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던 날, 그리고 빨간 매니큐어
예비소집 이후 입사를 앞두고 서울로 올라와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근처에 함께 집을 구한 동기와 머리를 맞대고 복장규정을 보면서 입사 준비를 했다.
머리를 미세망으로 먼저 감싸고 머리핀을 해야 한단다. 당시엔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쉽게 검색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라 미세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동기가 한 달 먼저 입사한 아는 친구가 있어 건너 건너 구할 수가 있었다.
머리를 예쁘게 묶는 손재주가 없어 늘 풀고 다녔던 난데, 스프레이로 딱 붙인 머리는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이 낯설던 머리로 나와 친했던 동료들 모두 퇴사할 때까지 비행을 한다. 수료 후 비행 연차가 쌓일수록 뽕을 높이 띄운다는데, 손재주가 없는 나와 그들은 뽕을 띄울 줄 몰라 계속 이 대머리독수리 같은 무뽕 쪽머리로 비즈니스크루가 되고 선배가 되고 또 교관도 한다. '얼굴 작고 두상이 예뻐서 뽕 안 띄어도 괜찮아'라며 입에 발린 말로 서로를 위로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아마도 넓고 훤한 이마... 정도?)
아무튼 규정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다 준비했다. 검은 가죽 줄의 손목시계, 진주 귀걸이 그리고 급하게 로드샵에서 산 빨간 매니큐어까지 그렇게 어설프게 승무원 흉내를 내어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지금 놀러 왔습니까? 온 건물에 여러분들 목소리밖에 안 들립니다!"
첫날부터 교관님들은 무서웠다. 드디어 직장인이라는 기쁨에, 진짜 승무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들떠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하하 호호 웃던 동기들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그리고 앞줄부터 복장점검을 하면서 교관님들의 언성은 더 높아졌다.
"어떻게 이번 기수는 제대로 해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까? 나는 제대로 해왔다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두세 명 손들기 시작했고 나도 손을 들었다. 교관님 한분이 내 옆에 왔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손톱을 보더니 한숨을 쉰다.
"... 하랑 씨, 일단 매니큐어는 이렇게 바르는 게 아닙니다. 베이스코트를 바르고 매니큐어를 두 번 칠한 뒤 탑코트로 마무리하는 거예요."
사실 당시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네일숍을 몇 번 가다 보니 아, 이게 그 말이구나 알게 된 거지. 메이크업이나 스타일링에 관심이 있다면 화장품 로드샵에 가서도 보고 네일숍에도 가고 하면서 알 수 있었겠지만, 꾸미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갓 대학을 벗어나 사회에 나온 초년생이 매니큐어를 어떻게 바르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아니, 25년 살면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야 하는 일이 대체 언제 있었으랴?
아무튼 나는 '일단 매니큐어'부터 불량이었고 다른 동기들도 별반 다를 것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다 경위서를 썼다. 입사 첫날부터 복장이 불량한 것에 대한 경위서.
첫날은 애교였다. 3달의 훈련기간 내내 복장불량(예를 들면 시계를 착용하지 않은 것, 손톱이나 헤어-두가 깔끔하지 못한 것 등)은 물론이고 지각이나 수업 중에 핸드폰이 울린 것, 복도나 셔틀에서 큰소리로 수다 떤 것, 동기끼리 '다나까체(경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걸려서 경위서를 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수업시간에 하품을 한 것에 대한 경위서,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잔 것에 대한 경위서, 복도에서 뛴 것에 대한 경위서, 다리를 꼬고 앉은 것에 대한 경위서, 교관으로부터 지적을 받을 때 표정이 안 좋은 것에 대한 경위서, 졸다가 지적받는 동기를 보고 웃은 것에 대한 경위서, 퇴근할 때까지 출석부에 출근 체크를 안 한 데 대한 경위서, 변명한 것에 대한 경위서, 경위서를 많이 쓰게 된 경위서... 뭔가 꼬투리만 잡히면 자필로 경위서를 써야만 했다.
우리는 점점 목소리를 줄였고,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교관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눈치껏 상대에 맞춰서 행동하게 되었다.
손톱에 칠해야 했던 빨간 매니큐어도 우리를 한층 힘들게 한 주범이었다. 선명한 빨간색은 매번 흰 종이에 흔적을 남겼다. 덕분에 출석부에 빨간 매니큐어 자국을 낸 경위서, 경위서를 제출하다 그 경위서에 빨간색 매니큐어 자국을 내게 된 경위서까지 써야 했다. 빨간색 매니큐어는 조금만 손끝을 부주의 해도 여기저기에 빨간 선을 그어댔고, 어디 찍히거나 벗겨졌을 때 티가 잘 나서 잘 발랐는지가 너무 눈에 잘 띄었다. 정작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비행을 시작한 뒤에는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르지 말라고 한 걸 보면 왜 교육 중에는 예쁘지도 않은 새빨간 매니큐어를 칠했어야 했는지 분명했다. 덕분에 우리의 무뎠던 손길은 점점 조심스럽고 예민해졌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경위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닌 일로 억울해도 써야 했던 경위서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죄송합니다’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도 겉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나’를 지우고 내 성격을 버리고 내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내가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구나. 내가 참는 게 가장 쉬운 일이구나.
그렇게 회사가 원하는 승무원이 되었다.
수료를 한 뒤 비행을 하다가 문득 '그 시절 훈련원에서 힘들게 하며 비행하면 천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게 가스라이팅이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비행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이 괜찮게 느껴지라고 훈련원에서부터 그렇게 쥐 잡듯이 잡은 건가?!
글쎄, 천국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비행이 낫네', '비행은 할만하네'라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비행에서도 안 이랬으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런 건 좀 고쳤으면.. 하는 것들, 비이성, 비효율, 무논리 천지였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잘해보려고만 했었다면 좀 더 괜찮은 승무원이 될 수 있었을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결국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이제 떠나버렸지만.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니 어쩌면 그게 우리 사는 세상이고, 내가 적응해야 했던 사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싸이월드가 복구되었으면 좋겠다.
문득 그 시절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브런치는 그렇게 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