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숲은 푸른가요.
당신의 숲은 푸른가요
그렇게 좋아하던 여자친구도 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재하였다. 회사생활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내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귀농을 선택한만큼 하루하루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봄의 정령을 느끼며,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농작물들을 돌보며 행복한 힘듦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힘들지 않다면 그것이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또한 서울의 삐까번쩍한 로망에 상경했다가 조여 오는 현실에 고향으로 내려왔었다. 그래도 소박한 집밥, 현관문을 열면 환한 집, 30분만 달리면 짠 나타나는 바다같은 소확행에 충실하며 나름 '잘' 살고 있는 중이다.
풀벌레 소리, 곶감 말리는 풍경 같은 매력은 없지만 오리온자리가 또렷하게 보이는 밤하늘이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온지도 열 달이 다 됐다. 꼬박 7년 간의 서울생활을 마치고 내려오던 날 서울에 더 이상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서울에 놀러 가면 7호선을 타고 집에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서울생활을 정리하는 데에는 꽤나 큰 결심이 필요했다.
고향 친구보다 많아져버린 서울 친구들, 계절마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여러 뮤직페스티벌, 고향에는 일자리가 없을 내 직업. 꽤나 큰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서울을 두고 온 이유는 내가 필요한 곳에 내가 있기 위해서였다. 반찬통 사이에 끼어있던 엄마의 편지에 적혀있던 글 중 한 구절에 반년을 고민했고, 결국은 돌아가겠다고 선택했다.
네가 있으니까 집이 웃음소리로 가득했었어,
참 좋더라.
엄마에게 나는, 나에게 동생은,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숲이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도 떠올리면 힘이 나는, 힘들 땐 그늘을 만들어주는 작지만 올곧은 숲이었다. 사실 나는 서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나의 숲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침에 식탁 가득 반찬을 차려놓고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집을 나가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겠지. 타지생활을 하게 되면 식사를 한다기보다는 끼니를 떼우는 것에 가깝다. 영화에서처럼은 꿈도 못 꾸고 제철 식재료를 쇼핑해다가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마저도 혼자라면 꽤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나는 숲의 그늘에 숨고 싶었던 거였겠지.
저마다의 꿈으로 가득 찬 서울에서 나를 이뤄보겠다고 아등바등 대다가 돌연 꿈은 장소불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울에 기회가 몰빵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막에 혼자 버티는 선인장보다 숲 속에 어우러진 나무 한그루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고 싶었다. 나의 웃음소리가 당신의 거름이 되고, 당신의 말 한마디가 나의 거름이 되는 서로의 숲에서 살고 싶다. 우리 모두의 소확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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