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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an 08. 2021

한국 기독교가 만들어낸 괴물이 정인이를 죽였다

모태신앙 반항기

"엄마. 정인이 양부모들이 한동대 출신이고 목회자 자녀래."


인스타그램에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접하고, 지난여름에 써놨던 아동학대에 관한 글이 다시 읽히기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찾아 본 방송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244회.

그 방송을 보고 며칠을 앓아누웠다.

첫날은 충격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계속 몸이 아팠다.

몸도 아프고 정신도 아팠다.

계속 몸살 기운으로 골골대는 내 꼴에 속이 상하셨는지, 날 추운데 몸을 챙기지 않는다며 엄마가 화를 내셨다.

그런 엄마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그 방송을 봤다고.

기독교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에 엄마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하지만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목사들이 자기 자식들의 교육은 잘 못 시켜서 그런 거라 하셨다.

제대로 된 목사와 가족들도 많다는 말도 덧붙었다.


늘 이런 식이다.

일부가 그런 거라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그들이 이상한 거라고.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전 국민적으로 욕을 먹던 대상이 신천지에서 한국 교회로 옮겨온 지 오래다.

모이지 말라는데 굳이 모여서 집회를 강행하고, 그렇게 집단감염이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 교회에 나오는 남편이 내게 묻는다.

"교회는 왜 그 모양이야?"

그때마다 나는 사건이 발생한 교회의 교단부터 찾아보고 이렇게 대답을 하곤 했다.

그 교단이 좀 그래.

거긴 통제가 안 돼.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잖아.

...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정부의 지침보다 앞서 방역에 동참하고 있어서 그나마 할 말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번만은 그들이 이상하고 나쁜 거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신앙 안에서 자녀를 키우는 복.

아이를 낳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다. 하긴, 내가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신앙으로 자란 자녀였다. 불처럼 타오르는 신앙을 가지셨던 부모님은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신앙을 가진 나를 부러워하셨고, 그렇게 자녀를 키웠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의 나는 정말 전형적인 교회 언니였다. 그래서 내 첫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나를 싫어했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우리를 보며, 혹여나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식장에서 훼방을 놓겠다는 헛소리까지 해댔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남자친구가 내 눈치를 보느라 같이 술을 마시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대학원에 진학해 입에 술을 댔다.

자발적이었다.

입학 초기,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신앙인이기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선포를 했었다. (이걸 교회에서는 선포라고 한다.) 신앙인으로서 내 몸을 거룩하게 지키는 행위. 신앙인으로서 선택한 거룩한 구별이었다. 선배들이 강압적이지 않기도 했고, 마침 내 윗기수에 나 같은 선배가 하나 더 있기도 했는지라 탄압 같은 건 없었다. 잠시였지만 믿음의 승리라 착각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 신앙을 이유로 술을 거부한 나 대신 술을 마셔주며 분위기를 지켜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한동대 출신이었다. 한동대 출신인 3대째 목회자 집안의 자녀였다. 한동대라는 곳에 대해서는 이미 교회 안에서 많이 들었던 터였지만, 우리 교회 밖에서 한동대 출신을 만난 건 그 친구가 처음이었다. 기독교 정신으로 학생들을 사랑으로 교육하는 곳이라고 하던데, 내가 만난 그 친구에게 한동에서의 기억은 인생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던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지켜가면 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어느 술자리에서 선배들의 대화를 듣게 된 게 계기였다.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했다.

그걸 그렇게 유난스럽게 포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친구와 내가 충격을 받았던 가장 직접적인 말은, 그 새끼가 믿는 예수라면 아무리 좋은 거라 해도 믿지 않을 거라는 그들의 고백이었다.

"그 새끼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삶"이라는 거룩한 행위의 민낯을 그날 보았다.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신앙 안에서 키우신, 그 자랑스러운 신앙의 유산이 울타리를 깨고 밖으로 나가게 된 순간이었다.




신년을 맞이해 특별새벽 기도 기간이다.

정인이 사건이 이슈화된 이후, 목사님은 새벽마다 정인이를 찾으신다.

정인이에게 미안하다고.

우리는 미안해해야 한다고.

그러나 교회 소그룹 공동체의 단톡방에서는 그 누구도 정인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가 없다. 다들 주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은혜롭게 장문의 글로 쓰고 아멘을 연발하지만, 그 안에 정인이는 존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단톡방을 보며 화를 내고 새벽마다 목사님 따라 울기를 반복하는 정신 나간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언제고 한 번 단톡방에 폭탄을 던지고야 말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말이다.

