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by 권영은

타오위안 공원에 리무진이 왔고 내 이름 석자를 적은 이가 서있었다. 숙소까지 아무런 걱정도 아무런 말도 없이 도착하였다. 방과 거실이 분리된 데다 전망 좋은 창을 뒤로하고 일하기 좋은 책상도 있었다. 옆집엔 우에노지즈코가 머물고, 나도 다음날 같은 행사 초대 손님으로 발표를 준비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아이가 데려가라는 인형을 보며 외롭기도 하고 또 얼마만의 혼자만의 시간인가 싶어 좋았다. 좋은 기억을 몇 번이고 되짚다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왔다.


준비부터 난관이었다. 숙소 예약 이심 이 게이트 신고 환전 코스 등 아는 만큼 내가 준비하고 있었다. 유튜브에 여행책자에 틈틈이 보며 그간 적어본 적 없는 일정표까지 적는데도 불안했다. 일하며 여행준비까지 주도하다 보니 여럿 미스가 생겼다. 트레블월렛 카드 오류로 당황했고, 여권번호 오기입으로 입국 신고가 늦춰졌다. 이심은 두 개 신청에 두 개다 내게 설치해 버렸고 어느새 책이 든 가방도 면세점 가방도 내게 있었다. 아이도 물론.


역시 즐기는 이는 있었다. 타이베이의 새로운 경관을 호기심에 우와! 외쳤고, 버스에서도 자신의 킥보드 때문에 민폐 안 끼치려 조심했다. 지도로 길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내게 만두 캐릭터가 그려진 만둣집 간판을 찾아내고 알려주기도 했다. 무지개 길목과 곱창국숫집 근처에 있는 탕후루를 손꼽아 기다리고, 어느새 아시아최대동물원에 우리가 가야 한다 코스를 짜고 있었다.


지치고 마음이 삐뚤어진 사이 여행을 즐기는 아이는 이제 하품을 하며 조용히 책을 보고 있다. 수영장에 야시장까지 다녀와서는.


여행을 일처럼 하고 있던 나는 이제야 책을 꺼내 들고 좀 쉬어볼까 한다. 정말 오랜만에 꺼내든 빨간 머리 앤. 50이 가까워져도 앤은 늘 사랑스러운 친구다.

대만 1일 차 여행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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