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에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가족들 없이 이렇게 가볍게 백팩 하나만 메고 떠났던 게 언제였던가,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들떴었다.
비행기가 1시간이나 연착이 되었지만, 혼자서도 할 것은 많았기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보딩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로 가는 길, 공항 내부의 펍을 지나치는데 이미 취했는지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가 보였다.
공항에서까지 저런 꼴이라니,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는데, 떠드는 소리가 뒤를 따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이트에 도착해서 줄을 서있는데.... 불행히도 그 무리가 이쪽 게이트로 오는 게 아닌가.
대략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섯 명의 영국인 남자 무리. 사람들이 조용히 줄을 서있는 공간으로 들어오자 그들이 얼마나 취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크게 떠들고, 온갖 F가 들어간 욕설을 내뱉고, 웃고, 휘청이고...
학기 중 방학 기간이라 어린아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 여행객도 많았는데, 필터 없이 떠드는 무리들.
중간에 보다 못한 승무원이 다가와 주의를 줬지만, 그때만 초점 풀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승무원이 멀어지자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이들.
마지막 탑승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와 대기하는 중, 제발 저들이 오기 전에 빨리 갈 수 있길 바랐지만,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에서 문제가 생겨 우리는 또다시 계단과 통로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예 대놓고 떠들며 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고, 심지어 면세점에서 산 보드카까지 까서 병째 들이키기 시작했다. 취해서 계단에서 휘청대고, 폰을 떨어뜨리고, 집어던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들에게서 멀어지려고 해도 꽉 찬 줄에서 벗어날 공간도, 방법도 없는 상황.
다른 승객들 모두 이를 악물고 귀를 닫고 그들을 무시하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자리는 비행기의 가장 뒤쪽으로 앞쪽에 있는 나와는 동떨어져 있어 비행 중에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이쯤 되면 비행기에 타기 전에 알코올 혈중 농도를 측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만약 저 정도로 취해서 비행기 안에서 난동이라도 부리거나, 건강상의 문제라도 생기면 어쩔 거냔 말이다.
실제로 전에 스페인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던 남자가 갑자기 기절한 적이 있다. 내 뒷줄이었는데, 남자가 잠을 자는데 상태가 영 이상해보이는 거다. 코를 골다가 숨이 막히는지 꺽꺽거리더니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복도 쪽으로 거의 쓰러질 듯 기울었다.
남자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계속 남자를 힐끔 쳐다보다가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깨우려 했지만, 남자는 이미 반응이 없었고, 결국 승무원이 달려왔다.
남자를 복도에 눕히고 사람들 사이에 패닉이 퍼져갈 때쯤 다행스럽게 앞쪽 줄에 앉아 있던 승객이 의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다가왔다. 그 사람 덕에 다행히 응급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만약 승객 중 의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등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뷔페에 와인과 맥주 같은 주류도 포함된다. 심지어 아이들 실내놀이터 같은 공간에서도 술을 파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모두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는 거다.
영국인들, 특히 젊은 남자들의 음주와 술주정은 이미 유럽에서도 유명하다. 특히 축구팬들의 난동이란...
그들은 그냥 술에 취해서 휘청거리며 돌아다니거나, 길가에 토하거나, 잠을 자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욕설을 숨 쉬듯 내뱉고, 공격적이다.
이건 예전부터 그래왔고,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만, 내 일상이 이런 밤문화와 멀어져 있어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에 새로 실감하게 되었다 - 정말 변하지 않았구나!
그에 비해 최근 들어 싫어하게 된 게 있다.
바로 영화관과 공연장 문화.
이건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뒤 느끼게 된 거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휴대폰을 보는 인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영화관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었는데도 여전히 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 영화를 보다가 대뜸 폰을 꺼내서 영화 장면을 촬영하거나 사진으로 찍는 사람. 그런 뒤 심지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리거나 채팅앱을 통해 보내는 사람. 그뿐이랴, 보이스 톡을 보내거나 영상 통화 하는 사람도 봤다.
영화관이 무슨 자기 집 안방인 줄 아는 건지. 전혀 거리낌이 없는 행동들.
원래는 영화관에 꽤 자주 가는 편이었는데, 이런 일이 몇 번 계속된 다음부터는 아예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이게 영국만의 일이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스페인에서도 경험한 뒤, 그냥 영화관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몰입이 당장 깨지고, 영화 상영 시간 내내 스트레스만 잔뜩 받기 때문.
마지막으로 싫어하는 건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겠지만,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휴대폰 사용 방식이다.
왜 영상을 소리를 켜고 보는가. 왜 이어폰도 없이 화상통화를 하는가. 왜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을 배경으로 영상을 찍어야 하는가. 왜 게임 소리를 무음으로 하지 않는가.
요즘 세상에 블루투스 이어폰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그들은 꼭 그렇게 스피커로 모든 걸 해야 하는가.
특히 기차 안에서 화상통화하며 떠드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 어떤 이들은 아예 와인을 까서 술파티를 하며 떠들기도 한다.
이어폰이 없어서? 귀가 아파서? 심심해서?
솔직히 다 핑계다. 그냥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모두 NPC 취급해서 그렇다. 이기적이고 무례하다.
그런 까닭에 어디 갈 때면 필수품으로 나는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챙긴다.
어딘가 이동할 때 원래는 이어폰을 끼지 않고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조금의 소음만 들려도 이어폰을 낀다. 누군가의 소음으로 스트레스받기 싫어 소리 자체를 차단시켜 버리는 거다.
그뿐이랴. 가능하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차를 몰고 가는 걸 택한다. 혹시라도 공공장소의 빌런을 만나 스트레스받을 가능성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거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한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사람을 고립시키는지 말이다.
누군가의 무례함을 견디기 싫어 접촉 자체를 피한다는 것 말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나이가 들어 더 깐깐해지는 것일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