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으로 굴절된 삶,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아이들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 게임

by 민톨로지
강지나 지음,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작가는 교사 생활을 하며 늘 학교에서 학대받는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 어려운 가족 상황 속에서 겨우내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도 교사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고 보호해 줄 수 없다는 현실에 결국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목소리의 생생한 기록이며 한편으로는 ‘교육 선진국’이라는 미명에 가려져 도외시되어 온 한국 교육체제의 민낯이기도 하다.


책에는 8명의 아이들의 삶이 담겨있다. 가난의 우울을 견디는 소희의 삶, 가족에 대한 과도한 애틋함을 지닌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의 삶, 가난도 무기로 만든 슈퍼 긍정 에너지의 지현의 삶, 나중에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우울한 청춘의 그늘인 연우의 삶, 취업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에서 매일 나락을 느끼는 수정의 삶, 질풍노도 그 자체의 현석의 삶, 돈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일하는 청소년인 우빈의 삶, 애정을 갈구하다 사람들이 시선이 무서워져 버린 혜주의 삶까지 어느 한 명의 이야기도 쉬이 넘길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의 삶은 피로했고 또 조로했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오바마는 2009년 그의 취임 이후부터 줄곧 한국 교육을 예찬하며 치켜세웠다. “한국은 교육에서 전 세계의 대표 주자” “한국에선 교사를 국가건설자(Nation builders)로 여긴다” “한국이 잘된 이유는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이다. 미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수시로 칭찬했다. 1)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찬사를 들으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우리의 교육체제는, 부모의 배경이 곧 아이의 출발점이 되는 사회적 구조는 예찬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빈곤은 세대를 이어 대물림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 자체이며 교육제도는 이를 심화, 가속화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사교육, 입시정보 등 가족의 뒷받침 없이는 학교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고,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이 안정된 부모의 배경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이 설 곳을 잃은 가난‘한’ 아이들은 교육체제의 경계에 겨우 머물거나 떠밀려 가 버리고 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삶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지지체계’ 즉 ‘관계’와 ‘돌봄’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아이들의 삶은 교육과 돌봄의 공백 속에 위치해 있었다.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어린 생명이 한 명의 괜찮은 어른이 되기까지 ‘안전한 기반’의 역할을 하는 어른이 최소한 한 명 필요하다. 그것이 부모이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는 아이들에게 편안함과 보호를 믿을 수 있게 제공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누구라도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실제 8명의 아이들 중 가난의 질곡을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경우를 보면 운이 좋게도 신뢰, 돌봄, 안정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지지와 관계를 만난 아이들이었다. 반면 그러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많이 잡아줬어요. 맨날 아침마다 연락해서 "학교 와야지, 우빈아"하고, 점심 때 되면 배 안 고프냐고, 학교 점심시간이니까 밥 먹으러 오라고... ”
“나를 이만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잘해야 한다. 그 생각이 가장 컸어요.”
“우빈은 아버지가 없는 자리, 어머니가 그를 돌봐주지 못했던 공백을, 선생님, 가게 손님, 가게 사장님으로 채우고 살아왔다. 그들로부터 받은 신뢰와 돌봄에 대해, 부모님 얘기보다 훨씬 더 많이 털어놨다. 밖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사회적으로 권위와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믿고 그들로부터 받은 인정을 의미 있게 생각했다. 이런 신뢰 관계는 등교와 아르바이트 등 주어진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 상호작용 속에 배태된 자원을 사회학에서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 개인에게 소유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과는 달리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유대를 통하여 접근 가능한 자원을 의미한다. 사회자본은 그것이 발생하는 공간에 따라 가정 내 사회자본과 가정 외 사회자본으로 구분되는데, 가정 내 사회자본은 부모-자녀 간 관계에 기반한 자본으로 자녀 학업에 대한 부모의 관심, 학업과 관련한 대화, 학교활동 참여, 학습지도 및 지원, 부모의 자녀성취 기대 수준, 자녀 생활에 대한 관여 등을 포함한다. 한편, 가정 외 사회자본은 아동과 청소년이 속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구성원과의 관계, 가치와 규범, 신뢰를 통해 형성되는 자본으로 학교 내 사회자본과 지역사회 내 사회자본을 포함한다. 2)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이루어진 교육과 사회자본 관련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가정 내 사회자본이 자녀의 학업성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학교 내 사회자본이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을 포함한 취약계층 학생들이 귀속적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축적되어 있다. 3)

책 속에서 살펴본 것처럼 빈곤 청소년의 경우 가정 내 사회자본이 결핍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대다수의 가난한 아이들은 ‘운이 좋아서’ 닿게 된 이런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와 안전함을 확인함으로써 스스로를 힘겹게 지켜내고 있다. 우리 사회와 교육 제도의 집단적 반성과 성찰 나아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대두되는 시점이다. 저자는 청소년 복지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체계는 이제 학력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 자아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체제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학자이자 부모인 나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경쟁과 선별에 매몰된 교육체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을 쏟아부어 희소한 ‘운’에 (가난한)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맡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모의 배경이 곧 아이의 출발점이 되는 시대에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에게 제도를 벗어난 건 모두 너의 탓이라고 노력의 문제이고 개인의 문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의 잘못이 아니며 너를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의 문제이며 소수의 성공자를 위한 거름망이 되어버린 교육체제의 문제라고, 너를 더 촘촘히 껴안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망을 사회적 차원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느 연구자의 말처럼 이 아이들을 위한 촘촘하면서도 중첩된 두터운 역동의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중첩이 비효율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전반에 깔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조선일보(2022년 10월 24일 기사). [태평로] 오바마의 ‘한국 교육 예찬’은 잊어라.

2) 황성희 (2019). 사회자본의 교육적 활용에 관한 질적 연구: 저소득층 가정의 성공사례를 중심으로. 교육사회학연구, 31(3), 213-246.

3) 현지영, 김경근 (2015).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가정 및 학교 내 사회자본, 학업성취 간 구조적 관계 분석: 가족구조에 따른 차이를 중심으로. 교육사회학연구, 25(2), 12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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