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온몸이 간지러운 건지
된장차3, 장미소3, 니시차3
커피관장1, 물관장1
파워플러스1, 소금사탕3
지난 10월 14일 수요일 저녁에 장청소를 하고, 어제가 본단식 1일, 그리고 오늘 본단식 2일 차다.
짧은 단식을 잔잔하게 해 왔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내 양심이 알고 있지. 올해는 제대로 된 단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많다. 연초부터 에너지를 쥐어짜 내야 겨우 하루를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일들이 연달아 생겼기 때문이다. 아직도 올해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일들을 지나오는 바람에 비로소 내 몸을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연휴도 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겠으나 단식이란 단순히 시간적 여유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임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내가 내 몸을 돌보려는 강한 의지가 세워져 있는 상태인지 - 단식을 하네 마네 결심을 번복하는 스스로를 보며 아직은 여유가 없구나 싶은 날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아차려지면 괜스레 서글퍼진다. 인간은 왜/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따질라치면 언제나 '지금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흘러감을 감사하고, 조급해하지 말고..'등의 말을 당연하게 하면서도 정작 그 여유를 위해서는 기일이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약간의 무력함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일로 인한 바쁨은 언제든 좋다. 정말로 진짜로 나는 바쁜 삶이 좋다. 지금 말하는 여유 없는 생활이란 시간이라는 물리적 여유가 아니라 정서적 여유이다. 정시에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지 않고 누워서 티비만 보다 잠들거나, 이윽고 12시가 넘어 일어나 괴상한 야식을 시켜 먹는 생활. 당장 할 필요 없는 일에 매달려 온통 시간을 보내다가 너무 깊은 허기짐에 지나치게 달거나 짠 음식을 먹는 생활 말이다. 이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공간이 없는 것이다.
마음의 공간은 철저한 비움으로 만들어진다. 그 비움은 생각의 비움, 그리고 몸의 비움이다.
마음에 공간이 있어야 몸을 비우는 단식을 할 의지가 생기면서 동시에, 몸이 비워지기 시작해야 마음에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약간의 폭발이 필요하다.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아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한 감정의 폭발이나 외부 환경의 큰 변화 같은 것 말이다.
왜 갑자기 단식을 할 생각을 했나 돌아보니 이번에도 그런 폭발이 있었다. 9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생긴 시간에 부모님과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3명이 쓰기 아까울 정도로 널찍한 공간에 온통 나무와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이었다. 쉬러 간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충돌이 있었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미안하다는 말을 주고받고, 이것저것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여독과 누적되어 있던 피로감 때문이었는지 눈과 입가에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왔다. 열꽃 같았다. 무엇이 이리도 답답하고 꽉 막혀있다 느끼고 있는 걸까? 스스로와 깊게 대화해봐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도움 받았다, 고마웠다'라고 말하던 [들어주기]를 나에게 해주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내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라는 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기껏해야 무언가 먹고 싶을 때 사는 정도일까? 이 한 몸 가지고 살면서 왜 나랑 가장 멀어지는 걸까. 다그치기만 하고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고 지나치리만큼 간절해지거나 집착하게 될 때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은 '천천히 가기'임을 팀원들에게 항상 강조했었다. 정작 내 일에서는 전혀 실천이 안 됨을 보며 '내년에는 말을 더 줄여야지' 자조적인 다짐을 해본다.
비로소 시작하게 된 단식을 제대로 해내보고자 이렇게 기록을 하려고 한다. 이번 본단식 기간에는 피부 가려움과 따가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 냉한 체질인데, 그동안 열이 많이 쌓이기도 했나보다.
매일매일 그날의 몸 상태를 체크하며 드디어 갖게 된 여유를 돌보며 보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