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돌아보면, 영어는 한국어 못지않게 나의 일상과 깊이 얽혀 있다.
하지만 영어가 내 삶에서 정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삶의 조건과 맥락이 변함에 따라 내가 어떻게 영어를 재개념화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늘, 나는 지난 영어생활의 궤적을 되짚어보며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볼 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착하고 바르게 자라기'라는 교육 철학 아래 자유롭게 자랐다. 영어와의 첫 만남은 미국으로 시집간 두 고모가 크리스마스마다 보내주신 디즈니 공주 피규어, 그림책, 비디오테이프 속의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 벨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때 나에게 영어는 TV속 영화에서 등장하는 발전된 서구문명 속 금발 머리의 백인들 사이의 자유롭고 세련된 대화를 하는 언어였고, 톰 크루즈나 브루스 윌리스와 같은 정의로운 형사나 첩보물 속의 영웅이 세계를 구할 때 쓰는 언어였다. 영어를 한다는 것은 예쁜 언니들과 멋진 오빠들이 사는 세계의 일원이 되는 낭만적인 일이라는 점에 매료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원을 다니는 친구에게 먼저 파닉스를 배우면서 한글과 영어체계의 자음과 모음을 병치해 가며 발음 규칙을 발견해 가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ㄱ 은 g와 비슷한 발음이 나는구나." TV 속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세련된 언니 오빠들이 사는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나는 7차 교육과정 세대라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서 처음 영어를 배웠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영어는 나의 공식적인 학습 여정에 포함되었다. Which와 What을 ‘휘치’, ’홧’이라고 발음하던 깐깐한 여자 선생님은 배운 내용을 3번씩 공책에 ‘베껴’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학습자 중심과 개인화, 맥락화를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제일 수 있지만 “Good morning, Mike!” 로 시작되는 네 턴의 짧은 대화를 반듯하게 영어 공책의 빨간 줄에 맞춰 꾹꾹 눌러쓰며 소리 내어 읽어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던 그때,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머리가 크고 비판교육학 지식을 얻게 된 지금, 교육학 박사과정생의 눈으로, 그것이 자본주의와 후기식민주의적 서구문화지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며 자아비판적 날을 뾰족하게 들이밀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 대한민국 인천의 한 조용한 동네에서 꿈을 키워가던, 호기심 많은 여자아이에게는 영어는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모빌리티(mobility)의 열망을 빚어내는 원동력이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언젠가 나도 미국 가서 뉴욕같이 야경이 예쁜 도시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일도 하고, 톰 크루즈 같은 남자친구도 사귀어야지!’
고등학교 시절, 영어는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고 정확한 인지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어떤 판단의 도구가 되었다. 영어와 함께하는 내 삶의 경험은 수능 시험에 등장하는 영어 텍스트의 정형화된 형식과 논리에 꼭 맞춰서 싹둑 잘려나갔다.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졸업 후 좋은 직업과 성공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내 시간과 노력의 투자 대상이었다. 이때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열풍이 불기 전이었지만 2024년 현재와 비교했을 때 입시체계 안에서 영어는 높은 위치를 점유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많은 이들이 그랬듯, 나 또한 이런 사회문화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에서 휘발된 영어 학습과 관련한 열망과 설렘의 빈자리를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당연히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이라는 투자로 채워나가곤 했다.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며, 나는 타 전공생들보다 더 뛰어난 영어 의사소통 기량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원어민의 그것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영속적인 패배감도 함께 느껴야 했다. (이와 관련해선 네이티브스피커리즘의 글을 참고). 그럼에도 영어는 영문학과 미국문학수업 통해 철학과 역사를 탐구하며 지평을 넓혀 주는 고마운 어떤 것이기도 했으며, 영국과 스웨덴에서 교환학생 시절을 보낼 때는 나를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고 새로운 곳을 탐험할 수 있게 해주는, 나를 더 ‘able’하게 만들어 주는 든든한 능력치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영어와의 관계를 더 큰 세계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나와 언어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는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가치 등 개인의 인지심리학적 측면을 넘어 더 큰 세계의 힘에 의해 매개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영어는 대학과 학문공동체에서의 주요 소통 수단이자, 사실상의 공용어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어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지식생산 주체라는 지위를 영속적으로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지금은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며 인식론적 정의(epistemic justice)의 관점에서 영어의 후기식민주의적 영향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도 한다. 영어 사용의 정상화(normalification)가 비영어 사용 국가와 문화의 지역적 가치와 지식의 표현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과 분석이 항상 영어교육의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소녀가 영어를 배우는 경험을 후기 식민주의적으로 비판만 할 수 있을까? 탈레반 체제에서 여성인권의 탄압과 위협을 느끼는 이들에게 영어학습과 영어사용의 경험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다른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즉 자유와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교육에서 영어의 역할을 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면 영어가 사용되는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맥락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https://ideasbeyondborders.org/english-lesson-in-afghanistan/
덧붙임. 나는 이 글을 한국어로 작성하고 있다. 초반 부분의 유년시절의 영어 경험을 작성할 때는 ‘의식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고 영어도 외래어나 고유명사를 가져올 때 사용 했다. 후반부의 ‘진지한’, ’ 학문적인’, ’ 영어로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내용을 정렬하고 구성할 때는 영어로 이해하고 읽은 개념을 (나름) 정제된 한국말로 반듯하게 표현하려니 멈칫하게 되는 지점이 종종 있었다. 특정 부분은 한국어로 옮겨 놓고도 성에 차지 않아 원어 표현을 괄호 안에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트랜스 랭귀징의 경험은 내 언어 사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바뀐 내가 좋아서 남겨놓고 싶어 덧붙임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