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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an 30. 2024

화상회의 네모난 화면 뒤의 이야기

띵, 알람과 함께 누군가가 화상 회의를 시작했다는 알림이 떴다. 

Teams link를 누르고 들어가니 속속들이 도착하는 사람들과 함께 화면이 여러 개로 분할되기 시작한다. 


간단하게 Hello로 인사하고 사람들이 다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혹은 회의를 바로 시작하기 전에 잡다한 안부를 물어본다. 보통 월요일이면, "Did you have a good weekend?"로, 금요일이면 "Happy Friday!"그 외 주중에는 날씨 얘기 등으로. 


화상 회의인 까닭에 오디오가 맞물리지 않으려면 여기서부터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화면 위 작은 네모칸으로 드러나는 얼굴들을 쳐다보며 누가 대답할 것인지 눈치를 보고, 입을 여는 타이밍도 재야 하고. 

간혹 아예 카메라를 켜지 않고 시작하는 회의가 있기도 한데, 그때는 누가 unmute 버튼을 누르느냐로 발언권을 따지기도 한다. 


회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을 나누고 있는 사각형 하나가 갈색으로 가려졌다. 굼실굼실 움직여 대던 털뭉치가 화면 앞을 지나가다가 아예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은 거다. 

털뭉치의 주인은 마이크가 켜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털뭉치를 책상에서 내려 보내려 했지만, 조금 밀려난 털뭉치는 귀찮다는 듯 꼬리만 몇 번 흔들고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회의의 내용보다 그 화면에 더 신경이 간다. 회의의 발언자라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화면의 한구석을 응시하기 시작했으니까. 거기다가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까지 생기면, 발언자도 말을 멈추고 털뭉치의 주인공을 부른다. 그럼 그 주인은 어떻게든 고양이를 피해 음소거 해제 버튼을 누르려고 애를 쓰고. 


그런가 하면 가끔은 화상회의 하던 사람이 'brb (be right back)'을 쓰고 사라진 틈을 타서 대신 회의에 참가하려는 존재들도 있다. 뒷배경의 소파 위에서 얌전히 앉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고양이가 주인이 사라지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유유히 책상 위로 올라와 포즈를 잡는다거나, 갑자기 턱 책상 위에 앞발을 올리며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개라든가. 


동물뿐 아니라 아이들도 자주 등장하는 카메오 중 한 명이다. 벌컥 문이 열리며, 'Mummy!' 혹은 'Daddy!'하고 부르며 등장. 자신의 부모가 화상 회의 중이고, 그 컴퓨터 화면을 통해 지금 화상 회의에 자신이 난입했음을 알 텐데도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한다. (가끔 어떤 아이들은 수줍게 인사를 하기도 한다). 


부모는 당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음소거 버튼을 누르려하거나, 아니면 급하게 아이들을 방에서 내보내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But why can I not do it now?"라고 딴지를 걸거나 "When do you finish?"하고 질문을 이어가고. 

음소거 버튼에 이어 카메라까지 꺼지고 나면 부모가 아니라도 대충 그 까만 화면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녹음이 되는 회의 중, 다들 발표자의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디오가 켜지며 "shhh, I'm on the call, go and find a daddy/mummy" 혹은 "I told you to stop it!" 하는 소리가 생중계될 때. 


그 외에도 자주 등장하는 건 파트너의 '팔'이 되겠다. 보통 부부가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에 자주 볼 수 있는데, 화면 너머로 팔이 쓱 나타나 머그컵을 전해주고 사라지는 거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나는 종종 재택근무를 했었다. 

대학에서 일할 때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강의가 없도록 일정이 나왔기 때문에, 그럴 때는 집에서 강의 준비나 연구를 했고, 공무원으로 일할 때에도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은 집에서 일을 했다. 


그런 까닭에 남편과 나는 늘 Study라고 부르는 서재가 집에 따로 있었고, 서재에는 사무실에서나 쓸 법한 기역자 모양의 사무용 책상 2개, 책상 하나당 두 개의 모니터, Docking station, 프린터까지 배치되어 있어서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주가 되었을 때도 딱히 근무 환경에 영향을 받진 않았다. 물론 자주 있는 화상 회의 때문에 서재를 둘이서 같이 쓸 수 없어 한 명은 다른 방으로 독립해야 했지만. 


