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랑 Feb 18. 2024

입사 후 윙을 달기까지 2

훈련원에서는 뭘 배울까? - 서비스

2달간 안전 교육이 끝나고 이어서 받게 되는 서비스 교육은 간절히 바라던 유니폼을 입고 받는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화장과 헤어두 덕분에 출퇴근 길은 제법 진짜 승무원이 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승무원이 하는 일을 잘 모르고 유니폼에 반해서 친구 따라 승무원이 된 나 같은 교육생에게 한 달간의 서비스 교육은 '대체 이게 뭐지?'와 '매뉴얼을 찾으면 나오는 이런 걸 왜 외워야 하나?'의 반복이었다. 아르바이트라고는 학원과 과외밖에 해 본 적이 없기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도 레시피를 외우는 게 기본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이런 걸 왜 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무조건 외웠어야 했다. ‘왜 이럴까?’라는 궁금증도 허용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거나 교수님께 여쭤보면 거의 모든 궁금증이 풀렸는데, 회사 일은 이해할 시간도 방법도 없었다. 어차피 보안정책상 외부에 오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을 검색해도 나올 리 없었으니까.




서비스 교육에서는 먼저 우리가 가게 될 취항지 특징과 비행 노선에 대해 배운다. 검역이 필요한 노선은 어디인지, 지금은 공항 직원들이 온라인으로 서류를 보내지만 당시엔 현지 공항에서 승무원이 직접 서류를 전달해야 하는 노선들도 있었다. 그리고 비행시간에 따라 비행 타입이 나뉘고 서비스 절차가 다르며, 비행시간이 같더라도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인지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인지 출발시각에 따라서도 서비스 내용과 절차가 달라진다.

그 비행별로 케이터링팀이 지상에서 준비해 주는 아이템들과 체크 방법, 서비스 지상 준비 방법을 배우는데, 어떤 비행이냐에 따라 실리는 아이템들도, 승무원이 준비해야 하는 서비스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비행을 막 시작한 초반에는 익숙해질 때까지는 비행 준비를 꽤 하고 가야 했다. 타입별로 실리는 아이템들이 왜 다른지. 예를 들면 tea 컨테이너에 케첩은 왜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지, lav 컨테이너에 왜 칫솔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지 궁금했지만 (이것도 비행하다 보면 안다.) 그냥 외웠다.

그리고 비행 타입에 따라 이륙 후 서비스 준비 방법, 서비스 방법, 그리고 하기방법 등을 배운 뒤에는 계속 롤플레이로 서비스 연습을 한다. 교관들은 진상손님이 되어 돌발상황을 계속 만들고 거기에 대응해 가면서 우리는 배운 내용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항공사 서비스 교육 인터넷 공개 자료

식음료 관련 수업도 있는데 꽤 재미있다. 서양식과 식사 매너, 와인과 주류에 관해 배우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실용적이다. 일하면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제법 코스요리를 먹을 일도 많았고, 서양식의 기본과 글로벌에티켓을 배우다 보니 외국 문화의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또한 술을 잘 못해서 알 기회가 없었던 알코올 세계를 더 넓게 지식적으로 접하게 되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제법 관련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맥주는 카스 밖에 모르던 알코올쓰레기였던 내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술의 종류와 각각 이름은 암기의 압박이 있었지만. 이게 와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간단할 것 같은 맥주만 해도 노선마다 추가로 실리는 맥주들이 달랐다. 예를 들면 호주는 VB, 독일은 벡스, 일본은 아사히 등등 이렇게.. 위스키, 브랜디 등 증류주와 리큐르 그리고 칵테일 등의 베리에이션은 신세계였다.


그 외에도 기내방송을 연습하고 시험을 쳤으며, 인터폰 사용방법, 전체 비디오 상영방법, 면세품 판매 포스기 사용방법 등 실제 비행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일들을 배우며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기존에 글을 쓴 적 있었던 외국어 교육도 이때 짧고 굵게 이루어진다.

https://brunch.co.kr/@mintrang/65


사전 정보 없이 쏟아지는 서비스 수업의 내용들은 내겐 '기차는 나무, 원숭이는 아파트, 샴푸는 타이어, 커피는 목성, 장미는 비행기'등과 같은 문장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기분이었다. 손님 디플레인 후 어떤 아이템들은 왜 걷어서 L2로 가져가는지, 손님이 내리면 왜 R2와 R4를 오픈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걸 무조건 외우자니 더 힘들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승무원이 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비행기를 안 타본 것도 아닌데 왜 몰랐을까? 아니, 보통 아는 게 정상인 건가? 다들 갤리니 밀카트니 터뷸런스니 이런 것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건가?

