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안아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by 민토


​우리는 종종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이해심 깊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그 가면 뒤에 숨은 '나'에게는 서슬 퍼런 칼날을 겨누곤 한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으면 "오다 보면 그럴 수 있지, 괜찮아"라고 웃으며 넘기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저지르는 날이면 밤새 이불을 뒤척이며 자책한다. "도대체 왜 그랬어?", "너는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하니?",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지." 마음속에 사는 가혹한 재판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피고석에 세우고,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유죄를 선고한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먼저 용서하고, 가장 깊이 이해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때가 많다. 타인의 시선이나 비난보다 더 뼈아픈 것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혐오와 실망의 눈빛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그토록 조심하고 배려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매일같이 보이지 않는 생채기를 내고 소금을 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타인에게는 성인군자처럼 굴면서 나에게는 폭군처럼 군림하려 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은 신기루와 같아서,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한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하루를 버텨내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공허함은 커져만 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음을 차단한 채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느라,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억지로 웃어 보이느라,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느라 지쳐버린 내가 웅크리고 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두운 방 구석에서 무릎을 감싸 안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외면하고 방치했던 그 시간 동안, 아이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고여 깊은 슬픔의 웅덩이가 되어버렸다.


​만약 지금 내 안의 내가 울고 있다면, 더 이상 다그치지 말고 달래줘야 한다. "왜 더 강하지 못하냐"고, "왜 더 잘해내지 못했냐"고 채찍질하는 것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낭떠러지로 떠미는 것과 같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난이나 충고가 아니다.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가 흙투성이가 된 무릎을 털어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 주는 따뜻한 손길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너는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해주며 따뜻한 손수건을 건네야 한다.


​진정한 관대함은 나를 향한 용서에서 시작된다.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정당화하거나 안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때로는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수를 배움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기 전에, 부디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베푸는 친절은 결국 바닥나기 마련인 가식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 안의 컵이 비어있는데 어떻게 남의 목마름을 축여줄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주겠으며, 내 마음이 지옥인데 누구에게 진심 어린 천국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나를 희생하여 얻은 타인의 호감은 모래성과 같아서,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단단한 자존감 위에 쌓아 올린 관계는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하루, 타인의 기분을 살피느라 썼던 에너지의 절반이라도 나를 위해 써보길 권한다.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느라 억눌렀던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거절하고 싶을 때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쉬고 싶을 때는 죄책감 없이 쉬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듯 나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고, 좋은 풍경을 볼 때 그 풍경 속에 나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자.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답고, 흔들려서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부디, 세상의 엄격한 잣대로 나를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 타인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진짜 여유와 사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의 친절은 의무감이 아닌 흘러넘치는 마음에서 비롯된 진짜 선물이 될 것이다.


​지금, 거울 앞에 서서 지친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말해주자.
"미안해, 그동안 내가 너에게 너무 모질게 대했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너의 아픔을 모른 척했어. 이제는 내가 너를 가장 아껴줄게. 세상이 너를 등져도, 나는 언제나 네 편이 되어줄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통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