그 후 직장을 바꾸면서도 재택근무가 베이스로 된 계약을 체결했기에 나는 아직도 회사 사무실 대신 내 집 서재로 출근하는 재택근무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업무나 회사 사람들과의 교류가 온라인/ 화상 회의를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행동, 자세, 태도를 보고 상대방의 성격이나 취향, 심리 상태 등을 추론하는 대신 화면의 네모난 칸에 드러나는 정보들을 토대로 사람의 남은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유달리 카메라를 켜는 걸 꺼려하는 태도를 보고, 상대방이 내향적이지 않을까 짐작하고, 화면의 백그라운드를 뭘로 선택했느냐로 대충 취향을 파악하고, 프로그램에서 제공해 주는 백그라운드가 없으면 뒷배경을 통해 그 사람의 취미나 주위 환경을 짐작한다. 


저 사람은 기타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골프를 치나 보다, 고양이를 키우는구나,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나 보다. 저 사람은 정원의 창고 (shed)를 개조해서 오피스로 만들었구나, 이 사람은 다락방에서 일하는구나. 


그뿐이랴. 화상 회의 중 손을 꼼지락 대는 걸 보면서 누군가와 채팅 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고, 안경에 반사되는 불빛을 통해 저 사람이 배경으로 뭘 틀어 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시선이 한쪽으로 고정되어 옆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뭔가를 읽고 있다는 게 보인다. 


음소거 제거 버튼을 누르고 입을 잠깐 열었다가 닫는 표정을 보면서 저 사람이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입꼬리를 올리고는 있지만 굳은 눈매를 통해 저 사람이 뭔가 이 상황을 마음에 안 들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신 나 역시 그 상황에 익숙해져 간다. 

아무리 피곤해도, 화상회의 Join the meeting 버튼을 누르는 순간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경쾌하게 Hello! 


발밑으로 거미가 지나가는 걸 보고 기절할 것 같아도 화면을 응시하며 밝은 웃음을 유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거실에서 투닥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다투고 있어도 일단은 정중하게 '잠깐만'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를 끄고 음소거 버튼을 누른 뒤, 아이들에게 살벌하게 경고를 준 뒤 다시 영업용 태도 장착! 


상대방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내 속을 긁어대도 일단은 입꼬리를 올리고 포커페이스 유지. 

회의가 지루해지면 시선은 화면에 고정해 놓고 고무 밴드를 이용해 다리 근력 운동. 

기분이 자꾸 다운될 때는 향초 켜놓고 근무하기 등등. 


이런 상황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한편으로는 고립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회사라면 사무실을 오다가다가 대화할 틈도 생기고 그러지만, 재택 근무일 때는 Teams로 채팅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미팅은 30분 단위로 쪼개지는 온라인 회의 일정에 맞춰 굴러가니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미팅이 열리고, 대부분 30분으로 시간을 제한하는 편이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은 올라갈지 몰라도 사람과는 친해지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대화라는 게 '자 이제부터 우리 서로를 알아가자'하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흘러가는 것 아닌가. 


안부를 묻다가 오늘 좀 피곤해 보이네, 괜찮아? 하는 질문에 상대방이 조금 더 입을 열어서 어제 잠을 잘 못 잤어, 그러면 왜? 하고 물어보고.. 그렇게 조금씩 모인 말들이 서로를 향한 친근함을 형성하고. 

화장실 가는 길, 복도에서 잠깐 나눈 대화지만, 나중에 내가 커피를 사다 주면서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갈 수 있고. 그렇게 조금씩 친해져 가고. 


화상회의에는 그런 사소한 교류 (interaction)가 없다. 우리가 보는 건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정보들, 특히 이미 일차적 심사를 걸쳐 화면에 비춰주는 정제된 이미지와 정보들.

그래서 가끔은 하루종일 back to back (쉴 틈 없이 연달아 있는)으로 잡힌 회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떠들었는데도 외롭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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