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자라서 속상한 마음을 누가 알까
무심코 바라본 아들의 어깨가 낯설다. 교복 셔츠 위로 뼈대가 굵어지고, 어느새 나보다 훌쩍 큰 키로 내 앞을 성큼성큼 걸어간다. 방문을 닫고 친구들과 속삭이는 딸아이의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앳된 아이의 투정이 묻어나지 않는다. 내 손바닥 안에서 꼼지락거리던 작은 생명체들이, 언제 이렇게 자라나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한 걸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40대 가장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동시에 가장 복잡한 감정의 근원이다.
한때는 나의 온 세상이었던 아이들이다. “아빠!” 하고 달려와 목을 끌어안던 그 작은 팔의 온기, 내 무릎에 앉아 재잘거리던 서툰 발음, 내 손을 잡지 않으면 한 걸음도 떼지 못하던 그 절대적인 의존이 나를 살게 했다. 나는 그들의 영웅이었고, 그들은 나의 가장 확실한 성취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통과해, 나를 딛고, 점점 더 먼 곳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아들은 “아빠, 저 학원 다녀올게요.”라는 무심한 인사로 저녁을 대신하고, 딸은 “아빠, 이건 내 비밀이야.”라며 자신만의 경계를 만든다. ‘아빠’보다 ‘친구’가 먼저가 되는 시간, 나보다 ‘자신’의 생각이 중요해지는 시간.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 한편이 텅 비는 듯한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서운함은 이내 묵직한 책임감으로 바뀐다.
훌쩍 커버린 저 아이들을, 나는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아이들의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내가 책임져야 할 세상의 크기도 함께 커진다. 훌쩍 자란 키만큼이나 무거워질 학자금의 무게, 사회로 나아가기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가장’이라는 이름은 40대에 이르러 가장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아이들의 시간은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나의 시간은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든다. 아이들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나는 기꺼이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나의 하루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의 생계,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는 나의 ‘오늘’이 위태롭지 않도록 버텨내야 한다.
문득, 아이들의 성장이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아빠는 어떤 어른이 되었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과, ‘나’ 자신으로도 잘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의 끝에도,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다.
나의 불안과 서운함조차도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피어나는 감정임을 안다. 아이들이 자라나 언젠가 나의 품을 완전히 떠나갈 그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이 자리를 지키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앞서 걷는다. 나는 이제 그들의 손을 잡는 대신, 한 걸음 뒤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대견함과 서운함, 불안과 책임감. 그 모든 감정을 품에 안고, 오늘도 나의 하루를 살아낸다. 훌쩍 자란 저 뒷모습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