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는 넣어두세요

선행인지 민폐인지 정확해지기 전까지

by mintree



아빠가 병원에 있던 그 한 달은 우리 가족에게 시리도록 아픈 시간이자, 애틋하고 소중한 날들이었다. 사실 그 전에는 엄마 아빠는 회사에, 동생은 학교에, 그리고 나는 타지에서 각자의 삶을 사느라고 바빴기에 매일 서로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랬기에 매일을 함께 보낸 그 한 달은 아프면서도 행복한 기억이다. 아마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다면 이모들보다는 고모들일 것이다. 아빠는 7남매 중 막내 남동생이라 형님 누나들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내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시한부라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좌절했고 그 상황에 짠하고 불쌍한 사람들도 우리 가족이었겠지만 원망의 화살 역시 우리 가족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느라 몸이 망가져서 이렇게 아프게 되었고, 일을 그렇기 열심히 한 이유는 가족들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우리 아빠가 아픈 것에 대해 엄마와 나와 동생을(그중에서도 엄마를) 원망한다는 플로우였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아프면, 혹은 내 소중한 사람이 아프면 예민해지기 마련이라지만 그렇다면 제일 예민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닌가. 분명 가족인데, "나한텐 동생이지만 너에겐 말 그대로 '남'편이잖니! 내가 우리 동생 더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보며 그때부터 나한테 그들은 아마 어른의 범주에서 쫓아냈던 것 같다.





아빠의 투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던 우리에게 새로운 힘듦을 안겨주시던 이들과 싫든좋든 함께 끝까지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아빠를 보냈다. 문제는 그 후부터였던 것 같다. 남은 6남매가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가는데 '그렇게 우울해하며 있으면 안 된다'며 여행에 함께하기를 권유하고,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면 '어린 네가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있을 테니 넌 집에 가라'며 딸 자리를 뺏어가려 하고, 행여나 병문안을 못 올 때는 수많은 고민거리를 늘어놓으며 핑계를 대고 한탄을 하기에 바빴다. 엄마는 원하지 않았고, 나는 오케이하는 법이 없이 거절해버리자 그것들이 또 화살이 되어 날아왔고 나는 어느새 '어른이 챙겨주는데 살갑게 받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이쯤 되니 누가 누구를 위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원할 때의 도움은 선행이지만,
원하지 않을 때의 도움은 오히려 민폐가 될 수 있다.




해외여행을 함께하기엔 그곳에서 느낄 아빠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알기에 두려웠고, 입원해있는 엄마에게 그들의 한탄은 가증되는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나는 호의를 거절한 배은망덕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엄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문안을 안 와서 섭섭해하는 올케가 되어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거절할 것이고, 그분들은 호의로 포장한 스트레스를 선물해줄 것이고 나는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면서도 번지르르한 포장에 감격한 척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나도 누군가가 힘들어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잘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더욱) 호의랍시고 다가간 적이 많은데 정말 내 의도대로 온전히 마음이 전달이 되었는지, 민폐가 되어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배은망덕한 아이가 된 나는 적어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전에 도움을 원하는 지의 여부부터 물어봐야 하는 순서가 있다는 것쯤은 배우게 되었다. 사람은 원래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혹여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본인마다 마음의 경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데 하물며 진짜 겪는 것과 상상은 오죽할까. 그렇기에 무작정 나만의 해결책을 내밀기엔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오늘도 나는 호의를 강요하진 않았었는지 하루를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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