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회사에서는 거의 사실에 가까운 말이다. 그 자리에 맞지 못한 사람은 쫓겨나거나, 제 발로 나가거나, 아니면 스스로 제 몸을 구겨 넣어서라도 그 자리에 맞추도록 바뀌고 마니까.
회사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직책까지 올랐다는 소리는 그런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해서 그 자리에 어울릴 인간이 이미 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언제든 그 자리에 맞춰 자신을 변형시킬 수준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 과정을 밟기까지는 나름의 시행착오도 겪고,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과 자멸감, 회의감을 견뎌내기도 하고, 혹은 ‘이까짓 거!’하는 분노를 동력 삼아 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달리는 한편 ‘이게 진짜 최선인가, 맞는 길인가’ 하는 불안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차선책이 있었으면 그런 생각 따위는 안 했을 테니 어차피 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달려서 고지를 선점했다.
첫 번째 승진, 두 번째 승진…
‘팀장님, 매니저님, 과장님, 부장님, 차장님’ 등등의 소리가 내 이름 대신 쓰이기 시작하고, 어디서 ‘리더십‘ 이런 소릴 하면 귀가 슬쩍 열린다.
이젠 ‘리더’란 소리에 부합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달릴 때야 제 앞길 찾기 바쁘니 주위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일단 목표를 이루는 데에만 열중하지만, 다들 산 탈 때는 도중에 어떤 나무가 있고, 계곡이 있었는지 모르다가 산 위에 올라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생긴 것처럼, 그제야 슬슬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거다.
나는 어떤 유형의 리더인가. 좋은 리더란 어떤 리더인가. 사회는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등등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대입시켜 본다.
복권 당첨 번호가 나왔을 때 내가 가진 복권 번호와 비교해 보며 맞는 숫자가 있길 바라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물론 처음부터 리더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차곡차곡 계단 오르듯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 말은 누군가가 이미 그 계단을 닦아 놓았다는 소리고, 그 사람들 걸으라고 일부러 비워뒀다는 소리도 되니, 일반적으로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게 아닌 이상 다들 맨몸으로 산에 던져져서 어찌어찌 헤매고 긁히고 치이고 하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더라, 하는 경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요령이 붙어 더 빨리 피해량을 줄이면서 올라간 사람은 있을지라도.
그렇게 올라가 한숨 돌리다 보니 주위 소리가 들릴 것 아닌가.
같이 산에 던져진 사람들은 아직도 저 중턱 어딘가에 헤매고 있다던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르셨어요? 비결이 뭔가요?
커다란 상처를 입으셨는데도 여기까지 올라오셨네요? 어떻게 그 험한 과정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으셨어요?
보통 그런 장비로는 여기까지 오기 힘든데, 어떻게 올라올 수 있게 되셨어요?
이 정상에서는 이런 장비 없으면 오래 버티지도 못한대요. 다시 떨어지지 않으려면 필요하다던데, 준비하셨어요?
혹시 그거 아세요? 여기 다음은 저 산의 봉우리라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이런 게 필요하대요.
들으셨어요? 얼마 전에 여기 찍고 가신 분은 벌써 저 위쪽 산 정상까지 가셨대요.
자신은 눈여겨보지도 못했던, 아니,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 부분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지나온 길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이젠 숨 좀 돌리나 했더니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절망적인 소식도 들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여정을 준비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걸 떠나서 얕으나마 한 봉우리 정상에 오른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성취, 혹은 위치에 대한 어떤 자부심.
그리고 그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들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뒷산이라도 올랐다가 정상을 찍고 내려온 사람이 주위에서 그 산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등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산 정상까지 갔다 왔는데 말이야‘, 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게 심해지면 ‘꼰대’ 소리를 듣는 거지만, 그 일면에 있는 마음은 ‘자신의 성취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내가 겪어온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나는 잘 해냈다고. 그러니 나는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뭐, 그런 것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우리는 남을 통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로받거나,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이룬 성취를 통해 자극을 받고 희망을 얻기도 하니까.
여기서 구분 지어야 할 건, 스스로의 성취와 ‘리더’라는 위치에서의 성취는 다르다는 거다.
혼자 애써서 정상에 오른 이들은 스스로의 업적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혼자 산을 여러 번 올라 봤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산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등산 가이드에게 필요한 건 산을 타본 경험뿐 아니라, 그 외 산에 대한 지식, 비상사태 처리 능력, 다수의 사람들을 통솔해서 안전하게 원하는 목표까지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 등인데, 그건 산을 많이 타봤다고 저절로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막말로 제 몸이 유달리 튼튼하고 건강해서 산을 잘 탄다는 소문이 났는데, 같이 산을 올라가 보니 최악의 파트너라는 소릴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도 뭇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만을 토대로 가끔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그거 내가 해봤다니까? 내가 해봤을 때는 안 됐어. 그러니까 너희도 하지 마.
거긴 위험하더라. 나라고 거기 갈 생각 안 해본 건 줄 알아?
내가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산 탈 때는 말이야..
마치 같이 산 타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니미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것만을 바탕으로 조언을 남발하고 방향을 정한다.
그게 누군가에는 산에 끌려가는 수준의 요구라는 것도 모르고, 다른 이들의 눈으로는 이미 훤히 보이는 쉬운 길도 놔두고 말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뜨는 건 그 산에‘만’ 전문가인 ‘리더’들이다.
내가 이 산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20년이야. 이 산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냐면..
이 산에서는 그런 식으로 나무 타면 안 돼. 여기서는 그런 방식으로 못하니까 막일한다 생각하고 새로 배워.
등등.
그런 식의 조언도 모자라 다른 산에서 온 사람들을 은근히 깔보거나 무시하는 타입도 있다.
너 있던 그 동네 뒷산에서는 그렇게 했는지 몰라도 여긴 산 때깔부터 달라.
너 그 산에서 나무 좀 타봤다며? 그런데 그것밖에 못해?
여기서 원하는 건 그런 방식이 아니야. 네가 예전에 어떤 식으로 산을 탔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이거나 하라고.
말이야 ’ 리더‘지, 사실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건 같이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동료들이 아니라, 그냥 목표치를 빠르고 쉽게 채울 수 있는 말 잘 듣는 다람쥐나 곰 같은 존재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산을 잘 타서 정상에 올랐다는 이유로 다음 산을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을 끌고 그만큼 빨리 올라오라는데, 그 사람들 파악한 겨를이 어디 있나.
아는 건 내가 어떤 식으로 산을 타봤다는 경험 밖에 없으니, 이번에 올라갈 때도 그대로 틀을 유지하면서 효율만 높이려고 하지.
그러니 주위에 늘어난 사람들이 내 손발이 되어주길 원하는 거다.
알아서 내 생각 읽어서 성큼성큼 달려가 주는 착장형 로봇처럼.
그러니 산에 한 번이라도 올라간 본 이들이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산을 타고 올라본 방식을 돌이켜 봤을 때, 누가 함께 있었더라면 어땠을지.
지금 내가 오른 산보다 훨씬 높은 산을 이제 올라야 하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올라갈 준비를 할 건지.
그리고 제발 다른 산에 오른 이들을 보고 스스로와 비교해 그들의 노력을 괜히 폄하하거나 원하지도 않은 훈수를 두려 하지 말자.
당신에게 당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