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흡수되어 기력을 더해주는 음식들
여름은 매년 더 더워지는 것 같다. 작년은 특히나 장마도 길고 하루 동안 비가 오다 말다 정신없는 날도 많았다 보니, 집안 곳곳에 세워둔 제습제에 금세 물이 차곤 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있으면 어느 정도 열기를 식힐 수 있었던 날이나, 앞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두면 그래도 맞바람을 조금 맞을 수 있었던 그런 여름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짧아진 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해온 것처럼, 견딜만한 낭만이 있었던 여름을 그리는 것들이 많이 나오려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올 여름을 맞이하기 전 작년 여름에 무엇을 먹었었는지 돌아봤다. 그 어떤 때보다도 쪽파와 대파 그리고 부추를 많이 먹었었다. 데치거나 쪄서 들기름, 간장이나 콩가루에 조물조물 무쳐먹고, 깨끗이 씻어 있는 그대로 쓱쓱 비벼 먹기도 했다. 씹으면 코 끝이 순간 찡해지고, 약간은 질긴 듯 꼬득꼬득한 싱싱한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씩씩하고 생생한 초록색을 보기만 해도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마제 덮밥과 마제 소바
대략 6-7년 전쯤 잠실에 있는 맨야하나비에서 처음 마제 소바를 접했다. 국물 없이 맵싸한 양념에 우동면을 비벼 먹는 음식이라는 말을 듣고 큰 기대 없이 갔다가,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아주 맛있게 먹었었던 기억이 있다. 구수한 듯 칼칼하고 알싸한 그 맛을 재현해 보고 싶어서 마제 소스 레시피를 여기저기 찾아봤다. 고기 대신 버섯을 사용하기로 하고는 다짐 육 같아 보이고 싶어 처음에는 재료를 모두 갈아서 사용했었는데 그렇게 하니 씹는 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모양도 식감도 다양한 야채들을 다져서 볶고 두반장과 해선장 듬뿍 넣어 양념을 하니 제법 그럴싸한 마제 소스를 만들 수 있었다. 다진 마늘 대신 마늘종을 넉넉하게 썰어 넣었는데 마늘 향도 충분히 더해지고 색다른 식감이 더해져 좋은 선택이었다.
넉넉히 만들어 밥에 비벼 먹고, 면과도 비벼 먹었다. 먹을 때마다 생부추를 한 움큼 썰어 넣었는데, 익히지 않은 부추의 존재감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제 소스와 같이 비벼도 고유의 향을 오히려 더 뿜어내는 것 같았다. 좁은 면적에 살짝 도톰한 그 질감이 씹을 때마다 아삭아삭 느껴져 매번 ‘아 좀 더 넣을걸’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대파 마요네즈와 쪽파 크림치즈
어떤 요리를 하던 양파만큼이나 자주 사용하게 되는 대파로 마요네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캐슈너트나 두부로 자주 마요네즈를 만들어 먹곤 하는데, 냉장고에 넘쳐나는 대파를 통으로 썰어 넣으면 고추냉이 마요 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요네즈를 만들면서 크림치즈도 한 번에 만들어 두기로 했다. 입맛이 없을 때에는 터프한 곡물빵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먹는 것만으로 충분한 식사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 좋아하는 일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들 때마다 헤매던 재료 비율도 이참에 정리했다. 마요네즈는 적당히 묽게, 크림치즈는 충분히 꾸덕꾸덕하게 만들어지도록 레몬즙과 올리브유, 두유, 그리고 주 재료인 두부의 질감을 가지고 몇 차례 테스트를 했다. 베이스가 되는 마요네즈와 크림치즈의 비율이 정리되었으니 대파와 쪽파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브 재료들을 섞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부추 콩가루 찜과 쪽파 김가루 나물
개인적으로 야채를 메인으로 한 요리의 정점은 나물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조리 시간에 비해 완성도가 좋고, 반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주가 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생김새를 크게 건들지 않는 조리법 덕에 야채 본연의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향이 원래 이 정도로 진하구나, 이파리가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대화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음식이다. 나물로 만들 수 있는 야채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고유의 향취가 뚜렷할 것
데치거나 찔 때 색이 급변하지 않을 것.
조리 후 식감이 지나치게 질겨지지 않을 것
이렇게 세 가지 나 혼자 만든 기준이 있다. 남은 부추와 쪽파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나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물은 부재료도 단순하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소금, 설탕, 간혹 액젓. 이 정도만 있으면 언제든 멋진 나물을 만들 수 있다.
부추 콩가루 찜을 정말, 정말 많이 해 먹었다. 재료를 다듬고 완성하는 데까지 과장을 조금 보내면 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한 단을 몽땅 씻어서 콩가루와 함께 찜기에 찌고 들기름, 들깨가루, 소금 넣어 무치면 순식간에 완성이다. 간이 적당하면 단독으로 먹기도 좋아서 야식으로 자주 먹기도 했다.
쪽파 김가루 나물은 맨날 쪽파 김치, 겉절이만 보다가 발견한 레시피 였는데, 보자마자 주저 없이 시도했다. 끓는 물에 15초 데친 후 먹기 좋은 길이로 썰어 간장, 들기름, 김가루와 함께 무치기만 하면 된다. 쪽파의 하얀 끝부분이 오도독 씹히고 짭조름하니 영락없는 나물이었다. 데쳐서 더 진하게 올라온 초록색의 쪽파를 우걱우걱 먹고 있는 모습이 아주 자연인 같아서 웃기기도 했다. 나물의 본 목적은 곁들임인데, 두 가지 모두 반찬 한 통을 가득 채울 만큼 만들고서는 한두 끼 만에 다 먹어버렸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여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보양에는 정답이 없다. 누구는 푹 고아 낸 육수와 야들야들한 살코기,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찬 음료를 마셔야만 여름을 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계절에 관계없이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고기와 육수로 속을 가득 채우기 보다, 찌거나 데친 야채로 몸을 가볍게 유지해야 열기가 내려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몸을 해하지 않는 음식을 찾는 것은,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극단적인 기온에 맞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다양하게 접해보고 먹어보고 그렇게 올여름을 무사히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