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 반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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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ㅇㅇ기도원
내 이름이 은혜이고 교회 다니는 부모의 딸 중에 은혜가 많은 것처럼, 세상에는 참 많은 중앙과 중부와 열방과 국제 간판이 붙은 기독교 기관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명을 앞이나 뒤에 많이 붙이고, 신학교육을 시키는 군소 신학의 경우엔 '국제'가 꼭 들어간다. 그렇게 교회와 기도원과 센터와 신학원 이름을 지으라고 어디서 가르쳐준 것도 아닐 텐데, 어쩌면 다들 그렇게나 비슷할까.
골목 곳곳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간판을 볼 때마다 실소가 나곤 했다.
그리고 요즘은 매일 들어오는 방역 안내 문자를 보며 역시나 헛웃음이 난다.
국제기도의집
TBJ열방센터
정인이 학대 사건을 보며 느낀, 개신교의 자녀로서의 환멸과 자괴감을 글로 담아냈었다.
그 글에 여러 댓글이 달렸다.
안타깝게도 모든 개신교회가 다 그 모양이라는 댓글에 가슴이 아팠고, 내 생각을 읽어 깊이 공감해 주시는 댓글에 참으로 감사했다. 아프고 감사했다. 그 댓글이 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차라리 '그들은 참된 신앙인이 아니기에 우리와 다르다.'라는 말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못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건 전부 빨갱이고 공산당이라는 저 억지 주장이라니.
잘 모르는 사람이 열심과 신념을 가진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다.
정인이 학대 사건에 관한 글을 쓰고 얼마 후, 부산에서 세계로교회 라는 곳이 방역 폐쇄 명령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말을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역시나 남편은 "교회는 왜 다 그 모양이야?"라고 말했고, 나는 또다시 교단을 검색해보고 "푸하하하. 역시 고신!"이라며 선을 그었다.
고신.
고신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으로 온 국민에게 알려진 샘물교회가 속한 교단이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끝까지 반대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곳이다. 한국 개신교, 특히 장로교에서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항일 항거의 역사라며 언급하는 사례들은 사실 고신의 역사로 보는 게 조금 더 정확하다. 경상도 지역에서 세가 강하며, 신앙과 교리적으로 훨씬 더 보수적인 걸로 알고 있다. 과연 이 교단이 빨갱이이고 공산당이고 좌파란 말인가.
마침 기도원과 지역 교회들 발 코로나 소식으로 심기가 매우 불편하던 차에, 기름이 부어졌다.
정인이 학대 사건의 가해자들이 공산당이라며 억지소리를 하는 사람의 블로그를 들어갔다가, 그 국제 무슨 기도원의 담임목사가 딴따라 제비 같다며 그런 게 무슨 목사냐고 비아냥거리는 글을 보았다. 역시나 웃음이 났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라는 걸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문자를 잘 모르고, 더구나 서구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신학인지라 더더욱 평신도들이 이해하고 배우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말씀을 풀어주고 신앙생활을 가르쳐주는 목회자의 존재가 상당히 중요했다. 체계적인 신학원도 없었던 시절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휴거가 일어난다며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어느 기도원에 기도의 역사가 뜨겁다며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가곤 했다. 그 시절에는 군소 신학도 많았다. 제대로 신학을 마치지 않아도 부흥강사로 유명세를 치르면 그렇게 성공적인 목회를 이어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부흥회와 기도원을 수도 없이 다녔던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그냥 웅변 잘 하는 연기자였다. 찬양으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걸 잘 하는 사람 말이다.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감정에 취하는 것과 찬양을 부르며 은혜를 받는 것이 과연 무엇이 다른지 딱히 모르겠는, 지극히 건조한 모태신앙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실 지금도 군소 신학은 많다. 다들 자기가 목회자라고 목에 힘 빳빳하게 주고 다니겠지만, 사실 그들 안에도 급이라는 게 존재한다. 정규코스와 속성과정이 있고,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 이혼을 하고 한동안 우리 집에 얹혀살았던 외사촌 오빠가 그런 반속성 코스로 군소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됐다. 그렇다고 공부를 날림을 한건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과 제대로 잘 짜인 커리큘럼 아래에서 키워진 이들에 비하기는 좀 어려웠다. 신앙을 지식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지적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신앙을 지키고 지탱하는 힘은 성경을 바로 알고 넓게 보는 지식에 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그 신앙은 그냥 정신승리를 위한 신념일 뿐이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물론 유학까지 다녀온 목회자가 자녀를 성폭행하고 학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걸 잘 모른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무한한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라 여기고, "주의 사자"가 말씀을 전하지 않고 동물 사자가 되어 양을 잡아먹는데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아 사자의 밥이 되어버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 목사가 속칭 딴따라 출신이건 속성과정을 거친 부흥강사 출신이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잘 교육받은 목회자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삼위일체 유일신을 믿는 우리에게는 그렇다. 그 안에서도 성령님은 역사하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목회자라면, 성도 위에 군림하려 하면 안 되고, 개인 사유재산이 아닌 교회를 사유화해서도 안되며, 성도들이 이런 이유를 알고 이해하며 교리대로 교회를 지킬 줄 알도록 해야 하며, 적어도 제대로 성경을 배우고 알고 깨달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회는 이걸 잘 하지 못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교회가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생각해 세습을 해도, 원로 목사의 공로를 생각해 성도들이 비호하고 나서는 게 우리의 현주소이다. 독재자를 비호했던 한국 기독교와 그 안에서 가치관을 배운 이들은 오늘도 세습과 우상화를 신앙으로 알고 있다.
