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생활은 힘들다. 언어고 뭐고 그런 게 아니라, 매번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증명해야 해서 그렇다.
한국이라면 당연하게 여겨졌을 내 존재 자체가 이곳에서는 많은 순간 의문점으로 남게 되는 거다.
- Where are you from?
- What brought you here?
질문의 의도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법적인 절차까지 다양하다.
영국에 나오기 전까지는 요즘 그 흔하다는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에도 안 가봤던 사람이었기에, 유학생활부터 취업하고 지금까지 딱히 '와, 이것 봐요, 신기하죠?'라는 여행자의 기분보다, '와... 죽겠네.', 하는 생존의 기분을 더 많이 맛봤던 거 같다.
지금도 단연코 말하건대 뒤를 봐줄 빽 없고 돈 없으면 이민 생활은 내 나라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고되고, 괴롭고, 외롭다. 선진국의 복지?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마을의 정경과 공원에서의 피크닉? 이민 생활이 처음이라면 그건 놀이공원이라고 보면 된다. 놀이공원 입장권 (예. 돈, 혹은 현지인과의 혼인관계)은 물론 자유 이용권 (예. 시민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내 일상은 놀이공원 밖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시작될 뿐이니까.
그렇게 20년을 넘게 살아왔고, 지금은 남편과 나, 둘 다 이민자 출신이지만 잘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쯤 하면 좀 여유가 생길 법 한데 왜 이렇게 아직도 삶이 고달픈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이 처음 하는 소리가,
"You've been so quiet recently." (최근에 너 많이 잠잠했어)
였다.
내가?, 하고 단톡방을 확인하자 정말 저번에 보낸 톡이 7월 초였다. 그것도 이번 모임 약속을 잡기 위해 답을 한 게 끝.
도대체 7월 초부터 지금까지 뭘 했는가.
일을 했고, 한국과 일본에도 한 달간 다녀왔고, 일을 했다. 그래, 일 (Work)이 너무 많았다!
3년 만에 한국에 간 건데 나는 그때도 일주일 넘게 일을 했으니까. 그것도 이른 오전에는 미국에 있는 동료와 회의를 했고, 오후에는 호주에 있는 파트너와 통화를 했으며 오후 4시가 넘어서는 영국에서의 업무를 주로 처리했다.
심지어 머리를 하러 가서는 기다리는 동안 잡지를 보는 대신 업무용 폰으로 이메일을 처리했다. 치과에 가서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
왜냐고 묻는다면 늘어난 업무량 때문이었다. 새로운 CEO가 작년까지는 간을 보더니 올해 4월 새로운 회계 연도 (financial year)의 시작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자회사와 지사 중에 해고가 가장 쉬운 미국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자회사의 몇몇 최고 임원들이 물갈이되었다. 누군가는 눈치를 채고 미리 발을 뺐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링X인 사이트에 올라온 구직 내용을 보고 사정을 짐작하기도 했다.
그뿐이랴 새로운 보상체계를 구축한다고 하더니 동시에 혹독한 잣대를 들이밀어 가지치기도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지나친 회사에서 - 공공기관, 대학, 사기업 -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봐온 현상이기에 낯설건 없었지만, 문제는 그렇게 잘려나간 이들의 업무량이 어디로 가냐는 거였다.
지역에 따라 분산되었던 업무가 중앙으로 통합되어 몰리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내 팀도 북미와 호주 쪽에서 밀려오는 업무를 소화하느라 아주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정신없이 시차 상관없이 달리고 있는 동안 남편은 뭘 하고 있었느냐.
남편 역시 회사에서의 위치가 있는지라 조 단위 (billion pound)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정신이 없어졌다. 출장이 슬금슬금 늘어난다 싶더니 이제는 아예 일주일에 2일에서 4일은 런던에서 지내다 오거나 다른 도시로 회의를 하러 다니느라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부모가 풀타임으로 갈려나가는 동안 둘째도 올해 중고등학교 (secondary school이지만 보통 high school이라고 부른다. 중고등학교가 통합된 5년 교육 과정이다)에 입학했다. 첫째와 둘째가 다시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이제는 등하교를 직접 시킬 필요가 없어 일이 덜었지만, 그러면 뭐 하나, 그만큼 업무가 늘었는데.
여전히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위해 일주일에 2-3번은 택시 기사 역할을 하고, 이제는 주말에 따로 친구들과 약속도 잡는 아이들을 위해 주말 택시 서비스도 제공하고, 집으로 놀러 오는 아이들을 위해 식사도 제공한다.
그래도 금요일과 주말 동안에는 운동을 하러 갔다 오는데, 예전에는 숨 좀 돌리고 땀도 빼고 기분 전환을 위해 다녀왔다면 이제는 그거라도 안 하면 몸이 진짜 순식간에 망가질 것 같아서 간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거라도 안 하면 허리, 무릎, 어깨, 뒷목, 안 아픈 곳이 없으니까.
어디 여성 매거진에 나오는 성공한 여성의 삶? 새벽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아이들의 등하교를 돕고, 일도 하고, 저녁에 남편과 와인도 한 잔 기울이는 삶?
도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집안일에 주말의 피 같은 휴식 시간을 할애하기 싫어 신문물에게 대다수를 맡기고 있고, 예전처럼 집안 청소를 대신해줄 도우미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그걸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귀찮다 (예전에는 근처에 사는 친구들이 추천해 줘서 바로 고용했었다). 그리고 도우미가 오기 전에 집안 정리를 해놓는 것도 귀찮을 정도다.
대충의 안부를 전하자, 친구들이 걱정스레 말했다.
"If you are not careful, you are gonig to burn out."
그 말에 보통 다 이러고 살지 않냐고 물었는데, 다들 침묵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부부 두 사람 다 풀타임으로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우리 둘 뿐이었던가. 하긴 다들 전문직이라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아니면 교사라서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는 편이니까.
친구들은 파트타임으로 바꿀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는데, 난 당연히 안된다고 했다. 남편과 나 둘 다 지금 맡고 있는 직책이 업무만 끝낸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커리어 따위는 접어버리고 쉬겠다는 게 아닌 이상.
남편은 55살에 은퇴할 계획을 세우고 이미 금융설계사 (financial advisor)와도 대화를 다 끝낸 상태지만, 그 나이조차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솔직히 영국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매번 달리기만 해온 것 같은데...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종목이 변하니... 지루하진 않은데 힘들다.
그런 이유들로 한동안 조용했습니다. 어떤 날은 글을 쓰다가, 한국에서 이런 건 일상이지 않나, 싶어 글을 지웠고, 어떤 날은 쓰다가 끝이 없어서 그만두었습니다. 물론 많은 날들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못하고 지나갔고요.
최근의 마음가짐이라면... 내 한 몸이라도 잘 건사해 보자, 이런 겁니다.
결국 인생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할 건 나 자신인데, 다른 것 때문에 망치지 말자, 열심히 가꿔서 가능한 오래 같이 가보자.
뭐 그런 마음가짐으로 아직은 꾸역꾸역 번아웃 상태를 방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