아이를 긴급 보육으로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날의 일정은 시청에 들러 정인이 진정서를 출력해 우체국에서 발송하고,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운전 중에 전도사님께 전화가 들어왔다. 뭘 좀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셨다. 마침 교회 앞을 지나고 있었던지라 바로 교회로 올라갔다. 텅텅 빈 교역자 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진정서를 출력해 나왔다. 출력되는 진정서를 보시며 방법을 물어보시던 목사님께 진정서와 청와대 청원에 동참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생각했다.

'우리는 왜 잠자코 있는가.'



정인이의 양부모들은 전형적인 "잘 키운 신앙의 자식들"이다.

정인이를 위탁받아 키우셨던 분이 판단하셨던 것처럼, 좋은 집안에서 번듯하게 잘 자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말이다. 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란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실 목회자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성도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고, 흠이 잡히면 안 된다는 강박에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목회자 자녀는 잘 자라거나 개차반이 되거나 둘 중 하나라던가.

이 경우 정인이의 양부모들은 전자에 해당되는 이들이었다.

아마 그 부부의 행동과 삶이 부모의 교회에서는 주님의 은총으로 잘 자란 자녀의 전형으로 회자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입양 동기를 두고 여러 말들이 있다.

청약을 받기 위함이었다고도 하고, 큰아이에게 살아있는 인형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라는 말도 있다.

자기 친자식도 자기 손으로 키우는 걸 힘들어하고 싫어했다는 말을 들어보면 큰딸을 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청약과 대출이 절실할 사람들도 아니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목회자의 가족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힘들고 청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빈부격차가 상당하다. 그래서 중형교회 수준이면 자식들을 전부 해외로 유학을 보내고도 생활이 된다.

그들이 입양을 신청하고 준비하며 했다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들은 유명인의 간증을 듣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나는 이게 가장 큰 동기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삶인가!

세상에 태어나 그 나이 먹도록 남에게 귀감이 되고 훌륭하다 칭송받을 만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움직일 충분한 동인이었다. 청약과 대출은 입양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것들이었을 뿐이다.

그들이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혼해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러고 싶었지만, 친자식도 버거운 우리에겐 감당 못할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입양을 강행하고 파양을 시키지 않았다면, 그건 주변에 보이는 시선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sbs 시사교양 라디오. 이철희의 정치쇼



그래서 아이를 입양해서 사회관계 망에 전부 알렸을 것이다.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우린 아이를 입양했고 나는 아이를 입양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알리고 다닌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입양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입양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들의 말이 나는 진심이었다고 생각된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실패했다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한참 이런 생각에 빠져 있던 즈음, 정인이 사건에 관한 글에 한국 교회가 키워낸 괴물들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에 이런 답글이 달렸다.

"사이비 종교인들 때문에 참 종교인들이 싸잡아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죠?"

양부모의 부모들은 사이비 종교인이 아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들은 사이비가 아니다. 사이비도 아니며 개신교의 주류다. 어느 기사에서는 양모 장 씨의 아버지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가 교인 50명의 아주 작은 곳이라 하던데, 그 장 목사는 포항지역 목회자 단체의 장이다.

명절을 맞이해 경상도 시가에 내려갔다가 주일예배를 드리고 온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일성수를 하러 지역에 있는 가장 큰 장로교회에 갔는데, 어린아이들에게도 경건하게 앉아서 예배드리라고 하더라고 말이다. 마치 우리 어릴 적 교회를 보는 것 같아 끔찍했다고 했다.

그랬다. 우리 어릴 적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다섯 살의 나는 그런 본당에서 친구들과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가 집에 와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았었다. 지금이야 어린이실이 잘 되어있고 어린이 예배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방방 뛰며 노는 거라지만, 그 시절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경건을 강요했었다. 우리 앞 동에 살던 목사님 댁에서 여자 집사님들이 찾아가 청소와 빨래를 하고 김장까지 해주는 게 목회자를 대우해 주는 걸로 알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문자를 잘 모르고, 신학이 접하기 어려운 시절에나 가능했을법한 행동들이다. 하지만 신앙생활이라는 걸 그 목사를 통해 처음 배운 사람들은 그게 바른 삶이고 섬김인 줄 알았다. 그렇게 배운 사람들에게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고 인생 최고의 타이틀이었다. 그들에게 교회 공동체라는 곳은 축복받아 잘 사는 자식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지체들 앞에 자랑하는 은혜로운 곳이었다.

목회자 가정의 집안일을 돕는 섬김의 전례를 깨버린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목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거라고 나름 깨어있는 신앙인이었던 엄마는, 철마다 선물 보따리를 들고 목사님 댁에 인사를 가셨다. 목회자의 잘못은 대차게 비판을 하던 부모님이지만, 그렇게 목회자와 그 가족을 예우하셨다.

경상도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자녀이자 대표 기독 사립대학 출신의 부부.

