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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Feb 08. 2024

"I want your job"

내 팀원 중 한 명이 면접에서 내게 한 말이다.


"I guess you want to move on to the next job too"


친절하게 내 진로까지 고려해 주면서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웃으면서,


"But you know this interview is not for my role?" (이 면접이 내 자리를 위한 건 아닌 거 알지?)


하고 혹시나 면접 자리를 잘못 찾아왔을까 봐 확인시켜 줬다.


내가 이직해 오기 전에 원래 이 회사를 다니다가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지원했었다고 했다. 그 팀원뿐 아니라 내부에서 꽤 많은 지원자가 있었다고.


그 팀원은 면접에서 떨어진 뒤 다른 회사로 이직해 버렸고, 그 공석은 헤드헌팅 당해온 외부인인 내가 채웠다.


그랬는데 이직한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렸는지 내 팀에 공석이 나자 지원한 것.


그는 내 상사와 잘 알던 사이였고, 다른 부서 사람들의 평가도 대체로 좋았다. 특히 이미 한번 해본 일을 다시 하는 거니 신입 교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내게는 그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나는 그를 채용했다.


경력 사원인 걸 인정해 달라고 그래서 'senior'도 직책 앞에 달아줬다. 원래 측정했던 예산보다 조금 더 후하게 연봉도 안겨줬고.


대놓고 내 자리를 원한다고 했으니 의욕도 넘칠 테고, 그가 원한다면 어느 정도의 권한을 넘겨줄 용의도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회사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알아서 움직여서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였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렇게 대놓고 제 욕심을 내비치며 제 한몫은 물론 그 이상을 해내는 팀원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팀원보다는 성과면에서도, 매니저 된 입장에서도 편한 선택이다.


그렇게 대략 9개월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든 생각은...


넌 내 일이 어니라 내 타이틀이 탐나는 거구나.


내 직책 때문에 따라오는 반짝거리는 것들은 좋아하지만 , 그 외의 노가다는 피하고 싶구나.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해결보다는 "Is it our job?"이라고 반문하지.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admin'이라고 무시하고 건너뛰면서 규칙 '위'에 존재하고 싶어 하지.


대신 내 상사나 위의 중요한 분들에게는 어찌나 깍듯한지.


업무보고 체계를 몇 번씩 건너뛰길래 "네가 그래도 결국에는 다 나한테 전해진단다."라고 말해줬더니, 이젠 상부로 올라가는 메일에는 꼬박꼬박 나를 추신란에 넣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되다가 위에서 내 허가가 났냐는 말에 부랴부랴 넣는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이게 참 복잡한 일이다.


내가 여기에 뼈를 묻을 것도 아니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권위로 찍어 누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커리어를 위해 달리다가 어쩌다 보니 지금은 같은 트랙을 공유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굳이 이 일을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나 역시 잘리지 않으려면 열심히 실력을 증명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이다. 나도 욕심이 있고 더 올라가고 싶은 계단이 있고, 그걸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도... 상도덕이란 게 있지 않는가. 각자 자신의 길 위에서 달리다가 어느새 나를 제쳐버리거나 내가 나가떨어지거나 그러면 당당하게 걸어와 이 자리를 차지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자꾸 선을 슬쩍슬쩍 넘으려 드는지.


내가 왜 네가 그런 보고서를 썼는지에 대해 뒤늦게 다른 임원에게 설명해야 하고, 나도 따르는 프로세스를 네가 따르지 않아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왜 내가 지시한 일을 굳이 내 상사와 한번 더 의논해 보고 싶어 하느냔 말이다.


이건 아직 내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만만해 보여 그러나 싶고, 아니면 예전의 인맥을 믿어서 그러나 싶고. 그것도 아니면 그 팀원 눈에는 내가 못 미덥거나?


일이 터졌을 때 주의를 주면 또 꼬리를 내리고 알겠다고 대답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슬금슬금 예전 버릇 나오고...


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앞에서는 적당히 눈치를 보고 자기 피해 갈 구석을 만들어 놓고, 그러다가 코너에 몰리면 핑계를 만들지 몰라도 결국에는 잘못을 인정하니 딱히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좀 얌체 같네 싶을 뿐.


그러다가도 가끔은 묘하게 신경을 긁어대니..


그런 까닭에 얼마 전에는 웃으며 상기시켜 줬다.


"That's my job to worry about."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될 문제니 괜히 내 걱정하지 말고 내가 맡긴 네 할 일부터 너는 해결하라고.


공무원 생활 할 때는 명확한 직위 체계 때문에 도리어 팀원들이 나를 꽤 어려워했는데 (대신 위로 갈수록 정치가 판을 쳤지만), 역시 정글 같은 사기업!


이렇게 또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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