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면

취약성에 직면할 때 비로소 열리는 ‘진정한 삶’의 가능성

by 민톨로지


브레네 브라운 지음, <마음 가면>

브레네 브라운은 미국 휴스턴 대학교의 연구 교수이자 지난 20년 동안 취약성과 수치심, 자존감에 관해 연구해 온 심리 전문가이다. 브레네 브라운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TED 강연에서였다. 2010년 ‘취약성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TED 강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후, 그녀의 강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TED 강연 TOP 5’에 올랐다. 이후에도 브레네의 강의는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녀의 유쾌한 취약성 고백에 무턱대고 반해버린 나는(아이돌 덕질은 해본 적 없지만, 연구자 덕질은 누구보다 좋아하기에) 그녀의 강연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었다는 티끌 같은 이유만으로 “조회수에서 만큼은 나도 아주 조금은 기여한 바가 있지!”라는 무용한 뿌듯함을 느낀다.


이처럼 강연을 반복해서 듣고, 358페이지에 달하는 책까지 ‘기어코’ 읽어내기를 결심한 이유는 사실 매우 간단했다. ‘취약함’이 도대체 무엇인지 한 쾌에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약함이 도대체 뭘까? 브레네의 정의에 따르면, 취약함(Vulnerability)은 ‘상처 입다’라는 라틴어 vulner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상처입을 가능성이 있는’,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볼 수 있는’ 즉, 상처받거나 공격당하기 쉬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취약성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모든 감정과 느낌의 핵, 중립 된 ‘상태’의 것을 말한다. 중립 된 상태이기에 공격이나 상처를 견뎌낼 수 없다는 나약함(weakness)과는 다른 개념이다. 중립된 ‘상태’로서의 취약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처로서의 ‘행위’가 결국 ‘온 마음을 다해 사는 사람’이 될 것인지 ‘취약성에 지배되어 실패하고 회피하며 사는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그녀 연구의 주요 골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취약해질까?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브레네가 발견한 것은 아무런 보장도 없고, 성공하리라는 인정받으리라는 확신도 없을 때가 바로 우리가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이다. ‘아 그런 느낌이라면 내가 누구보다 전문가인걸?’ 하는 마음이 들었는가? 그렇다. 당신과 내가 동시에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끊임없이 취약성에 직면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사회가 지속적이고도 교묘하게 전하는 메시지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날씬하지 못하다.’

‘나는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충분히 여유롭지 못하다.’


이 부족한 느낌은 거대한 문화적 표준이 되어 우리를 압박하며 끊임없는 자각과 책임감을 느끼며 날마다 더 많은 노력을 하라고 말한다. 모두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극도로 신경 쓰는 사회. 타인과의 비교,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점검, 필요를 정의하고 이를 대비하는 것에 어마어마한 시간을 쓰는 우리는 사실 수치심을 조장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수치심을 조장하는 문화란 사람들이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 자신을 맞추지 못해서 힘겨워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회적, 개인적 도구는 바로 비난이다. 그녀가 수년간 몰두해 온 연구들을 한 번에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난은 수치심을 낳고, 수치심을 느낄 때 그렘린 즉, 늘 머릿속에 넣어 다니는 자기 회의와 자기 비난의 메시지가 우리를 공격한다. “넌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그런 네가 뭘 잘할 수 있겠니? 해봐야 창피만 당할 테니 그냥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와 같은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며 자아존중감을 끌어내린다. 이렇게 생겨난 상처, 부정, 분노, 보복의 감정들은 취약성을 마주했을 때 이를 인식하고 껴안고 용기를 내어 직면하기보다 ‘놓아버리기’를 선택하도록 한다. 회피하거나 완벽주의로 무장하거나 화를 내고 타인을 공격해 본질을 감춰버리기도 한다. 놓아버림으로써 취약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때 두려움은 커지고, 그렘린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며 관계는 단절된다.


슬프게도 우리는 매일을 이 과정들을 반복하고 있고 불안 속에 떨면서 계속해서 이 과정을 ‘강화’시켜가고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사례도 필요 없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씩 이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이의 서툼에 ‘넌 그것도 못하니? 그 정도도 못하면서 뭘 할 수 있겠니?’와 같은 비난이라는 도구를 마구 휘둘러 아이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애써 쌓아 온 자아존중감을 끌어내리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아이가 취약함을 드러내고 껴안아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든다. 학교에서는 어떤가? 브레네는 인터뷰한 남녀의 85퍼센트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겪었던 매우 수치스러웠던 일을 기억해 냈다고 했다. 그리고 경험자의 절반은 이른바 이러한 경험이 ‘창의성의 상처’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는? 이미 당신의 상사는 출근한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수치심을 도구로 당신을 무참히 찔러댔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명쾌하게 이 책을 읽으면 당신은 취약성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당신이 이미 예상한 바대로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브레네에 따르면 취약성은 인간이 느끼는 본능이고 당신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이다. 취약성을 느낄 때 벌거벗겨진 느낌을 평생 느끼라고? 분노하기엔 이르다. 그런 연구 결론을 냈다간 박사학위를 반납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적극적이지만 불완전한 부모며 열성적인 학자다’라고 브레네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그녀는 ‘취약성 회복탄력성’이라는 꽤 멋진 결론을 내어놓았다. 취약성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해볼 만한 것은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 나의 제2의 피부 같은 사람과 솔직한 대화를 통해 나의 취약함을 먼저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마음 가면>을 읽으면서 취약성 앞에 굴복해 ‘놓아버리기’를 선택했던 나의 과거들이 무수히 떠올라(어찌나 많은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왜 내 인생이 계속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낱낱이 알게 되어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불편함의 표준화’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배우고 성장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기에 이 불편함을 긍정하기로 했다. 또 한편으로는 아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의 가능성의 문 앞까지 와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도 들었다. 이제 나 또한 용기 내어 그 문을 열어젖혀보려고 한다. 학자로서도 부모로서도 이 책에서 많은 조언을 얻었다. 길이란 애초에 없었으며, 연구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과 지혜를 용감하게 나눠준 덕분에 길을 하나 만들었고, 그 길이 학문과 삶을 결정했다는 그녀의 말에 나 역시 ‘이미 나 있는 길을 내가 증명해 내리라’는 ‘편리한’ 연구자로서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부모로서는 7개의 챕터 중 마지막 챕터인 [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길 바라는가]의 모든 문장이 반성 기제이자 힘이 되었다. 부모의 육아 성향만으로도 아이들의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응하는 방식을 예측 가능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세상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를 늘 지켜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무심결에 휘두르는 수치심이란 도구는 아이의 삶을 통과해 다시 우리에게 향할 것이다. 부모로서의 우리를 성찰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면 좋겠다. ‘나는 좋은 부모인가,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가 아닌 ‘내 아이가 자라서 지금의 나와 같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이것이야 말로 허를 찌르는 질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녀의 강의를 한 번 더 들었다. 몇 번을 들어도 수치심을 연구하다 결국 본인이 심리상담사를 찾아가고 “가족 이야기나 어렸을 때의 문제 같이 개떡 같은 이야기는 빼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너무 재미있다. 이렇게 취약성을 드러내고 나면 그건 더 이상 취약성이 아닌 유쾌함이 될 수 있다. 내 인생의 자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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