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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y 06. 2020

영국 직장에는 성차별이 없는가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길이 있을 뿐이다.

간혹 그런 질문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성차별이 덜하지 않으냐고. 그래서 직장에서 성공하기도 상대적으로 쉽지 않으냐고. 어떻게 보느냐,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아니다. 


영국에서 해 본 직장 생활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성적 비율은 대략 비슷했다. 그런데 그 내부의 분포도가 달랐다.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직급을 통틀어 나이 구성, 결혼 여부, 자녀 여부 등이 골고루 분포되는 반면, 여자들은 직급이나 근무 패턴, 나이별로 분포도가 삐죽거린다. 예를 들면, 낮은 지급에는 다양하게 분포되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고 연령대의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거나 아니면 다 큰 자녀들이 있는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던지, 어린아이들이 있는 여자들일 수록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라든지... 

예전에 일했던 대학에서는 이 간격이 좀 더 두드러져서, 전체 학부 교수진에 성별은 비슷한데 어린아이를 가진 30대의 여자 교수는 나 혼자였을 정도로 그 차이가 심했다. 남자 교수들은 30대, 40대, 50대, 60대를 거쳐 아이가 있든 없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골고루 퍼져서 자기들끼리 펍에도 종종 가며 단합을 다지는데 비해, 여자 교수들은 양분화가 극심한 데다 (30대 초반까지의 미혼이거나 40대 이상의 미혼, 그리고 50대 이상의 다 큰 자녀를 두고 있는 여자들) 생활 패턴이나 관심도가 다 달라서 단합이 어려웠다. 그래서 실제 성별 비율과는 별개로 학부 전체가 꽤 마초스런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사실 그들이 대놓고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도 있지만..).

지금 있는 공공기관도 분명 성별은 비슷한데... 역시나 남자들은 고위직급이라도 어린아이들이 있는 사람들 수가 많지만, 여자들을 보면 대부분 미혼이거나 아직 아이가 없는 40/50대, 혹은 이미 아이들이 장성한 50/60대가 많다.


그럼 도대체 어린아이들이 있는 중간 나이 때의 여자들은 어디 있는 걸까? 다들 어딘가 육아 교실이나 모유 클럽, 어린이 문화교실 같은 곳에 모여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육아 휴직 상태고, 어떤 이들은 권고사직으로 직장을 잃은 상태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퇴사하고 잠시 육아에 몰입하고 있는 상황이고, 어떤 이들은 육아를 계기로 진로를 바꾸기 위해 공부하거나 다른 길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원한다면 nursery에 보낼 수 있다. 나 역시 첫 아이가 5개월 때 파트타임으로 복귀하려고 아이를 nursery에 보냈으니까.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이 한 명을 주 5일 풀타임으로 보내려면 한 달에 대략 천 파운드 정도가 든다. 요즘 환율로 따져 한 달에 백오십만 원 정도 든다는 건데, 영국에서 풀타임 평균 연봉이 £30,000 정도인걸 감안해도 월급에서 반 정도는 보육비로 날아간다는 소리다. 이것도 아이가 한 명일 때 얘기고,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는 아이들 둘을 동시에 맡긴다고 생각하면 풀타임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월급을 보육비로 다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것도 물론 '평균'이라고 불리는 월급을 받을 때 하는 소리고, 일반 직업 연봉이 대략 20,000 파운드라는 걸 감안하면 한 사람의 월급이 단 한 명의 아이 보육비와 맞먹는 상황이 된다. 그럴 때 아이가 둘 이상이라면 차라리 어린이집 같은 걸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월급이 적은 사람이 직장을 그만 두기도 하고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여자가 많다는 건 여기도 똑같다)... 혹은 주위에 조부모나 친인척 찬스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파트타임으로 복직한다. 그렇게 육아에 매진하다가도 아이들이 서서히 커서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일을 찾아 파트타임으로 복직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경제적 상황뿐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부부의 풀타임 맞벌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변수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아이는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고, 면역체계가 약해 쉽게 뭐에 감염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부 둘 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데다 근무 환경에 융통성이 없고, 주위에 항시 대기해서 부모 대신 아이를 위해 뛰어갈 수 있는 보조 양육자가 있는 상황도 아니면 생활 자체가 오래 유지가 안된다. 부모의 정신 건강도 해치고, 균형도 깨지고, 하여간 모두에게 오래 할 짓은 못된다. 그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까지 스트레스받으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꽤나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 끝에 영국에서도 대부분 여자들이 포기를 담당한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하는 아주 익숙한 말을 하면서... 


이런 이유들로 중간 나이에 속하면서, 어린아이가 있는 여자들은 파트 타임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까닭에 잘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근무 시간이 제한적이고 그 외의 사적 모임에 참여할 만큼 자유롭지 못한 상황들이 많기 때문에).


그래도 영국에서는 여자들의 복직률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영국의 직장들은 굳이 여자라고 꺼려하지도 않고, 웬만해서는 파트타임도 다 수용하는 편이다. 그러니 이렇게 주어지는 기회 쪽으로 보자면 영국 직장에서의 성차별이 한국보다 덜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직책이 올라갈수록 job sharing 이라든가 파트타임으로 일할 환경이나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업무의 양뿐 아니라 결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담당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리고 언제든 회사일을 처리할 수 있고 접근이 가능한) 그런 사람을 원한다. 실제로 공공기관인 까닭에 시간 조절이라든지 업무량 조절에 철저한 공무원 사회에서도 고위 공무원 이상이 되면 시간 조절이 없어진다. 언제든 항상 알아서 조직 일을 할 거라는 전제 조건이 깔리는 거다 (그래서 종종 저녁이나 주말에 이들로부터 날아오는 이메일들을 받을 수 있다... ).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런 자리가 나면 기회는 근무시간이나 다른 제한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주양육자가 따로 있어 상대적으로 육아로 인한 시간제한이 덜한 사람 (이에 속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아내나 조부모가 주양육자의 임무를 맡은 남자들이다) 혹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도 고위 직급에 속한 여성의 비율이 낮거나, 있더라도 특정 그룹에 속한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거다 (이것도 그나마 정부기관에서는 차이가 덜하지만, 사기업으로 가면 그 정도는 훨씬 커진다). 


