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당신은 소중하다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무대일뿐

by 민토


​새벽 6시 30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단 1분이라도 더 현실을 유예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알림’ 버튼을 누르지만, 결국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린다. 몸은 납덩이를 매단 듯 천근만근이고, 의식은 여전히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부유한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디며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켠다. 밤사이 세상이 망하지는 않았는지, 혹시라도 회사가 사라지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기적이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세상은 야속하리만치 평온하고, 나는 오늘도 그 평온한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나는 매일 아침, 슬픈 전설의 예언가가 된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출근길의 텁텁한 공기, 사무실 문을 열 때 느껴지는 서늘한 긴장감, 책상 위에 쌓여 있을 해결되지 않은 업무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상사의 억지스러운 지시들까지. 나의 예언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오전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답답해온다. “이걸 왜 지금 해?”, “생각 좀 하고 일해.” 상사의 날 선 말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논리도 없고 배려도 없는 그 억지 주장을 웃으며 받아내야 하는 내 모습이 비참하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솟구친다. 군대 제대 날짜를 세듯 ‘퇴사’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지만,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희망보다 고문에 가깝다.



​도대체 직장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나를,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 사무실을 둘러본다. 칸막이 너머 앉아 있는 저 사람도,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저 상사도, 결국은 다 같은 ‘월급쟁이’ 아닌가. 매달 25일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카드 값과 대출 이자를 걱정하며,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떼어 파는, 다 똑같은 처지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기는커녕 서로의 지옥이 되어주는 걸까. 같은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건너면서, 왜 서로를 물속으로 밀어 넣지 못해 안달인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마음은 멍들어간다.


​점심시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꾸역꾸역 허기를 채운다. 맛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후를 버티기 위한 연료를 주입하는 기분이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그 짧은 휴식마저도 곧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온전히 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이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내 존재가 부속품처럼 취급받는 모멸감, 나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박탈감, 그리고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 이를 악물고 하루를 견뎌낸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말로 어금니가 으스러지도록 참고, 속으로 삼키고, 웃음으로 울음을 가리며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지금 그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고 있는 이유는,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도, 대단한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도 아니다. 당신이 출근하는 이유는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해서여야 한다.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퇴근 후의 맥주 한 잔이나 주말의 늦잠 같은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당신은 그곳에 있는 것이다. 회사는 당신의 삶을 위한 수단일 뿐, 당신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제발, 회사의 평가가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게 두지 마라. 상사의 핀잔이 당신의 자존감을 갉아먹도록 허락하지 마라. 보고서가 반려되었다고 해서 당신이라는 사람이 반려된 것은 아니다. 업무에서 실수를 했다고 해서 당신이 실패한 인생인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당신’이다. 회사가 없어도 당신은 존재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그 어떤 회사도, 성취도 의미가 없다.



​때로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외로움이 밀려올 것이다. 아무도 내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은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러보면 반드시 있다. 말없이 커피 한 잔을 건네는 동료, 퇴근길에 “고생했어”라고 보내온 친구의 문자, 현관문을 열면 달려 나오는 아이의 미소, 혹은 묵묵히 당신의 곁을 지켜주는 배우자. 그들이 바로 당신을 위로하는 존재들이며, 당신이 오늘을 버텨낸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당신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거울 속의 나에게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지금 느끼는 이 끔찍한 고통과 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영원할 것 같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는 언젠가 오늘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참 힘들었지, 저 인간 때문에 정말 죽고 싶었지”라고 안주 삼아 씹으며, 털어버릴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때가 되면 오늘의 눈물과 한숨은 그저 치열했던 젊은 날의 훈장처럼, 혹은 지나간 에피소드처럼 남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이렇게 노래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한 그리움이 되리니.”


​그렇다. 마음은 미래에 살지만 현재는 언제나 슬프다. 우리가 느끼는 지금의 고통은 어쩌면 ‘현재’라는 시간이 가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푸시킨의 말처럼,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간다. 지금 당신을 짓누르는 그 상사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프로젝트도, 숨 막히는 압박감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훗날, 치열하게 버텨냈던 당신의 모습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대견함’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너무 많이 아파하지 말자. 당신은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바위처럼 강한 사람이다. 부디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리고 단단하게 버텨낸 당신 자신을 뜨겁게 안아주기를 바란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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