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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y 04. 2020

너의 텃세

네가 던지는 창과 내가 마주 쏘는 화살 

나는 요즘 프로텍트 관리 팀에 있는 D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D는 지금 조직에서 아래 계급부터 시작해서 차근히 승진해서 지금의 직급까지 올라온 사람이고, 나는 말했다시피 원래 대학에 있다가 지금의 직급으로 바로 온 사람이다. 쉽게 그는 "Internal"이고 나는 "external"이다. 그는 이 조직이 흘러가는 판에 익숙하고 나는 그 익숙함을 되묻는데 익숙하다. 그는 "Normaly"라고 많이 말하지만, 나는 그 말에 "Why"라고 되묻는다. 일의 성격상 그는 내부 부서와 협력 관계가 많고 나는 외부 부서와 협력 관계가 많다. 그래서 그는 내가 자기 뜻대로 바로바로 뭘 하지 않으면 곧잘 내부의 수장들을 들먹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댄다. 초반에는 그 태도에 열이 받으면서도 내 기반이 없기 때문에 속으로 욕을 들이부으면서도 처리해줬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아니 그렇게 중요한 보고서 마감이 내일이면 미리미리 준비해서 진작에 정보를 요청해야 할 거 아냐. 그렇게 반박도 해보고 미리 왕창 정보도 던져 주고 해 봤는데,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아니 계속 보니 다른 팀과는 미리미리 연락을 해서 정보를 요청해놓고 꼭 내 팀만 마지막으로 남겨놓고 들들 볶는 거였다 (다른 팀 수장들은 다 이 조직에서 몇 년째 있었던 사람들). 그 심증은 다른 수장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증이 되고, 그래서 그에 대한 괘씸함으로 우린 서로 알게 모르게 기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By today, tomorrow, this week"하는 마감일이 담긴 이메일을 빨간 'high priority' 깃발까지 꽂아 내게 보내고, 여러 번 이러지 말라고 해도 반복적으로 이런 메일을 받는 나는, 그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 메일을 무시할 수 있을 때까지 무시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일과 관련된 이메일과 그의 이메일이 날아올 때 일과 관련된 메일을 먼저 클릭한다는데 맞는 거겠지만. 그러면 그는 내부 최고 수장들의 이름을 무기 삼아 나를 협박하고 나는 그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무기로 그에 대항한다. 

그의 급증하는 협박에 내가 항의하면, 그는 '내가 너무 바빴다, 그래서 너한테 미리 연락을 못한 거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 일이 여기에 한두 개인 줄 아느냐' 하고 반박한다. 그러다 한 번은 나도 '네가 바쁜 건 이해하지만, 나도 바쁘다. 그러지 우리 협조 좀 하자'하고 말했는데, 그게 아니꼬왔는지, 최근 간부회의에서 일과 조직 관리, 육아까지 겹쳐 밸런스를 맞추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라고 했더니, 누군들 안 바쁘냐며 철저한 시간관리 요령의 문제가 아니냐는 소릴 해서 날 열 받게 했다. 나 같은 경우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해서 맡은 일이 급증한 상태인데, 아무리 서로의 상황을 다 모른다고 해도, 부인 덕에 아이 한 명이 있음에도 근무 시간에 전혀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 그가, 두 아이를 데리고 풀타임 맞벌이에 육아는 물론 매일 학교에서 날아오는 시간표 따라 애들 수업도 담당해야 하는 내 생활을 뻔히 알면서 내 시간 관리 능력을 운운한다는 게 기가 차서 회의가 끝나자마자 헤드폰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뭐 이건 그냥 그가 좀 치사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에게는 내가 외부에서 온 주제에 자기 말을 안 듣고 자꾸 딴지를 거는 것 같아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우리가 안 맞던가. 그런데 그와는 업무관계로 자주 부딪히니 이만큼 관계가 진행된 거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긴 하다. 외부에서 온 외국인인 내가 영국 정부 조직에 대해 뭘 이해하겠냐, 제대로 알긴 하냐, 그런 태도로 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의견을 제시해도, '그래 해보려면 해보든가. 근데 안될걸?'하고 부정적으로 대하는 이들도 있어고... 이 조직에서 이미 일을 하고 있던 친구(라고 믿었던) M은 내가 자기보다 한참 높은 직급으로 이직한다는 걸 알고, 축하는 개뿔, 첫마디에 "How?"라고 물었다 (어떻게는 어떻게야, 이력서 넣고 면접보고 뽑힌 거지)


