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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Sep 13. 2023

유치원 졸업식 사진 찍는 날

너는 즐겁고 나는 싱숭생숭했다

졸업식 사진 찍는 오늘 아침 무척 부산했다. 열흘 전부터 마음도 부산했다. 유치원 안내에 따라 하얀색 티셔츠나 블라우스를 고르기 위해 인터넷숍을 들락거렸고 자칫 튈까, 너무 무난할까 고심했다. 청바지 밑으로 보일 신발은 또 무얼 할까, 앞머리는 살짝 다듬어줘야 하나 실핀을 꽂아야 하나 미용실에서 다듬어줘야하나 머릿속으로 부산했다. 물론 일은 일 대로하고 있었다. (남편은 졸업사진 찍는 줄도 몰랐고 알았어도 준비가 필요함을 몰랐고 일만 했다)

평소보다 이르게 일어난 아이는 뜰 떠 선지 머리를 더 이리저리 흔들어대고 엉뚱한 옷도 꺼내보다 내게 한 소리 들었다! "그럴 거면 졸업 사진 못 찍는다!"


왜 이리 내게 긴장된 거였을지. 내 유아원 졸업 사진을 찍던 날, 하얀색 카라가 있던 검은 체크 블라우스를 입고 등원했었다. 친구 뒤에서 긴장 반 흥분 반 서있던 나는 내 차례가 오자 부랴 가운을 입고 앉아 사진을 찍었다. 하얀 카라를 밖으로 낼 시간도 머리카락을 한 번 매만질 여유도 없이. 그렇게 앨범 사진이 되었고 액자가 되었다. 아쉬움이 커서 졸업 앨범을 열어보지 못했다. ("졸업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데!" 하는 내게 남편은 그런 게 기억나냐고 했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짤막 올라간 한복 치마에 오래 신어 낡은 빨간 구두를 신고 찍은 나의 민망했던 감정과  옆에  한복 치마에  신을 신어 반짝였던 친구부러웠던 감정이 기억난다.  키에 맞는 옷과  신을  사준 엄마를 원망했다.


전날 뭘 먹어선지 팅팅 부은 데다 급히 한 머리띠로 머리가 달라붙어 평소 보다 너무나 촌스러웠던 초등학교 졸업 사진, 상 받는 날이라 기분 좋아 활짝 웃었지만 무겁고 어두웠던 코트를 입은 초등학교 졸업식, 수능 망쳐 사진 한 장 안 남긴 고등학교 졸업식, 미래가 불확실해 졸업 사진 찍기 싫었는데 돈이 없어 정장 옷 못 사 안 찍겠다 핑계 댔던 대학교 졸업사진(친구가 돈 30만원을 주며 선물이라 했다.) 평소 입던 코트에 청바지 입고 참석한 졸업식인데 그 마음도 모르고 취업도 못했냐며 옆에서 더 한숨쉬던 엄마가 또 원망스러웠던 대학교 졸업식, 그리고 졸업 못한 대학원까지


쓰고 보니 어쩜 이리 만족스러운 졸업 사진을 안 찍었나 싶다.


기대도 실망도 부러움도 부끄러움도 없을 아이의 유치원 졸업 사진 촬영날 난 별 걸 다 떠올리며 별 감정 다 떠올였다. (이 와중에 평소보다 더 바삐 거리 선전전 하고, 언론 인터뷰 하고, 해외 출장 신청하고...)


"어땠어? 무슨 포즈 했어? 잘 찍었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묻고 확인하고 싶은 건지. 아이가 하원하자마자 물어봤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일단, 영상 보고, 나중에 얘기해 줄게!" 아이는 담백하게 답했다.


너에겐 그저 즐거웠던 하루였을 졸업 사진 찍는 날,

엄마만 싱숭생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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