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단식 3일 차

그 꿈은 언제 오시려나

by 민트슈슈
된장차 3, 장미소 3, 니시차 3
커피관장 1
파워플러스 2, 소금사탕 4


새벽이 되어서야 쓰는 본단식 3일 차 일기. 하루를 마무리하며 10시쯤 쓰려고 했으나, 8:30에 걸려온 집주인의 전화에 혼이 나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오는 바람에 늦어졌다.


올해 3월에 재계약한 이 집에서 12월 18일까지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여러 채 갭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 같던데 급히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사정을 했다. 세안고 매매로도 내놓았었으나 아무 반응이 없다가 연휴가 지나고 나니 직접 살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동네에서 요가도 끊어놨고 헬스장도 끊어놨고, 무엇보다 이 가격에 혼자 살기에 넉넉한 사이즈여서 놀러 오는 사람들이 다 아늑하다 평하는 곳이었다. 연식이야 오래되었지만 내 집도 아니니 뭐 살기 나쁘지만 않으면 될 터였다. 그래 이런 집이니 얼른 내놓았겠지.


마지막 pt 세션을 마치고 헬스장 위층에 있는 사우나에 들러 오랜만에 냉온욕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본단식 중에 하는 냉온욕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 피가 끝까지 닿는 느낌이 나고, 전신에 부드럽고 뜨근한 열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노곤노곤하니 집에 와서 할 일 좀 하고 브런치 쓰고 자야지 -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래도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몸에 기력이 살짝 빠져있는 상태이니 화가 덜 났다. '어쩔 수 없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럼에도 날짜가 너무 촉박했기에 바로 네이버 부동산을 켜고 지금 전세가로 갈 수 있는 매물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같은 단지에 한 채, 바로 옆 다른 단지에 한 채, 조금 더 안쪽에도 한 채. 매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새 전세가가 4-5천 정도 올랐기에 평수를 한 단계 낮춰가야 했다. 딱 1인 가구 사이즈로 말이다.


집이 없다는 것, 돈이 충분하게 있지 않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7살 터울이 나는 동생에게 '어떤 식으로 살아도 상관없다. 자기 효능감을 깎아먹지 않을 정도의 일을 하며 네 품위를 스스로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줄 알면 된다.'라고 훈계를 두던 게 불과 한 달 전인데. 1억만 더 있었더라면 같은 하나마나한 말이 입가에 자꾸 맴돈다.


작년과 올 초에 상담했던 모든 점사들은 참 좋았는데. 하긴 가는 곳마다 '역마가 엄청 강하게 들어왔는데 이사나 이직 계획 있으세요?'라고 물어오긴 했었다. 내 계획에는 분명 없었다만 이렇게 두 가지다 옮기고 있게 될 줄이야. 그럼에도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들 했었다. 작년과는 운기가 완전 다르고, 10월이 지나면 트이고, 원래 40살 이후부터 펴는 인생. 아직 닿아보지 않아 맥이 풀리다가도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아주 기가 막히게 열심히 살아볼 테니' 다짐하게 되는 말이 되기도 했다.


오늘 꿈이 참 기분 좋았다. 덱스씨가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나를 시큰둥하게 깨우며 빨래를 걷어 개어주는 꿈이었다. 우리 엄마랑 친분이 있는지 도란도란 자고 있는 내 발치에서 빨래를 개더니, 내가 투덜거리며 일어나자 에그타르트 봉지를 건넸다. 한 개씩 나눠먹고 남은 한 개를 내 옆으로 쓱 밀어주었다. 그다음 시퀀스- 경복궁(한정식집)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엘리베이터에 타는데 그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고운 핑크색 브이넥 니트 조끼를 받쳐 입은 덱스씨가 함께 탔다. 가족 식사에 같이 가는 모양이었다. 왜지? 하고 생각하는 중에 엘리베이터에 최재림 씨도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잠에서 깼다.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꿈에 1-2번 나오셔서는 그냥 앉아만 계시던 할머니가 외관은 그대로인데 자그마하니 어린아이처럼 계셨었다. 자줏빛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 시장하시죠?' 물으니 '응 너어무 배고파'라고 맑게 웃으셨다.


좋은 꿈같은데 이건 다른 걸로 오시려나. 엄마에게 이사와 꿈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힘든 일은 꼭 잘되기 직전에 오더라.' 나와 같게 생각하고 계셔서 다행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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