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별똥별

도망가지 말아줘

by mintree



혹시 별똥별을 보게 되면 소원을 빌어봐


2013.07

내 인생 첫 별똥별을 만났다. 한강공원에서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평소엔 그냥 별도 찾아야만 보일만큼 꽁꽁 숨어있더니 그날은 무려 별똥별이 보란 듯이 강물 위로 선명한 별빛이 떨어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별똥별이 가장 많이 듣는 소원은 '아... 음.... 어.... 저기....'라더니 그럴 수밖에, 빨라도 너무 빠르네.



처음 본 '떨어진 별빛'은 내 소원을 말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지만 봤다는 사실만으로 그저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휴학하고 새로운 진로를 찾느라 지쳤던 터라 나도 이제 '별똥별 봤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것 그 이상의 의미였다. 왠지 나의 선택을 응원받은 기분까지 들었다. 소소한 설렘을 안고 잠든 그 밤은 짧았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 밤에서 깨어난 아침은 잔인했다. 2년 전 간암 선고를 받았던 아빠가 갑자기 황달이 심해지고, 간수치가 급격히 높아져 항암을 진행하고 있던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급하게 오고 있다는 전화. 그렇게 서울로 온 아빠는 서울에서 한 달, 울산에서 한 달, 두 달의 병원생활 끝에 결국 별이 되었다.





별을 올려다볼 틈도 없이, 그날 본 별똥별을 회상할 새 없이, 별이 된 누군가를 그리며 속시원히 울어볼 틈도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덧 세 번의 봄을 지나 보내고 어느덧 네 번째 봄의 끝자락이 왔다. 그사이 나는 1년의 휴학을 끝내고,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전공과 달라진 진로는 결국 내 직업이 되었고, 모두가 찾고 있는 '나에게 재밌는 일'을 찾아내어 2년 8개월 차 대리가 되어있었다. 나의 세상이 뒤집힐 것 같던 큰 일도 흐르는 시간에 깎여 조금은 무뎌졌길 바라며 살아내는 중이었다.






2017.05

어른이 되어가는 기로에서 느끼는 서로의 고민을 뱉으며 친구와 산책길을 걷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집에 다 와갈 때쯤 만난 큰 돌 10개로 만들어놓은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생애 두 번째 별똥별을 만났다. 처음에 본 것보다 훨씬 크게 반짝이고 선명한 별빛이 머리 위에서 앞으로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톡 떨어졌다. 역시나 소원은 사치



그리고 그 별똥별은 어른의 길목에 서있는 우리에게 동심을 선물해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명확한 결정을 내리기엔 아직 연륜이 부족한 건지, 나이가 들 수록 그 책임의 크기가 커지는 결정과 선택의 연속에서 갈길을 잃은 우리 앞에 별똥별이 떨어진 것이다. 울음이 터진 아기 앞에 나타난 딸랑이 장난감처럼 별똥별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치 고민을 가져가 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고, 거기에 벤치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에 달달한 젤리까지 더하니 애초에 고민 따위 없었던 듯 마냥 행복했다.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좋았다. 오롯이 그 느낌에만 집중한 밤을 보냈고, 그다음 날 나는 세상이 참 미웠다. 아빠를 보낸 지 딱 3년 6개월 만에 엄마마저 암 선고를 받게 되었다. 세상이 캄캄 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소원도 들어주지 않고 홱 가버린 것만 같아서, 그래서 외면당한 것만 같아서 괜히 별똥별이 미웠다. 그저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세상이 너무 미워질 것만 같아서였겠지. 별똥별을 탓하기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사실 나한테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의 큰 딸로, 동생의 언니로서 나는 무너지면 안 될 의무를 가졌기에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며 4년 전의 그때처럼 의연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별똥별 탓은 아니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탓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무언가를 또 만날까 두려워져 버렸지만 다음번엔 너무 빨리 도망가진 말아줘, 소원을 이뤄주진 않더라도 그래도 들어만 주는 건 해줄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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