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하루속에 보내는 따뜻한 안부
마흔의 중턱을 넘어서며, 삶이란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회사에서는 위아래로 치이며 매일같이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갑옷을 다시 고쳐 입어야 한다. 어디서든 나의 온전한 쉴 곳은 없고, 그저 책임져야 할 일들과 챙겨야 할 사람들의 목록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문득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나만 유독 이렇게 팍팍한 삶을 견뎌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런 날이면 가끔 휴대전화 연락처를 뒤적여 오랜 친구나 옛 동료들의 번호를 누른다. "잘 지내냐"는 싱거운 첫인사 너머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설명하기 힘든 피로와 삶의 무게가 묻어난다. 사업의 고단함, 직장 생활의 위태로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교육 문제, 그리고 슬슬 편찮으시기 시작하는 부모님 이야기까지.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녀석도, 소셜 미디어에는 항상 웃는 사진만 올리던 녀석도, 막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들의 고군분투를 전해 들으며, 나는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묘한 위로를 받는다. 나 혼자만 이 진흙탕 속을 뒹구는 것이 아니었구나. 이 먹먹하고 고단한 시간은 나만의 형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통과하고 있는 계절이었구나. 동병상련의 안도감이 굳었던 마음을 조금 녹여주지만, 이내 또 다른 먹먹한 질문이 가슴을 친다. '대체 우리는 왜 이토록 팍팍하고 힘든 시기를 버텨내야만 하는 걸까.'
돌이켜보면 우리의 지나온 시간은 가난했어도 찬란했다. 20대 시절, 주머니에 든 돈은 몇천 원이 전부였어도 친구들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을 수 있었다.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그 불확실성마저 자유라는 이름으로 즐겼던 때였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의 삶에 발을 들였다. 여전히 가진 것은 많지 않았고 빚은 늘어갔지만, 퇴근길 현관문 앞까지 달려 나와 내 품에 안기던 어린아이의 뺨과 그 사랑스러운 재롱 한 번이면 세상 모든 시름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작고 따뜻한 온기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40대의 중반에 이른 지금, 왜 이토록 삶은 고통의 연속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20대의 패기와 30대의 낭만이 지나간 자리에, 오직 '책임'과 '인내'라는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것 같아 서글퍼진다. 청춘의 유예 기간은 끝났고, 아이들의 귀여운 재롱이 주던 마취 효과도 점차 옅어진다. 이제 우리는 삶의 민낯을, 그 육중한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진검승부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하지만 친구들아, 그리고 이 시대를 함께 버텨내고 있는 40대 가장들아. 이 고통의 시기가 단지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리가 이토록 무거운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삶이라는 거대한 집의 '기둥'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20대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지붕 아래서 비를 피했고, 30대에는 그 지붕을 짓기 위해 터를 다졌다면, 40대인 지금 우리는 스스로 기둥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내고 있는 중이다. 기둥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짓눌리는 고통을 감내하듯, 우리의 버거움은 곧 우리의 가족과 일상을 지탱하는 위대한 힘증명이다.
그러니 오늘도 묵묵히 출근길에 오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억지로 미소 지으며 하루를 살아낸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거나 뒤처진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치열하게, 가장 눈물겹게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찢어진 상처를 부여잡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이 먹먹한 연대감이 오늘을 견디는 당신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이 힘든 계절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언젠가 이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날, 주름진 얼굴로 마주 앉아 "그때 참 우리 잘 버텼다"며 웃으며 회상할 수 있기를.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도, 너무 외로워하지도 말자.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충분히 훌륭하게 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오늘하루도, 이번주도, 이번달도 너무나 수고가 많았다. 그정도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