의 일갈이 내 가슴이 비수처럼 꽂혀 며칠을 살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랬다.
글을 써도, 발표를 해도 나는 그 안에서 늘 외로웠다.
같은 반 아이들의 환호와 농담과 질문이 나는 늘 고팠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하다.
학창 시절이야 점수를 매기는 이가 있어 성과를 확인하고 개선할 척도라도 있지, 성인이 된 지금은 허허벌판 무주공산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다.



얼마 전, 한재우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이 책을 읽고 북리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홈런을 바라지만 현실은 안타도 못 치는 인생에 대한 부분에 호응이 높았다.
사실 나도 그 부분에 끌려 이 책을 읽었던 거니까.

안타만 꾸준히 쳐도 성공이라고.
홈런도 안타의 연장선에 있는 거라고.
그래서 안타를 쳐보겠다고 심기일전, 마음을 가다듬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글은 썼는데, 역시나 반응이 없다.
그제야 이 우둔한 인간은 무릎을 쳤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이 아니잖아!
새 글이 업로드되고 조회수는 늘어나지만 피드백은 없는, 평소와 같은 추이를 확인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럴 땐 그저 걷는 게 답이다.
‘역시 나는 마이너리티 인생이야.’
내 자아 속 내가 웅크리고 앉아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가방을 챙겨 나와 마냥 걸었다.


걸으며 요즈음의 나를 곱씹어봤다.
역시나, 사람들이 쉽게 읽고 좋아할 만한 글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안타의 기준이라면, 파울볼도 제대로 못 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쓰고 그런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자아의 행복을 기준을 보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마이너리티 하고 진지하고 시니컬한 글의 모양새가, 꼭 나를 닮았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이 그랬다.
은혜씨 글은 잔잔하면서도 진지하고 도발적이라고.
그리고 시니컬하게 웃기다고. 꼭 글이 사람인 것처럼 그렇다고.
내 새끼가 나를 닮은 것처럼, 내가 쓴 글은 나를 닮는 게 당연하다. 문득, 한재우 작가의 에세이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굳이 미움받을 용기를 읽을 필요가 없다고.
내가 빨간색 삐삐롱스타킹 패션에 짝짝이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들, 그게 무어라고 잠 못 자며 고민을 한단 말인가.
때마침 오늘 카페에서 손에 집은 책마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 하지 말라는 글 목차들을 만난 일과, 눈감고 딱 7년만 꾸준히 글을 써보라던 지인의 조언이 오버랩됐다.

“그래. 인정 좀 못 받고 외로우면 어때.”

나처럼 생겨먹은 나 같은 글을 써서 내가 행복하고,
누구 하나라도 진심으로 읽고 공감해준다면, 그것도 안타지.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쓰다 보면, 정말 좋은 글 쓸 날이 오겠지.


화려한 이력을 갖추지 못해도 괜찮다.
한방에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소수다.
...
홈런이 야구의 꽃일지라도
야구의 전부는 아니다.

- 한재우 저.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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