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야 할 자리와 비워야 할 자리를 아는 지혜

스스로 나의 위치를 볼 줄 알아야한다.

by 민토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결코 자신의 시간을 억지로 늘리지 않습니다. 봄에 피어난 꽃은 여름의 뜨거움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미련 없이 지고, 가을의 단풍은 겨울의 빈 가지를 위해 기꺼이 바닥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머물러야 할 시간의 끝이 어디인지를, 그리고 언제 떠나야 다음 계절이 올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유독 우리 인간만이 그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놓아야 할 것을 쥐고 있거나 떠나야 할 자리에 주저앉아 있곤 합니다. 익숨함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내일이 주는 불안함 때문입니다.


​삶은 수많은 ‘들어옴’과 ‘나감’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삶에 들어가고, 어떤 조직에 속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시작은 늘 설레고 화려합니다. 환영받는 기쁨과 새로운 역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찹니다. 하지만 그 시작만큼이나 중요한,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마무리’에 대해서는 너무나 서툴고 무지합니다. 아니 모른척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머물러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내 자리가 보장되어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의 존재가 그곳에 온기를 더할 수 있을 때, 나의 열정이 타인에게 영감이 될 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곳에서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고 있을 때입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치열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뿌리를 깊게 내리고 버텨야 합니다. 그것은 집착이 아니라 ‘책임’이자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흐르지 않는 관계와 역할은 결국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 필요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익숙함에 기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인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은 고통스러운 자각을 동반합니다. 그것은 종종 ‘박수 칠 때’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신발 속에 들어온 모래알처럼,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걸을 때마다 미세한 통증이 느껴질 때 신호는 옵니다. 내가 더 이상 이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나의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되고 나의 호의가 간섭으로 느껴질 때, 그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입니다.



​많은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 때 마주할 추위, 소속감이 사라진 후의 공허함, 그리고 나 없이도 세상이 잘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인정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시들어버린 꽃을 붙들고, 다 타버린 재를 뒤적이며 불씨를 찾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수명이 다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미련’이며, 타인의 기회를 가로막는 ‘욕심’일 수 있음을 말입니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떠나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후배들이 있고, 내가 놓아주어야 비로소 홀로 설 수 있는 자녀가 있으며, 내가 물러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 대상을 사랑하고 조직을 위한다면, 나의 부재(不在)가 그들에게 선물이 되는 순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형기 시인의 시구처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말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존엄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쫓겨나듯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일어서는 모습에는 범접할 수 없는 품격이 서려 있습니다.



​떠남은 결코 패배나 도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매듭을 짓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꽉 쥐고 있던 손을 펴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듯이, 익숙한 자리를 비워야 새로운 운명이 들어올 공간이 생깁니다. 떠나는 순간은 섭섭하고 아쉽지만, 그 여백을 통해 우리는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꺼져가는 불씨를 안고 연기만 피우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의 역할이 다했다면, 혹은 이곳이 더 이상 당신의 영혼을 뛰게 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문을 열 때입니다.


​빈 의자를 남겨두고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그 사람 있을때가 참 좋았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머묾은 충분히 가치 있었고 당신의 떠남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것입니다. 머물러야 할 때 온 마음을 다하고, 떠나야 할 때 미련 없이 돌아설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인생이라는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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