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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ta,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나라

by 민토리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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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학기 (half term)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몰타 (Malta)로 휴가를 갔었다.

원래부터 계획했던 여행은 아니었고, 3월까지 남은 연차 수를 세다 보니 며칠이 남아서 충동적으로 예약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갈 수 있는 유럽 도시 중 비행기 값이 싼 곳을 먼저 알아봤다.

그런데 가격이 싸면 출도착 시간이 아주 새벽이거나 밤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목적지와 공항이 너무 멀어서 도착해서도 하루를 꼬박 기차나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2월에 가는 건데 너무 북쪽으로 가기는 그렇고…

지도를 화면에 띄우고 유럽의 남쪽 국가들을 살펴보다가 몰타를 보게 되었다.


316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한국의 강화도보다 조금 크다는 섬으로 된 나라. 이탈리아 시칠리섬의 남부, 지중해에 위치한 섬이라 일단 날씨는 좋을 것 같고, 국가 전체에 공항도 딱 하나밖에 없고 공항에서 수도인 발레타까지 차로는 20분, 버스로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


이 정도면 어딜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숙소도 알아보다가, 시내에 간 김에 여행사에도 들렸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가는 여행지다 보니 패키지 홀리데이를 알아봐도 괜찮겠다 싶어서 말이다.


영국에서 여행사 (travel agency)를 사용한 건 2000년대 초반 유학 당시 인터넷으로 티켓을 사는 게 아직 덜 유행하지 않았을 때 이후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여행사 직원은 친절했고 상담도 잘해줬다.


그렇게 비행기표부터,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과 숙박, 그 외 모든 음식까지 포함된 풀 패키지 (all inclusive)를 예약하고 아이들과 함께 떠나왔다.


몰타에 도착해서 첫 느낌은…

뭐랄까, 애매하다는 거였다.


어딘가 오래되고 낡은 스페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영국 스럽기도 하고… 뭔가 뒤죽박죽 섞인 느낌이랄까.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느낀 점은 인프라가 엉망이구나, 도로가 좁고 차가 많아 교통체증이 장난 아니구나.

건축 양식이… 이것저것 섞였구나.

공사하는 곳이 진짜 많구나.

가게들도 그렇고 뭔가 다 규모가 작고, 따닥따닥 붙어 있구나.

바닷가 근처 도시에는 인구 밀도가 장난 아니게 높구나.

등등.


길이 막혀 차가 멈춰있는 김에 몰타의 역사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카르타고, 로마제국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의 왕조들과 스페인, 아랍인들, 거기에 프랑스 나폴레옹 이후에는 영국까지, 뭐 유럽 역사를 통틀어 이름 좀 들어봤다 싶은 곳들은 한 번씩 다 이곳을 쑤시고 지나갔다.

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공격을 많이 받았고, 줄곧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64년에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동시에 영연방 (commonwealth) 국가가 되었다가 1974년에야 공화국이 되었다고 한다.


유럽 연합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유로를 쓰지만, 호텔에는 영국과 똑같은 세발 달린 파워소켓이 있고, 운전방향 역시 영국과 같은 왼쪽이며 영어는 몰타어와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인 만큼 영국의 영향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에 도착해서부터 영국인들을 정말 많이 봤다.

대부분 영국인 아니면 이탈리아인이 오는 것 같았는데,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온 (대) 가족, 아니면 나이 든 노부부 커플이 많았다.


관광산업과 제조 산업이 몰타의 중요 사업이라든데, 관광업 때문인지 거리에서 보게 되는 인종은 정말 다양했다.

물가는 관광지라 그렇다고 하기에는 일반 슈퍼마켓에 가도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격대가 높았다.

같은 남쪽이라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과일이 다양하거나 쌀 줄 알았는데, 섬이라 그런지 도리어 억 소리 나게 비쌌고… (알고 보니 몰타는 지형적 이유로 농사를 지을 만큼 비옥한 땅이 없어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렇단다)


나라의 수도인 발레타 (Valletta)는… 도대체 뭐라고 묘사해야 할까.

툭 튀어나온 반도의 형태인데… 국립공원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일단 크지는 않고… 일단 도시가 격자형이라 인공적인 느낌이 많이 나며, 전통적인 구 시대의 유물이라기보다 군사요충지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느낌이 강했다.

스페인의 페니스콜라 (Peniscola) 같은데 좀 더 인공적인 분위기랄까.


물론 몰타의 최대 강점은 아무래도 바다다. 푸른빛이 감도는 지중해의 바다.

해안가를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해도 쨍하고.


그래서 그런지 영국인들이 상당히 많고, 어딜 가도 영국인들의 음주를 부추기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다녀온 짧은 감상을 말해보자면…


언어의 장벽이 없고, 영국과 비슷하면서도 좋은 날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왜 여길 좋아하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오래 살기에는 빡세겠다.

도로는 정말 개판이구나 (도로 폭이 좁고, 주차가 길가에 마구잡이로 되어 있어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다가 인도도 협소하고, 공사 구간도 많다)

장애인이 걸어 다니거나 유모차 끌고 다니기에는 정말 고통스러운 인프라구나 (그냥 걷기에도 인도가 넓지 않고, 건물에도 계단이 많고, 횡단보도에 따로 신호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차들도 보행자를 별로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영어를 쓴다뿐이지 영국인보다는 스페인 혹은 이탈리아 사람들과 성향이 비슷하구나 (길거리 양보도 없고 sorry, thank you, please를 습관적으로 쓰지 않으며, 횡단보도에서도 차가 바로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름에 오면 인구밀도수 때문에 환장하겠구나.


끝.


참고로 이곳 슈퍼마켓에서도 한국 인스턴트 라면과 고추장을 파는 걸 보고 살짝 감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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