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팬인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You are like Battlestar Galactica"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1978년 미국에서 처음 방영된 SF TV Series인데, 거기에 나오는 전함 갤럭티카가 전쟁기계인 사일런의 해킹 공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내가 뭐든 동기화되어 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랩탑과 휴대폰의 계정을 다르게 사용한다거나, 클라우드의 이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백업 장치를 여러 개 둔다던지, 등등.
남편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집에 아예 테라바이트 사이즈의 서버를 따로 두고, 아이들의 컴퓨터를 라즈베리파이 (Raspberry Pi: 신용카드 크기의 싱글 보드 컴퓨터)를 사서 직접 조립해 만들어주고, 웬만한 수리나 설치는 직접 할 만큼 모든 전자기기와 컴퓨터 사용에 관해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집에도 스마트홈 시스템을 설치하자고 여러 번 제안을 했지만, 모두 내가 거절했다. 상당히 구시대적인 태도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 공간이 내가 손쓸 수 없는 어떤 시스템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걸 기술에 대한 불신이라고 여기기에는 좀 그런 게 내 이런 성향이 테크놀로지에서만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전반적으로 뭔가를 구분 지어 그것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걸 상당히 중요시하는 편이다.
도구의 사용만 봐도 일할 때 쓰는 펜과 내 개인 용도로 쓰는 펜이 따로 있고, To do list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일할 때는 Microsoft의 MS Teams Planner를, 집안일에 관해서는 Google Keep을, 글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저장할 때는 MS Onenote를 사용하는 식이다. 심지어 이어폰도 다른 걸 쓴다. 아이패드에는 블루투스 헤드셋을, 평상시에는 Google Pixel Buds를, 일할 때는 Airpods을 쓰는 식으로 (업무용 폰이 아이폰이고, 내 개인폰이 픽셀폰인 이유도 있다).
그뿐이랴.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름 구분 지어 접근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을 통해, 혹은 육아를 하다가 친해진 지인들과는 학교나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취미 생활로 만나 친해진 이들과의 대화에서 가급적 '엄마'로서의 내 모습은 거의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옷도 다른 스타일로 입는 편이고 내 태도도 약간씩 달라진다.
이런 성향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지는데, 이 브런치에서도 알다시피 나는 내가 특정될만한 무엇도 대놓고 얘길 하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이곳 외에도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있는데 그곳의 필명은 이곳과 다른 걸 쓴다.
소셜미디어 역시 페북과 인스타를 둘 다 사용하고 있음에도 용도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고, 계정 공유도 하지 않는다. 일적으로 만난 이들과는 아무리 친해도 링크드인 외 SNS에 친구등록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모든 걸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비밀주의적 사고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탕수육 부먹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인가.
이런 방식의 단점은 뭐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데 있다.
온라인상에서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자신의 이력을 오픈하고, 나는 이런 경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면 조금 더 신뢰를 줄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누군지도 모를 아무개 씨가 하는 소리와 내가 아는, 친근감을 느끼는, 정체가 확실한 누군가가 하는 얘기를 비교하면 누굴 믿을지는 이미 답이 정해진 거 아닌가.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초반부터 나 이 동네에 살고, 이런 일을 하고, 저런 것도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고 오픈해 버리면 접점을 찾기도 쉬울 텐데... 특히 Charity run처럼 봉사활동이나 후원이 필요한 일이라면 더 빨리 도움을 얻을 수도 있고 말이다.
온라인게임 할 때도 혼자 열심히 광물 캐고 몹 잡는 것보다 길드 들어가서 팀플레이 하는 게 레벨 업하기는 더 쉬운 것처럼 말이다.
물론 데이터 회사에서 일하는 까닭에 클라우드 사용과 동기화는 잘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서는 여기저기 씨를 뿌려놓고 기다리는, 솔로플레이하는 농부 같은 행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무척 바쁜데, 혼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복합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인간관계가 너무 분포된 나머지 정작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단점도 있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