예전에 대학에 있을 때는 내가 케임브리지 출신이라는 거 때문에 텃세가 있었다. 사실 대학에는 대부분 그 대학 출신들이 임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옮긴 두 대학 학부 다 거의 90%가 넘는 교수진들이 그 대학 출신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교환 학생, 연구원 등등으로 그 대학과 얽힌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나처럼 아무 연관 없이 채용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일단 같이 일을 시작한 입사동기임에도 그 사람들은 이미 대학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 쉽게 뭉치는 반면 혼자 떠도는 경험도 오래 했고.. 거기에 내 출신까지 곁들여져 회의나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You wouldn't understand this, would you?" 혹은 "Of course she doesn't know, she's from Cambridge"하고 농담인 양 웃으며 내 눈치를 살피는 일들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어차피 내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나도 덩달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그러다 한 번은 연구 계획 모임에서 자꾸 내가 의견을 낼 때마다, "We are not in Cambridge. It doesn't work like that here"하고 내 말을 쳐내는 사람이 있어서 (솔직히 괜한 기대 혹은 오해를 받기 싫어 누군가 대놓고 너 어디서 박사 했냐, 여기 이전에 어디 있었냐, 하고 묻기 전에는 C자도 안 꺼내는데!!) 그때는, "The research process is same here or there!" 하고 열 받음을 담아 반박해줬지만...


그 외에도 다 같이 대화하고 있는데 나타나 'Have time for coffee?' 하면서 나만 빼놓고 사람들을 빼가는 사람도 있었고, 갑자기 나만 빼고 그들만 아는 누군가의 자녀 소식, 혹은 펫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 주제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끔은 영국에서 옛날에 유행했던 코미디 쇼,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며 자기들끼리 막 웃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내가 모른다고 그들이 대화 주제를 바꿀 필요는 없으니, 그냥 이방인으로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그렇게 자기들끼리 막 웃다가 내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내게 설명을 해주는 건 아니고 이렇게 가끔 나를 흘끔 보면서 대화를 이어가면, 그때는 슬금슬금 기분이 나빠진다. 너 이 시키, 알고 있구나, 그러면서도 대놓고 하고 있는 거구나.  




하긴 주위 환경에 비해 다를 수 있는 요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무난히 환경에 녹아들어 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질감은 경계심을 낳고 경계심은 자연스레 반발을 불러일으키니까. 입장 바꿔 생각하자면 나도 갑자기 고양이 얼굴을 가진 사람이 내 주위에 '안녕, 나도 너랑 같은 사람이야' 하고 등장하면 처음부터 '오, 그래, 어서 와, 우리 친구 할까', 하진 못할 거 같거든. 진짜 쟤가 사람인지 확인할 거 같고 묻고 관찰하고 그럴 거 같아. 거기다 걔가 이제부터 내 요리를 담당할 거라고 말하면 왠지 께름칙할 거 같고, 한술 더 떠서 걔가 내 식생활에 참견까지 하게 되면 "야, 네가 뭘 알아!"하고 가시 돋친 말을 하게 될 것도 같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자면 텃세 부리는 걸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해는 해도 그게 내 기분까지 통제하진 못한다는 거지만...


뭐 생긴 게 다른 이방인으로 타지에서 살고 있으니, 아마 나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텃새를 계속 겪으며 살 가능성이 높을 거다. 그리고 성격이 순하지 못한 까닭에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그때마다 소심하게 혹은 대놓고 덩달아 반발을 하겠지. 그러다 더 당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내 다름을 이유로 내게 보이는 적대적 혹은 부정적 감정을 이해까지 해줬는데, 그 뒤처리까지 나더러 감당하라는 걸 좀 불공평하잖아? 너에게 적응하려는 노력도, 너의 태도에 대한 이해도 내가 해줄 테니, 너도 날 좀 받아들이던가 그렇게 못 받아들이겠으면, 네가 던지는 창만큼 내가 대놓고 쏘아 날리는 화살을 견디는 것 정도는 너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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