개인적으로 나 같은 경우만 봐도 나와 남편은 동갑이고, 둘 다 박사학위가 있다. 그는 유럽인인 까닭에 한국과 다른 교육과정을 거쳐 나보다 박사과정을 반년 정도 일찍 마치고 영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박사과정 후 취업했을 때 우리의 월급은 사실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두 번의 임신을 하고, 아무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첫째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복직하고, 둘째를 낳고 나서 2년의 휴직 기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이제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는 이미지까지 얻으며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갔고, 내가 마침내 풀타임으로 복직했을 때 그와 나의 월급 차이는 거의 두 배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되어 만난 내 주위 영국인 친구들도 의사, 약사, 회계사, 교사 등등의 직업군을 가졌지만, 그들 모두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들의 남편은 다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그중 의사나 약사인 친구들은 임신 전에 남편들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임신/육아를 이유로 파트타임으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남편이 자기의 월급을 쉽게 추월하는 걸 봤다. 


그렇다고 남편의 성공을 시기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부부 공동체의 노력이니까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그 길에서 한걸음 벗어나 보자면, 여기서도 여자가 임신/육아로 잃을 건 많다. 그리고 그게 장기적으로 개인의 커리어에 영향을 주고, 전체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그럼 이게 '육아'를 '자초'한 여자들의 잘못인가? '누가 아이 낳으라고 했나'하는 그런 말초적 질문은 하지 말자, 어차피 그건 제삼자가 나설 수도, 끼어들 수도 없는 문제니까 (그런데 부부 중 한 명이 그 소리를 상대방에게 한다면, 역시 제삼자로 대놓고 말은 못 하겠지만, 속으로 욕할 것 같긴 하다;; ) 아니면 그것도 '엄마로서 감당한 숭고한 희생'정도로 얼버무리고 넘어가야 하나? 아니면 '성공이냐 결혼 혹은 아이냐, 선택해라'하고 강요할 문제인가. 이것도 아니면, '당신의 선택이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하고 토닥거리고 넘어가야 하나... 


이건 나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내 커리어 대신 육아를 잠시 선택했던 사람이고, 그 선택으로 아이들의 처음 2년을 온전히 지켜봤다, 라는 엄마로서의 어떤 자부심이 있는 반면 멈춰버린 내 4년의 세월이 미치도록 아깝기도 하고, 그동안 나 혼자 뒤처졌다는 소외감,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실제로 나와 같은 시기에 박사과정을 한 여자 친구들 중에는 결혼이나 임신을 뒤로하고 승승장구한 친구들이 많다. 2년의 휴직기간 동안 그녀들의 소식을 메일로, 메시지로, 소셜미디어로 전해받으며 내가 얼마나 초라해 보였는지..). 복직을 하고 그동안 쉬었던 것만큼 원 없이 달려보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엄마라는 내 위치가 사라진 것도 아니라서 매일은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가까웠고, 지금도 역시나 매일 내 인생의 주체로서 뭔가 이루고 싶다는 욕구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 뭔가 해주고 싶다, 해야 한다는 욕구, 그리고 죄책감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리 뛰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갭을 느끼면 좌절하기도 한다. 일을 하고 싶은데 육아 등의 이유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갇힌 것 마냥 답답해지기도 한다. 누군가 내 일과 관련해서 육아를 이유로 들먹이기라도 하면, 그 입을 콱 때려주고 싶기도 하다. 직장에서 '여자라서' 하는 소릴 누군가 꺼내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피가 끓어오르면서 서서히 전투 모드로 변신하는 나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워킹맘이든 풀타임 엄마든 그들이 택한 선택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지도 감히 그들의 상황을 짐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 담당 직원들과 재택근무에 대해 이야기할 때, 'Well, my wife can look after kids'하고 말하는 남자 직원들에게 그러지 말고 시간과 근무량 조절을 해줄 테니 부인과 상의해서 육아를 분담하라고 했다. 부인도 힘들 테니 일을 조절하더라도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나 같아도 내 남편이 일한다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육아와 가사 모두 내게 맡기면 진짜 싫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뭐 방향이 꽤나 틀어진 거 같은데... 급히 마무리하자면... 영국에서는 여자라서 받을 것 같은 차별의 정도는 확실히 적다 (이력서에도 공정성을 위해 사진을 붙이거나, 생년월일, 혹은 인종을 밝히는 건 많은 곳에서 금지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도 직종에 따라 성별 선호도가 나뉘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차별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성별보다 다른 이유들로 차별받는 경우가 있긴 하겠지만..). 그리고 임신이나 육아가 경력단절로 바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개인의 뜻이겠지만, 복직하려고 하면 기회는 있다. 융통성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 곳도 꽤 많다. 그런데 당신이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임신과 육아와 상관없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더 높이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갈수록 길이 험난 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영국에서도 위로 가는 길이 여자들에게 그리 평탄하게 펼쳐져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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