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일

끄적임에 대한 고찰

by mintree


어릴 때 나는 성격이 꽤 급했었는지 글씨를 또박또박 쓰지 못하고 마구 흘려쓰곤 했었다. 반면에 우리 아빠는 거의 컴퓨터 폰트 수준으로 글씨를 써내는 명필이었고, 그런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연필잡는 법부터 바로잡으며 펜글씨 교본을 가져다 글씨쓰기를 연습시키셨다. 그때부터 였을까, 끄적이는걸 좋아했던 나는 친구들 생일이 오면 내가 더 들떠서 편지지를 직접 만들어 편지를 쓰곤 했었다. 근사한 그림은 못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A4용지에 나의 그림과 글로 가득채워가는 재미와 또 그 편지를 받은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게도 선물을 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내가 디자인쪽으로 진학을 할 것이라고 장담하곤 했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해야할 시기가 오자 그 때의 결정으로 앞으로의 수십년이 결정된다는 생각에 온갖 전공을 다 찾아보았었다. 무대디자인, 쥬얼리공예, 시각디자인 등등 재밌어보이는 것들을 부모님께 가져가보았지만 늘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나는 입시미술도 준비하지 않은터라 갈 수 조차 없기도 했었다. 그렇게 결국 마지막에 선택된 전공은 경영학과였고, 미술학원도 다녀보지 않은 내가 마냥 재밌어보인다는 이유로 디자인전공에 뛰어들었다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거나 나에게 재능이 없을 때는 다시 되돌리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신 대학을 가서도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계속 된다면 학원을 지원해주시겠다는 제안을 덧붙이셨고, 나는 경영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디자인'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나의 관심을 끌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영학과에 가서도 나는 전공에는 그닥 흥미를 못느끼고 조별과제를 할 때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드느라 밤을 새는건 다반사였다. 결국 나는 휴학하고 3개월짜리 기초시각디자인클래스에 이어 6개월짜리 웹디자인 클래스, 3개월의 포트폴리오 제작까지 1년을 꼬박 투자한 디자인 공부를 하였다. 그 이후로 나의 진로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디자인이었고, 광고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내가 왜 그렇게 디자인에 미련을 두었는지는 아직도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디자인을 배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야근도 많았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아침잠이 많아서가 아니라 회사일이 싫어서 출근을 하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아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지향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은 그냥 취미로 남겨두라고, 일은 일일 뿐이라고 말한다. 일생의 반을 일하면서 살아야하는데 그 반절을 재미없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엔 너무 아깝지않을까.





서울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제일 두려웠던건 디자인이라는 업종이 서울에만 집중되어있는 것을 알기에 더이상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되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생활을 끝내야했고, 막상 내려와보니 걱정했던 대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 그런지 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사실 구체적인 계획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지만 두근거리는 일이라면 한번은 도전해봐도 되지않을까하는 무모한 용기는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더 해보고 싶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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