냉전으로 인한 증오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정치는 이 프레임을 지겹도록 우려먹었다. 냉전으로 인한 골육상잔의 비극만 있었다면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른다.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에 앞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잔재도 남아있다. 친일청산과 반공주의를 정리하는 일은 사실 생각만큼 그리 쉽고 간단하지 못하다. 어제의 친일파가 오늘의 애국보수이고, 어제의 독립군이 오늘의 공산당이다. 편이라도 명확하게 갈려있다면 칼로 두부를 자르듯 하겠지만, 그들의 일부는 같은 배를 탔으며 그들의 일부는 다른 배를 탔다. 결국 격동의 시기에 이도 저도 아닌 스탠스로 핍박을 받으며 살아남은 민초들만 제자리인 셈이다. 이렇게 복잡해진 프레임 때문인지, 이 모든 게 교회 밖으로 가면 여전히 단순 명료한 친일청산과 빨갱이 타도로 분리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더 가관이다. 이 프레임에 신앙적 당위성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반공과 지역주의로 연명한 정치와, 서구 중심주의에 결탁한 우리의 과거, 성도를 개돼지처럼 여겨 잘 교육하지 않은 개신교 그리고 스스로 사고하고 의심할 능력이 없는 뇌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게 기독교의 중심제일주의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나는 신을 안다는 것은 마치 엄청나게 큰 빙하를 인간이 탐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있는 신의 세계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평소 내 지론이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각자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고 좋은 방식으로 신을 찾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과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신학 집단이 만들어지고 종교와 교파가 나뉜다. 물론 우리의 경우엔 비극적인 역사와 조금은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깔려있다는 특수성이 존재하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에서 빛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동경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중심이 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으며 국제적이고 싶어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였고, 복음을 세상 방방곡곡 널리 알리라고 했다. 어디에도 세계 최고가 되라거나 그곳의 중심이 되라는 말씀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은연중에 중심, 제일, 국제에 집착한다. 가끔은 교리를 두고 다투며 표준을 차지하려 싸우기도 한다.
무엇하나 성경적인 것이 없다.
성경을 배우나 성경을 모르고, 신을 믿으나 신이 없는 믿음이다.
서구에서 중국을 건너 넘어온 종교. 어려운 시절 큰 도움을 준 파란 눈의 외국인 선교사. 질곡 진 역사를 지나며 우리의 유전자 안에 자리 잡힌 서구 중심주의라는 아시아 반도 국가의 열등감이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앙과 제일과 국제, 그리고 선 긋기에 집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신앙인이란 외양상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 많은 군소 신학에서 속성과정을 거친 ‘님’ 들이 교회에 가득하고, 전염병으로 온 나라가 난리임에도 기도원에 모여 기도를 하며, 저들은 이러저러해서 우리와 다르다 구분 짓고 정죄를 한다. 이토록 경박하고 천박하고 바람에 날리는 겨만큼이나 가벼운 게 우리의 모습인 줄을 모르고 말이다.
스스로 성결하고 세상의 빛이 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자부하지만, 이면에 우리가 아니라며 선 그어버린 것 조차 우리들이라는 사실은 모른채 말이다.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우리를 더욱 우스운 존재로 만들어 갈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스스로 혐오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상지 : 商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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