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엄마를 모시고 오빠네 가족과 음식점에서 모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서로 나누면서 식사를 마쳤다. 이후 일정이 있어서 음식점 앞에서 그대로 작별 인사를 했다.
오빠가 엄마를 모시고 먼저 자리를 떴다. 들어가시라고 인사하는 내 눈에 엄마 뒷모습이 보였다. 오빠한테 한쪽 팔을 의지한 채로, 안으로 말리고 양쪽 끝이 축 처진 앙상한 어깨.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며 걷는 모습이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엄마의 뒷모습을 본 적 있던가. 예전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목구멍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받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년 넘게 혼자 계셨다.
''엄마, 점심 드셨어요?''
''내가 먹었나? 안 먹었나? 어제저녁부터 안 먹은 것 같은데?''
''아니, 왜! 안 드셨어요?''
''배가 고파야 먹지. 배가 안 고프다.''
언제부터인지 밥통 속의 밥은 누렇게 변색하여 빠닥빠닥 말라 있기 일쑤였다. '냉장고에 먹거리를 넣어두었으니까 데우기만 하면 돼요.'라고 말했지만, 노모는 손도 대지 않았다.
고된 시집살이와 죽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20년의 세월에도 엄마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마음에 가득 찬 미움이 독버섯처럼 몸에도 통증을 일으킨 것일까. 발바닥이 돌덩이처럼 굳고 아파서 못 걷는다고, 허리가 아파서 앉지도 눕지도 못한다고, 불면증으로 며칠째 잠을 못 잤다고. 불평과 탄식투성이었다.
''어서 죽어야지, 오래 사는 게 죄다, 죄야!.''
''사는 게 쉽다. 사는 게 쉬워. 죽는 게 이렇게 어렵네.''
'얼마나 한이 맺혔길래.' 하며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끼니를 거르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다가도 화장품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백화점에 데려다주라.''
''기왕 나왔으니 맛있는 거 사 먹어요. 엄마.''
''돈 아껴야지. 싼 거 먹자. 싼 거.''
먹을 거에는 돈을 벌벌 떨고 몇십만 원짜리 화장품과 고가의 옷에는 돈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한참 쓰던 물건을 ''맘에 안 든다. 교환해야겠다.''라고 할 때면 설명하고 말리느라 목이 아팠다.
이제는 보답할 차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엄마가 언제까지나 자식을 돌봐주는 엄마로서 계속 자리하길 바랐나 보다. 어린아이 같아지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치매 판정을 받았다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가지 말라던 만화방에 몰래 갔다고 빗자루며 방망이로 나를 마구 때리고 옷까지 벗겨서 내쫓았던 엄마. 잡화를 팔던 시장 가게에서 억척스레 짐을 옮겼던 엄마. 큰집 며느리로서 명절 때는 부엌에서 나오지 못했던 엄마. 암에 걸린 아버지 시중으로 제대로 외출도 하지 못했던 엄마. 그때의 엄마 뒷모습은 어땠을까.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얼굴만 봐도 그 사람됨과 살아온 인생을 얼추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뒷모습도 마찬가지 아닐까. 엄마의 뒷모습에는 미움과 원망을 안고 살아온 그간의 삶이 얹혀 있었다. 그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고 말하는 듯해서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뒷모습은 어떨까. 지금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훗날 나의 뒷모습이 어떤 말을 하게 할지는 이제부터 나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