누구보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누구보다 더 바람직해 보이는 삶을 살아야 했을 그들의 삶이 내 눈에는 보인다. 목사님의 따님 아드님으로 어려서부터 수많은 교회 사람들의 덕담과 관심을 견디며 자라야 했을 것이다. 그걸 다 견디고 바람직해보이게 장성한 이들이 그들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신앙 안에서 잘 자란 이들 말이다. 그들은 한국교회와 크리스천 부모들이 그토록 강조하고 선망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신앙 안에서 잘 자란 이들이었다.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훌륭한 신앙과 인격을 가진 분이라 존경받던 아버지셨다. 그래서 나는 그 아버지를 따라 믿음 생활을 잘 하고 모든면에서 칭찬받는 딸이 되어야 했다. 이게 어린 내게 부여된 사회적 굴레였다. 그리고 제법 그 임무를 잘 수행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엄마의 교회 공동체에서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암 환자가 된 이후로 딱히 자랑할만한 게 없어진 딸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정인이에 관한 기사들을 접하며 더욱 화가 났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내면아이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울타리를 깨고 나온, 그래도 그 지난날이 아팠던 어린 내가, 그들의 심리를 알 것 같아서 말이다. 심판은 오직 신만이 하실 수 있다 라던지, 모든 일은 그분의 소관이니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뿐이라든지, 인생에 닥친 시험과 고난이라든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양부모의 부모님 교회 주변에서 그들을 탄원하는 글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이 얼마나 선했으며 바람직하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었는지를 열심히 설명할 테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앞날이 창창한 젊은 부부이니 선처를 바란다고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탄원을 하건 진정을 하건 그건 각자의 자유이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그 괴물을 만든 게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양모 장 씨가 스스로를 탄원하는 글을 써서 읽어내렸다는 풍문도 들었다.

심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도 했다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이런 말을 했다면 그의 머릿속에는 간음한 여인에게 돌 던지던 사람들 앞에 나섰던 예수님이 계실 것이다.

누구든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 오직 심판은 신만이 하신다.

만약 저 소문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게 비단 세금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 테니.



정인이는 하늘 아래 부모가 없다.

만약 낙태죄가 폐지되었다면, 어쩌면 그런 세상이었다면 이미 태중에서 천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오윤희(유진 역)가 민설아의 죽음에 대해 부모가 있었다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아동학대는 양부모보다 친부모에 의해 더 많이 자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인이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며 교계에서 하는 주장 중에 하나가 문란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염려이다. 생명을 경시하며 조심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 했던가. 그렇게 가볍게 생겼을지도 모르는 생명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됐던 것일까. 세상에 내려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종교 아니던가. 그 종교의 세계관 속에서 자란 자녀들이 부모 없는 어린 생명에게 악마가 되었다. 그 악마는 누가 만들었나.



양부모와 그 집안에 대해 사이비 종교라 한 그분의 글은 이 사회에 만연한 인문학 부재 및 경시 풍토에 관한 지적이었다. 인문학적 깊이와 사고가 없어서 우리 모두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지적에 깊이 동의한다. 특히나 기독교적인 것 외의 것들에 대해 배타적인 개신교의 무지함에 말이다.

사회에 나와 술자리에서 신앙을 이유로 동참을 거부하는 패기 같은 것 말이다.

어릴 적 우리는 절을 마귀 소굴이라고 배웠다. 지금이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폐쇄적인 어느 곳에선가는 여전히 그렇게 가르치는지 사찰에서 가끔 벌어진다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보고 듣곤 한다.

바리새인의 신앙을 그토록 비판하면서 우리는 왜 그들과 같아졌는가.

오직 내 종교의 교리와 관습과 익숙해진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직 우리만 옳고 우리만이 진리이고 최고라 하는 그 오만함은 무엇인가.

개신교는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해 개혁을 요구하며 만들어졌다. 개혁성을 잃은 개신교가 과연 개신교인가. 종교와 교단의 보수성은 개성이다. 각 교단마다 갈라져 나온 이유가 다르기에, 교단마다 개성이 다 다른 연유이다. 그러나 모두 기독교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인재를 강조했고, 기독교적으로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자녀를 신실하게 키우는 복을 갈구했다.

우리가 악마라 비난하는 그 존재는 사실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그들이고, 당신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란 자본주의 키즈가 그 불쌍한 생명을 가지고 정인아미안해 굿즈를 만들어 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녕 그들과 그의 부모들은 이 기독교 사회에서 문제 있고 자녀 교육을 잘못시킨 일부란 말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는 핑계로 구질구질하게 살 것인가.  


그들은 우리다.

한국 기독교가 키워낸 믿음의 자식들이 정인이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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