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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20. 2023

네 머릿속이 궁금하다

그는 오늘도 물어왔다. 


"Where can I find it?"


Sharepoint에 저장되어 있지. 네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문서가 담겨 있는 그곳에! 


"Sorry, can you send me the link again?"


이쯤 되면 순간적으로 '이 사람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링크를 보내주면서 속으로는 의구심이 피어난다. 


이 사람 프로젝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건 맞나? 업무 내용은 제대로 이해했나? 문서를 확인하기는 했나? 이 업무를 이 사람에게 맡기기로 한 게 정말 잘한 결정이었을까? 이제라도 바꿔야 하나? 


단 하나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급기야 그의 업무능력까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처음이니까 모를 수 있지, 그걸 물어보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경우가 너무도 자주,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거다. 


예를 들면 업무 중간보고를 받는다. 이 사항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면 아직 거래처로부터 대답이 오지 않았다고 아직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그 답메일을 며칠 전에 봤다. 그 사실을 얘기하면, 


"Really? I don't think I was copied in" (전 그 메일에 포함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런 소릴 한다. 급기야 내가 이메일이 도착한 날짜와 시간, 제목까지 말해줬는데도 못 찾겠다는 소릴 해서 기어코 내가 그 메일을 전달 (forward)하게 만든다. 


거래처와 함께 하는 외부 미팅 (화상 통화).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다가 샘플 얘기가 나왔는데, 따로 채팅으로 


"Should I ask for samples?"


하고 내게 물어왔다. 보자마자 또 속이 살짝 부글거렸다. 왜냐면 벌써 한 달 전에 우리는 그 샘플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정기 평가 (Check-in) 때 주의를 줬었다. 제발 세부 사항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업무 진행도를 제대로 파악하라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건 당연하지만, 묻기 전에 일단 그 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부터 해보라고.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으니 이쯤 되면 혹시 머릿속에 지우개를 하나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지금 맡고 있는 업무 외에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가 하면 다른 팀원인 N의 머릿속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는 것 같다. 


도통 업무 진행 보고가 올라오질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물어보면 또 술술 대답한다. 

물어보면 대답하지만, 진행 사항을 간단히 요약해 보내달라고 하면 한참이나 걸린다. 


왜 아직 보내지 않았냐고 물으면 업무 상황이 그때와 달라져서 아직 업데이트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은 어디에 추가 자료를 요청했는데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연차가 꽤 된 직원이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참견하고 싶진 않았다. 알아서 잘하고 있겠거니, 하고 믿으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부서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관한 질문이다. 


이거 분명 다 해결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싶어서 답메일을 보내며 그를 참조 (cc) 한다. 그러면 또 답을 한다. 이런저런 일이 있고 이런 상황이다, 등등. 


답을 읽다 보면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부서는 이 프로젝트의 관련 부서 아닌가? 왜 저런 내용을 이제야 저 사람에게 설명하는 걸까? 문의한 '그' 사람만 모르고 있는 내용일까? 아니면 그 부서 전체가 아직 모르고 있는 내용인가? 그리고 왜 저 부서의 그 사람은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그라는 걸 모르는 걸까? 


Check-in 때 확인차 물어본다. 협력은 잘 되어 가고 있느냐, 프로젝트 진행은 어떠냐, 어려움은 없느냐? 


대답은 늘 간단하게 돌아온다. 

"Everything is fine"


이런 경우 그냥 놔두면 안 되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솔직히 팀을 꾸리는 입장에서는 가장 불안한 타입이다. 당장 그 사람이 내일부터 휴가라도 가면, 아니, 이직이라도 하면 도대체 그 업무를 누가 맡아 할 수 있을까? 


모든 걸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으니, 업무를 이임할 때도 글로 적어 주기보다 자기는 말을 하고 누군가가 그걸 알아서 기억하거나 받아 적길 원한다. 당연히 자기 머릿속에서 그때 당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정보를 꺼내서 전달하기 때문에 세세한 사항까지는 전달되지도 못한다. 


이런 사람이 전임자일 경우 후임자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임자가 거래처와 계약을 한 뒤 한번 수정했는데, 그 수정된 내용이 담긴 원본 이메일이 전임자의 인박스 (inbox)에만 존재한다. 그것도 모르고 재계약 시기를 맞이하면 아주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그러다 손실이라도 생겨봐라, 졸지에 그 똥물을 혼자 다 뒤집어쓰는 거다. 




가끔씩 누군가에 대한 칭찬으로 "He/She knows everything. Just ask her/him"이란 말을 하는 걸 듣게 된다. 심지어 그 사람은 이미 다른 부서로 보직 변경을 했는데도. 


그런 사람이 회사에 있다는 건 회사의 입장에서는 크게 득이 되는 일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달가운 소리가 아니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현재 부서의 업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지금 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질문을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 역시 환영할 만하다. 최소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도리어 스스로의 능력을 갉아먹는 질문들이 있다. 


- 이미 대답을 얻은 일에 대한 대답 (똑같은 문제와 똑같은 해결법)을 또 구하는 질문

-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질문부터 하는 경우 

- 업무 담당자로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을 질문하는 경우 

- 어떤 문제에 대해 같이 의논해서 결정까지 해놓고 그 문제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다시 하는 경우 


혼자 시간 여행을 해서 과거로 간 게 아닌 이상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기억을 못 한다고 다른 사람의 메모리까지 사라진 건 아니라는 걸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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