그런데 교육원도 교육원이지만, 왜 항공사는 유독 한글과 영어를 섞어서 사용할까? 글을 쓰면서도 자꾸 외국어를 쓰게 되니 신경 쓰인다. 외국인직원도 많은데 이럴 거면 차라리 영어로 다 해버리지. 그랬다면 해외 직원들과 소통도 쉬워졌을 것이고 배우고 일하면서 영어 실력도 더 좋아졌을 텐데. 괜히 또 그 힘들었던 시간들에 심술이 나네.


하지만 그때 외웠던 것들은 다 외운 이유가 있었다. 교육을 수료하고 비행을 하면서 한동안은 계속 '아! 이게 그 말이구나', '아, 그래서 이걸 외웠구나.' 하는 깨달음의 연속이었고, 궁금증들이 해결될 때마다 피식피식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어느 정도 선배가 되면 비행기에 올라가면 그 기종 그 비행 편에 실리는 아이템들이 다 맞게 실렸는지 확인을 해야 했는데 혹시나 안 싣고 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아이템체크 듀티자의 책임이기 때문에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실리는 지를 다 알고 있어야만 했다.

서비스 나가는 밀카트 위에 드로워 채로 올려서 세팅하는 카트 드로워를 카탑(카트탑)이라고 하는데, 왜 그 카트탑에 올라가는 음료의 종류와 개수를 다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실어져 있는 대로 그냥 올리면 안 되나? 하지만 비행을 어느 정도하고 시니어가 되니 교대팀 손님 예약현황에 따라 생수, 주스, 콜라가 얼마 정도 필요하고, 남은 양이 충분한 지 부족한지 확인해서 부족하면 현지에서 추가로 주문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제대로 만들어진 카트탑이 없을 때에 벌크로 실린 음료들을 매뉴얼에 맞게 세팅할 수도 있어야 했다.

훈련원 때부터 똑똑했던 한 동기는 기종과 비행마다 한 갤리에 콜라가 몇 개 실리는 지도 계산 할 수가 있었는데, 그 동기는 진급도 가장 빨리 하였고, 가장 먼저 매니저가 되어 아직까지도 비행을 잘하고 있다.




안전뿐 아니라 서비스 교육, 그리고 추가 보수교육에서 배운 것들도 모두 승무원이 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교육이었다. MZ세대의 시작을 담당하는 세대답게 '비행만 하는 승무원이 왜 공항라운지 운영시간과 위치를 알고 있어야 해? 그건 공항직원 일이잖아?'라고 생각했던 것도, 내려서 공항 직원한테 물어보라고 하는 것보다 내 회사의 정보니까 내가 찾아서 알려줄 수 있으면 더 좋고, 손님들이 많이 물어보는 정보는 탭(매뉴얼)을 찾아보지 않아도 외우고 있는 게 내게도 낫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 답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입사한 회사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매뉴얼화된 것이니까. 각 나라와 취항지끼리 그렇게 규정을 정하고 합의한 것이니까. 매뉴얼을 그렇게 정한 이유까지 알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세부적인 역사와 사건과 근거를 알아야 할까? 그냥 외우는 게 제일 편했네.  


누군가 또 나처럼 '이걸 대체 왜 배워야 하는 걸까' 회의가 드는 예비승무원, 신입승무원이 있다면 그리고 그 시기의 나에게, 회사는 업무에 필요 없는 것을 굳이 돈을 주며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 무조건 익히고 외워두면 다 일하면서 쓸모가 있다는 것, 잘 배우고 알아둔다면 그게 나의 방패가 되고 무기가 되어 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너무 당연한 건데, 난 이걸 몰랐었네.


매거진의 이전글 입사 후 윙을 달기까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